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섭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얼마 전 울산에서 형사공판이 열렸습니다. 9명의 노동자들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주거침입·상해·폭행 혐의로, 또 회사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죄명을 놓고 보자면 무슨 폭력배들이 영업장에 무단으로 난입해 폭력을 행사하고 영업을 방해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지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동자들의 작은 소망에서 비롯된 사건입니다.

지회장이었던 망인은 노조전임자가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노조 일도 했습니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는 극심했습니다. 고용안정협약을 위반해서 구조조정을 하고 노조와해를 시도한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벌금 1천만원의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경영지원본부장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했더니, 회사가 노조 파업에 대비해 부당노동행위를 준비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예컨대 “노동조합 내 온건세력 등장 분위기 조성”, “전임자 지원금, 지부 분담금, 노조 여직원 임금지급 폐지” 등을 기획한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산별교섭에 참가하지 않기 위해 회사측은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고, 단체협약 해지, 노조의 조직형태 변경을 통한 친사용자 노조화를 공모했습니다.

회사의 극심한 부당노동행위가 원인이 된 것인지 지회장은 2012년 5월 중순께 말기 간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지회장이 입원했는데도 회사측에서는 누구 하나 병문안을 오거나 하다못해 전화로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지회장은 같은해 7월 사망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망인이 평소 근무한 회사 내 지회사무실 앞 공간에서 노제를 지낼 수 있도록 요청했습니다. 지회사무실 앞에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고 평소에도 노조행사를 그곳에서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사는 회사 내에서 노제를 지낼 수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단체협약에 “회사는 조합의 각종 회의·교육·행사에 필요한 장소와 시설을 제공하며, 이때 조합은 사전에 회사에 통보하여야 한다. 단, 조합과 관련된 상급단체나 다른 노조 및 외부인의 조합 사무실 출입을 협조한다”고 돼 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3일장의 마지막날, 노제 당일이 됐습니다. 회사에서는 화물차량 1대를 이용해 정문진입을 차단하고, 관리직 수십명을 동원해 정문 안쪽을 지키게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유족들과 조합원들은 회사 정문 밖에서 1시간 가량 노제를 지냈습니다.

지회장과 동고동락했던 노동자들은 지회장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 수십년간 지회장의 손때가 묻어 있는 공장과 지회사무실을 보여 주지 않고서는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회사의 정문을 넘어 관리자들을 물리치고 들어갔습니다. 지회사무실과 망인이 근무했던 공장건물 앞에 가서 묵념을 하고 나왔습니다. 망인과 노동자들이 들어가서 나오기까지는 불과 10여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결과 9명의 노동자들이 공동주거침입·공동폭행·공동상해·업무방해 등 무시무시한 죄명으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망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리려는 노동자들을 막아선 회사 관리자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를 밥 먹듯이 해 온 회사, 지회를 대표하는 지회장이 말기 간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도 문병 한 번 와 보지 않은 회사는 또 어떤가요. 노동자들은 일하다 죽어도 회사 안에서 장례식를 치를 수 없는 것인가요.

회사라는 공간은 사업주의 땅이지만 또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입니다. 노동자들이 조합활동을 위해, 특히 장례절차를 위해 회사에 출입하는 것에 대해 사업주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회사 안으로 들어간 것도 사실이고, 일부는 관리자와 마찰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업무가 잠시 중단됐을 수도 있으나 그들은 ‘무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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