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이 연일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대신 임금을 동결한 LG전자 노사의 합의를 모범사례로 치켜세우면서, 정작 통상임금 문제를 파생시킨 장시간 근로 문제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법 시행을 2년 늦추겠다"며 느긋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핵심적인 노동의제인 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해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소위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계 관계자는 “노사정 대화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임금동결과 장시간 근로 관행 연장이라는 후진적 행태를 옹호하는 방하남 장관의 언행은 한마디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노동계 "임금동결 두둔하는 장관에 실망"=방 장관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한국경총 주관으로 열린 주요기업 사장단 간담회에 참석해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될 경우 기업 규모·업종별로 임금상승 효과에 차이가 있을 것이나 최근 통상임금을 정비한 LG전자 사례를 참고해 노사 협의로 통상임금을 정비하고 임금 구성을 단순·명확히 해 달라”고 밝혔다.

방 장관은 이어 삼성전자의 임금피크제 도입 합의를 언급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임금의 연공성을 완화하고, 직무의 가치·책임, 근로자의 능력·성과를 반영하는 임금체계로의 개편을 준비해야 하나 단기적으로는 정부 지원금을 적극 활용해 임금피크제를 활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LG전자 노경협의회와 삼성전자 사원협의회는 최근 회사측과 협의를 통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과거에 미지급된 초과근무수당 소급청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두 회사는 올해 임금인상도 최소화했다. LG전자는 생산직 임금을 동결하고, 삼성전자는 기본급을 1.9% 올리는 데 그쳤다.

제조업 노동계는 노동집약적이고 야간근로 의존도가 높은 전자업계 선두기업의 이 같은 합의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임금인상을 자제해 기업의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는 접근방식으로는 장시간 근로 관행을 바로잡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는 “노동부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통해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없는 유권해석을 내리더니, 이제는 장관이 직접 나서 임금동결 사업장을 두둔하다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관계자는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늘려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 대신 장시간 노동으로 생산량을 맞추는 후진적 관행을 유지해 왔다”며 “LG와 삼성에 대한 언급이나 근로시간단축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유예하겠다는 방 장관의 발언이 기업들에게 ‘비용부담 없이 장시간 근로를 유지해도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시간단축법 시행 유예 안 돼"=방 장관의 잇단 발언으로 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로 한 국회 환노위 노사정소위의 모양새도 우습게 됐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장관이 밖에서 딴 소리를 하고 다니는데 노사정 협상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통상임금 문제를 계기로 장시간 근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해 온 노동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노동부는 기업비용 부담을 걱정하기에 앞서 '1주일은 5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행정해석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정소위에 불참하고 있는 민주노총도 방 장관의 언행에 우려를 나타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방 장관은 임금체계 개편의 기준으로 사용자의 성과주의만 앞세우고, 임금이 노동자들의 유일한 생활수단이라는 점은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가 과연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것인지, 노동시간단축을 빌미로 임금을 삭감하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과도한 시간외근로를 줄이는 것이 첫 번째 수순인데, 이를 방치한 채 노동자들의 임금만 깎으려 든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이 불러온 기업환경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박사(고용노동연수원)는 “삼성이나 LG가 임금인상을 최소화한 것과 별개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이상 기업들에게도 노동시간을 단축해 통상임금을 줄이는 문제가 중요한 어젠다로 떠올랐다”며 “정부가 기업들의 비용부담을 걱정한다면 노동시간단축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지, 근기법 적용 유예 같은 물타기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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