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규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3누18034 요양급여 부지급처분 취소, 2013누18041(병합) 요양급여신청서 반려처분 취소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에서 영업소장 등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근로자다. 보험업계의 특성상, 원고는 영업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영업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상시적으로 받았다.

○○생명보험 주식회사는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원고는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내보내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원고는 구조조정 대상자들로부터 심한 욕설을 듣거나 협박을 받았는데, 이는 원고에게 상당한 스트레스가 됐다.

그 이후, 원고는 지방 영업소장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 영업소는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영업 여건도 열악했다. 이 무렵부터, 원고에게 가슴이 답답하고 신경과민으로 뒷골이 당기는 증상이 발생했다.

열악한 영업 여건에도 원고는 영업 실적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영업소 보험컨설턴트 A가 폭행사건으로 해촉되는 일이 발생했고, 원고는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원고는 진급을 위해 어학 및 자산관리사 자격을 준비했는데, 자산관리사 자격시험을 치르면서 뒷골이 당기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터져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원고는 자격시험이 끝난 후 자택으로 돌아가던 중 불안증세 등 발작증세가 발생해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유사한 증상이 영업소에서 아침 미팅을 가진 후 다시 발생했고, 원고는 응급실로 후송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에 공황장애를 이유로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자문의는 발병 원인을 업무상 스트레스만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학적 소견을 피력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토대로 원고의 요양급여 신청을 불승인했다. 이에,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비로소 이 사건 항소심에서 원고의 공황장애는 업무상재해로 인정됐다.

2. 본 판결의 요지

본 판결은 원고의 ‘공황장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면서, 대법원이 오랫동안 반복적·지속적으로 판시했던 법리를 원용하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은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본 판결에 원용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에 정한 ‘업무상의 재해’라고 함은 근로자의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질병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지만,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봐야 하며, 또한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입증이 있는 경우에 포함되는 것이고,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2001. 7. 27 선고 2000두4538 판결 등 참조)”는 판단 기준을 반복적·지속적으로 제시했고, 본 판결도 이 같은 대법원의 판단 기준에 따르고 있다. (같은 취지의 판결은 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누9392 판결, 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누13797 판결, 대법원 1999. 6. 8 선고 99두3331 판결, 대법원 2001. 2. 23 선고 2000두9519 판결, 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7두16318 판결, 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두8553 판결, 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 등 다수 있음)

3. 본 판결의 의의

본 판결 내용은 대법원이 반복적·지속적으로 재확인했던 법리를 다시 확인한 것이므로, 본 판결에서 새로운 법률적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다만, 회사의 인력구조조정에 관여했던 원고의 특이한 업무 이력이 눈에 띌 뿐이다.

반면 본 판결 이면에서는 매우 커다란 의문이 제기된다. 왜 대법원은 그렇게 반복적·지속적으로 동일한 법리를 재확인해야만 하는 것일까. 대법원이 그토록 반복적·지속적으로 동일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왜 유사한 소송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것일까.

그 정답은 근로복지공단이 정확히 알고 있다. 대법원이 반복적·지속적으로 판시하고 있듯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로서 판단돼야 한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 참조)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이 같은 대법원의 판단 기준을 너무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당연히 소송이 줄을 이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자신의 업무 지침과 규정들을 들이밀며 필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강변할 수 있다. 실제로 근로복지공단의 각종 업무 지침과 규정들도 큰 틀에서는 앞선 대법원의 판단 기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산재노동자들이 법원에서 읍소해야만 비로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의사들에게 업무상 인정 권한이 넘어가 버린 현행 업무상질병 인정 시스템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상질병은 법률이 정한 인정 기준에 따라 승인 여부가 결정되는 법률적 영역의 문제다. 산재보험법은 업무상질병 인정 기준을 법률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고, 그 기준에 부합되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의학적·자연과학적 판단은 그 법률적 판단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질병을 의학적·자연과학적 영역의 문제로 넘겨 버렸다. 언젠가부터 업무상질병의 인정 권한은 의사들의 고유 권한이 돼 버렸다. 만약 의사들이 산재보험법의 복잡한 법리와 판례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의사들이 100% 인정 권한을 갖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업무상질병 인정 시스템에 관여하는 의사들 중에 산재보험법을 제대로 숙지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때문에 법률상 기준에는 충분히 부합됨에도, 의사들의 의학적·자연과학적 판단에 의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적·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이에 법원은 오늘도 그토록 지겹게 반복했던 판결 내용을 앵무새 떠들 듯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건 판결과 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무수히 많은 판례들이 그 증거다.

의사들을 탓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만약 산재노동자가 법률상 기준에 충분히 부합됨에도 의사 자신의 의학적·자연과학적 판단에 따라 불승인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의사도 어느 누구보다 괴로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도덕적 측면에서도 의사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근로복지공단의 잘못이다. 애초부터 의사들에게 고도의 법률적 판단을 구하는 일 자체가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4. 결론을 대신해

근로복지공단에게 다시 묻고 싶다. 업무상질병은 법률적 판단의 영역인가, 아니면 의학적·자연과학적 판단의 영역인가. 근로복지공단의 답변이 어떻든 상관없다. 대한민국 국회가 제정한 산재보험법은 업무상질병은 법률적 판단의 영역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산재보험 50주년 행사로 근로복지공단 안팎이 떠들썩하다. 거창한 기념행사를 치르기에 앞서, 아래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곱씹어 보길 근로복지공단에 권한다.

“그 인과관계 유무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로서 판단돼야 한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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