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고용노동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 시끄럽다. 몇 년 전부터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연구용역을 준다, 연구를 한다, 토론회를 한다 하더니 그 결과가 고용노동부 매뉴얼이다. 심지어 26일은 노동법학회들이 주최하는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토론회가 열린다. 심오한 무엇이라도 되는 양 지금 이 나라에서는 임금체계 개편으로 야단이다.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지난 1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의 제목이다. 임금체계를 어떻게 개편하도록 하는 것이기에 매뉴얼에 고용노동부는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새로운 미래를 여는’ 거라고 요란하게 임금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한 것일까.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매뉴얼을 곰곰이 읽어 볼 필요도 없었다. “생산직 근로자의 근속연수별 임금격차(초임대비 30년 이상) 3.3.배, 세계 최고”, “제도적 정년 60세, 체감 정년 53세”, “연간 2천시간이 넘는 장시간 근로국가”. 고용노동부가 매뉴얼의 목차 앞에 커다랗게 숫자와 함께 오늘 대한민국 노동현실이라고 적시해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고용노동부는 요란하게 매뉴얼을 만들어 발표하고 배포했다.

2. “과도한 연공급제 및 복잡한 임금구성으로 일의 가치 및 생산성이 임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이에 따라 공정하고 과학적인 보상체계가 구축되지 못하고 있”고, “생산성과 괴리된 연공급제는 근속에 따라 인건비를 상승시켜 고령자 조기퇴직, 신규채용 감소와 고용 외부화(사내하도급·비정규직 등) 등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연령 상승에 따라 더 이상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연공급을 유지하면서 정년만 연장할 경우 기업의 비용부담이 커”지고, “임금으로 지급되는 금품의 의미가 불명확하고 임금계산이 쉽지 않아 임·단협 혹은 개별 임금협상 때마다 혼선이 초래되고 있”으며, 직장 이동이 쉽지 않고, 근로자 간 임금격차가 확대되며, “낮은 기본급 비중, 성과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연공급은 근로시간에 따른 보상체계와 연계돼 초과근로 등 장시간근로를 초래”하고, “근로자에게 동기부여가 부족하고 고정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고용노동부는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서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17~19면). 그러고 나서, 고용노동부는 매뉴얼에서 “정년 60세 시대를 대비하고, 장시간근로 개선과 일자리 창출 등 노동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복잡한 임금항목을 단순화하고, 연공·근속 중심에서 일의 가치, 능력과 성과가 반영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개선방향을 언급했다(19면).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매뉴얼에서 첫째, 기본급 중심으로 임금 구성항목을 단순화해야 한다며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수당 및 상여금은 기본급으로 통합하고 기타 수당은 직무가치·직무수행능력·성과 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통·폐합”하도록 했다. 둘째, 기본급에서 연공성을 줄여야 한다며 “기본급의 연공에 의한 자동상승분을 줄여나가고, 수당 및 상여금을 기본급에 연동해 지급하는 것은 지양하고, 수당은 본연의 목적에 맞게 항목별로 정액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니 “기존의 연공급(호봉제)을 유지할 경우 개인의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호봉을 승급하거나, 정기승급을 최소화해 연공성을 완화”하고 “연공급 대신 기업의 여건에 따라 직능급 또는 직무급을 새롭게 도입해 운영하”도록 했다. 셋째, 상여금은 성과와 연동돼야 한다며 “과도한 연공급에 기반을 둔 고정급의 비중을 줄이고 성과와 연동된 변동급적 상여금 또는 성과금의 비중을 늘리는 것”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도록 하고 있다(26-27면).

