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사건 심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부의 모습이 안쓰럽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공개변론을 실시했다. 이날 법무부는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전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을 참고인으로 내세웠다.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를 두고 정부와 통합진보당이 공방을 벌이는 자리였다.

유 원장의 발언을 살펴보면 정부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통합진보당은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폐지·평화협정 체결 등 북한의 연방제 통일노선을 따르고 있다"며 "사용하는 표현만 비슷한 게 아니라 DNA 구조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측 김선수 변호사가 "유엔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밝히고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유 원장은 "유엔 위원회에서 그런 발표를 한 것은 민변 같은 국내 단체가 집요하게 찾아가서, 솔직히 말해 로비를 해서 그런 것"이라고 반발했다.

북한에 대한 분노가 그의 이성을 상실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유 원장의 발언에서 "종북 반대"를 빼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면 이해가 가는 면은 있다. 그가 일했던 치안정책연구소의 시초는 경찰청 산하 내외문제연구소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부림사건 관련 재판에서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카(E.H. Carr)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이적표현물로 감정한 바로 그곳이다. 자신의 역사를 공안기관에서 만들어 왔던 유 원장에게 통합진보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존재는 과거를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잘살아 보세" 구호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과 새마을운동이 겹쳐 보인다. 유사 박정희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국민이 미래를 지켜볼 용기를 내는 것은 적어도 과거로의 퇴행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박근혜 정권을 지탱하는 이들이 과거의 유령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령을 퇴치하는 공포영화는 볼만하지만 유령이 사람을 끝내 죽이고 승리하는 영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권에게 흥행 실패가 뻔한 영화 제작을 중단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