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가이드라인의 부활인가. 고용노동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두고 나오는 지적이다. 임금가이드라인은 권위주의 정권의 단골 메뉴였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조치라 했지만 사실상 임금억제방안이었다. 노사의 단체교섭보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우선이었다. 정부가 임금교섭에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노동계는 정부에 ‘임금가이드라인 철폐’를 촉구했다. 노사 간 자율적인 단체교섭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양대 노총 체제가 갖춰지고, 산하 조직에 임금지침을 내리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경영계도 회원사에 임금지침을 내렸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단체교섭의 쟁점이 임금에서 고용문제로 이동했다.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이 사라지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노동부는 올해 두 번에 걸쳐 임금과 관련된 행정지침과 매뉴얼을 발표했다. 통상임금 노사 지도지침에 이어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잇달아 발표했다. 두 가지를 뜯어보면 내용이 유사하다.‘명칭만 바꿨을 뿐 재탕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는 ‘우리나라 임금체계 현황과 개편방향’이 별첨으로 실려 있는데 임금체계 개편매뉴얼은 이를 포장했다. 추가된 내용은 없다. 노동부가 발표할 때마다 강조점을 달리했을 뿐이다. 물론 일관성은 있다. 연공급에 기반한 호봉제 임금체계를 수술하자는 제안이다. 그것도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후 임금교섭이 몰리는 시점에 발표했다. 이러니 일선 현장에선 임금가이드라인이 부활했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매뉴얼에 따르면 노동부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수술하라고 조언한다. 단기적으론 임금항목을 단순화하되 장기적으론 직무급 또는 직능급으로 전환하라고 권고한다. 임금의 구성요소에서 성과금의 비중을 높이라고 주문한다. 자동차 생산직·병원 간호사·은행 사무직 등 업종별 맞춤형 방안도 제시했다. 임금제도를 여럿 나열하면서 권고하고 있지만 속내는 ‘임금을 줄이자’는 얘기다. 그것도 40대 이상의 중·장년 노동자를 겨냥했다. 이들에게 임금피크제와 성과형 임금체계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고령자의 임금을 깎아야만 고용이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임금가이드라인은 임금억제 또는 삭감의 다른 이름이었다. 노동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일선 현장에서 따라갈까. 노동부는 그간 성과연봉제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 바람처럼 임금체계는 변화하지 않았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연봉제 도입 사업장은 66%에 이르지만 사실상 무늬만 연봉제였다. 호봉급을 기반으로 한 연봉제였다. 직무급과 직능급을 도입한 사업장도 호봉급 유지를 전제했다. 노동부가 권고한다고 했지만 일선 사업장은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되레 기업들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변종형의 연봉제·직무급·직능급을 양산했다. 부작용이 나타난 셈이다.

물론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라’는 대법원의 판결로 과거와는 다른 조건임은 분명하다.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을 전제로 한 노동시간단축도 추진되고 있다. 노동부의 행정지침과 매뉴얼은 이것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의 매뉴얼은 어디까지나 정규직 임금체계에 해당되는 얘기다.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기업·하청협력업체에겐 그림의 떡이다. 노동부 매뉴얼대로 40∼50대 정규직의 임금을 깎아 하향평준화하면 이중화된 노동시장과 임금격차가 해소될 수 있을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촉진될까. 그렇게 믿는 이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노동부 매뉴얼대로 하면 대법원 판결의 취지 또는 사라진다. 가산임금인 통상임금의 인상을 통해 장시간 노동관행을 개선하자는 게 대법원 판결의 의미다. 그런데 노동부 매뉴얼 내용을 보면 이런 취지는 아예 실종됐다.

노동부가 임금체계 개편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벌써부터 ‘고령자 임금 깎기’,‘사용자 편들기’라는 비난도 나오지 않는가. 정부가 서두를수록 임금교섭을 앞둔 노사의 충돌만 불러온다.

그러니 노동부는 너무 앞서 나가지 말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소위가 통상임금과 근로시간단축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은 국회와 노사정이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야 추가적인 사회적 대화도 가능하다. 근로시간단축과 따로 가고 있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도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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