3. 아무리 요란해도 의도는 명확하다. 연공급 중심의 임금제도를 폐지해서 장기근속의 늙은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겠다는 거다. 그리고 그 논의를 관통하는 공통의 인식은 하나다. 연공급 임금제도는 나쁘다. 기업생산성을 저하시키고 국민경제에 좋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매뉴얼에서 말하고 있다. 연공급 임금제도가 문제다. 임금격차·정년문제·장시간노동 등 이 나라에서 온갖 노동문제들은 연공급 임금제도가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서 고용노동부는 매뉴얼에서 직무급·직능급이니 성과급이니 뭔가 근로의 가치를 직접 평가할 듯한 임금제도를 제시하면서 임금체계 개편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서 통상임금 문제까지 들면서 임금체계가 복잡하다며 기본급 중심으로 단순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상이 매뉴얼의 전부다. 더 덧붙여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연공급 중심의 이 나라 임금제도가 나쁘고 문제라고 취급된 지는 오래다. 연공급 중심 임금제도를 폐지해야 할 낡은 임금제도로 낙인을 찍고서 심지어 오늘은 노조간부조차 문제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오늘 대한민국에서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정이 공동인식을 갖고 추진하는 사안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오늘 연공급 중심의 임금제도를 개편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매뉴얼에 새삼 호들갑 떠는 것이 낯설기조차 하다. 그런데 연공급 임금제도가 정말 나쁜가. “일의 가치 및 생산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공정하고 과학적인 보상체계”를 구축하지 못해서 나쁘고, 근속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연령에 따른 생산성 증가가 따르지 않는 경우 정년 연장하는 “기업의 비용부담”이 커지며 근로시간에 따른 보상체계가 되지 못해 “장기간 근로를 초래”해서 나쁜 것일까. 매뉴얼에서는 자동차회사 생산직 노동자가 근속 30년이면 초임자와 3.3배 임금 격차가 나타난다고 연공급 임금제도가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근속에 따라 호봉이 인상되는 연공급 임금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장은 대한민국이다. 사업장 대한민국에 고용된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임금제도가 바로 연공급 임금제다. 2014년 공무원 봉급표는 9급 1호봉은 122만7천600원이고, 31호봉은 269만3천800원이다. 3배는 아니지만 2배 이상의 임금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은 근속에 따라 호봉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근속에 따라 직급이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승급된 직급의 봉급표가 적용되는 것이니 이 점까지 고려하면 근속에 따른 임금격차는 더욱 커진다. 이러한 공무원 봉급표의 급여제도라서 공무원의 “일의 가치 및 생산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공정하고 과학적인 보상체계”를 구축하지 못하며 근속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공무원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공무원 정년연장이 연령에 따른 생산성 증가가 따르지 않아 국가재정에 커다란 비용부담을 가져오고 있고 공무원의 장시간근로를 초래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는 누구보다 먼저 매뉴얼을 작성해서 발표하는 데 관여한 고용노동부 담당공무원들부터 답변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과연 내가 공무원 봉급표에 따라 급여를 지급받고 있는데 그것이 문제라서 아니면 그것이 불만이라서 대한민국의 생산성 향상 등 국가 발전을 위해서 연공급의 공무원 급여체계를 직무급·성과급 중심으로 개편하자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답해 줘야 한다.

4. 사실 근속에 따라 30년 근속으로 3배의 임금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30년 장기근속자가 고액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단정해 말할 수 없다. 신규채용돼서 가장 낮은 호봉으로 지급받게 되는 노동자의 임금이 얼마냐에 따라 30년 근속해서 받는 임금이 고액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그런 임금수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서 30년 장기근속한 노동자들이 지급받는 임금은 어떤 수준인 걸까. 매뉴얼은 분명히 자동차회사의 40대 이상 늙은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낮추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30년 장기근속한 노동자는 초임자의 3배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 후 "아무리 장기근속자라고 하더라도 신입사원의 3배가 넘는 임금을 받기 어렵"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하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몇 십 년간 회사를 위해서 장기근속해 온 노동자를 이제 늙고 힘없다고 푸대접하겠다, 죽어라 부려먹고서 나사 조일 힘 딸린다며 생산성 떨어진다고 임금 낮추겠다고 하는 이 비열한 구실에 나는 뭐라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저 신입사원보다 3배 넘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자동차회사 생산직 노동자를 직접 언급해서 말하고 있으니 가장 높은 호봉인 30년 이상 장기근속한 정년퇴직 직전의 노동자를 두고 하는 것일 텐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재판하고 있는 기아차·현대차 노동자들은 회사 통상임금이 시급 1만원이 안 된다. 올해 대한민국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시급 5천210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3배 넘게 받기나 하고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상시적으로 하는 연장·야간·휴일근로와 연차휴가근로로 엄청난 초과근로를 하고서 받는 임금을 가지고서 연봉으로 따지면 1억원 가까이 받니 어쩌니 하며 떠들어 왔다. 근속 30년 정년퇴직을 앞둔 늙은 노동자가 1억원을 받는다 치자. 이것이 3배 임금이라면 이 사업장 노동자의 초임은 3천만원 정도가 된다. 그것이 연장·야간·휴일근로와 연차휴가근로까지 하고서 지급받게 되는 임금이라는 거다. 결코 많다고 할 임금수준이 아니다. 매뉴얼은 공정하고 과학적인 보상체계를 말하며 일의 가치와 생산성이 반영되는 임금체계로 개편해야 한다며 그래야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정말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서 기업생산을 증가할 방법이 있다. 대규모 시설 투자를 하고서 신규채용을 해서 생산을 하면 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우리의 경우 장기근속자의 임금수준이 높아서 3배의 임금격차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초임자의 임금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런 연공급 임금제도 아래서는 기업은 신규투자를 통해서 시설을 확장하고 신규채용으로 낮은 초임의 노동자를 고용하면 된다. 그러면 지금 대한민국 기업의 생산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부담률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고 당분간 사용자는 임단협 교섭시 노동자 임금수준이 높다고 노조에 사정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매뉴얼에 따라 연공급 임금제도를 개편하는 순간 이런 내 제안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연공급 임금제도는 나쁘지 않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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