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비정규노동센터)

‘시민’과 ‘노동자’, 이 애매한 경계선상에서 대부분의 시민은 일하는 노동자다. 시민권은 헌법과 민법 등을 통해, 노동권은 헌법과 노동법 등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구현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은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자기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왕가네 식구들'이란 드라마에서 최상남역을 연기하는 한주완이라는 신인배우가 지난해 말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하며 "공공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요즘 따라 애쓰고 있는 아버지들이 많이 계십니다. 노동자 최상남역을 연기하는 배우로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장은 환호했고, 이 시상식을 보고 있었던 나 또한 그가 정말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라 불리던 이들이 당시 철도파업 노동자를 지칭한다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기에. 다음날 신문·SNS 등에서는 '개념배우다', '멋지다'라는 글들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이렇게 상식적인 수준의 발언이 인구에 회자되는 현실, 모두가 '노동'을 하고, '노동자'로 살되, 노동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노동자란 용어를 불온시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과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노동의 추’의 균형을 맞춰 가는 일이 곧 노동운동의 숙명이고, 그것은 곧 대중과의 공감대를 만들지 않고서는 요원한 일일 것이다.



노동과 대중과의 공감대는 이렇게



#1. 가수 이효리씨의 4만7천원 기부와 ‘손 편지’로 보다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재단이 벌이고 있는 ‘노란봉투 캠페인’ 모금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손배·가압류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효리씨의 노란봉투 프로젝트 동참 소식과 손 편지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모금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현재는 2차 노란봉투 캠페인 모금운동이 시작된 상황이다. 이는 단순히 모금활동에서 끝나지 않고 이전부터 심각하게 문제시돼 온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를 사회공론화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 방송인 김제동씨는 쌍용자동차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해고무효확인 판결이 나온 뒤 쌍용차노동자·평택시민들과 함께 토크콘서트 ‘봄날이야기’를 열었다. 그는 “공장 안과 밖,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고 연대하면서 웃으면서 멀리 가 보자”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그의 이야기는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이를 유튜브로 본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삽시간에 전달됐다. 5년이 지나고 있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도록 토크콘서트는 큰 힘을 더해 주고 있다.

#3. ‘100℃’,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최규석은 네이버 웹툰 ‘송곳’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대형마트 야채청과팀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에 대한 투쟁 과정을 중심으로 한 본격 노동만화다. 작가는 웹툰 연재를 통해 보다 쉽게 노동운동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라고 전해졌다. 나는 매주 화요일 아침 네이버 웹툰에서 ‘송곳’을 보고, 이 작품을 본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작품에 대한 댓글에서도 사실적인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4. 세상을 울린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제작부터 개봉까지 사람들의 소셜펀딩과 영화관람을 통한 관심과 참여를 끌어냈다. 이는 부성애를 넘어 노동자 건강권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확산돼 가고 있다.



새로운 방식과 아이디어를 상상해야 할 때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요즘의 대학은 다양한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취업을 한다는 것은 곧 노동자가 된다는 것임에도 대학의 이러한 프로그램 내용 어디를 찾아봐도 노동권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은 보이지 않는다. 애초 공교육 내에서 ‘노동시민권’으로서 노동은 존중되고,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함에도 말이다. 우선적으로 대학 취업지원 프로그램 내에서 노동교육을 필수화하고, 세대별·사업별로 교육의 대상을 세분화해, 그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노동운동이 앞장서 큰 그림을 그려 봐야 할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통해 이미 그 첫 발걸음을 뗐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현장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의 근로계약서·취업규칙 등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현장실무형 강의’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노동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생존의 법칙’,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문을 연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파견노동자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한 연극 ‘브라보 마이 라이프’·노동법 강의에 편성된 노동시트콤 ‘으랏차차’ 등을 통해 노동 이야기가 다양한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과 아이디어들을 상상해 봐야 할 때다. 노동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노동의 문제가 곧 ‘생활의 문제’이고, ‘너와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과 시도를 하는 것, 보다 ‘대중 속으로’ 노동운동이 다가갈 수 있을 때 ‘노동이 행복한 세상’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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