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철도나 현대자동차 파업처럼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파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하지만 주체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보면 2000년대 노동운동 중 단연 돋보이는 노동조합이 있다. 3월 초부터 파상파업에 돌입한 서울지역 시설관리 노동자로 이뤄진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다.

서경지부의 핵심 요구는 시급 인상이다. 현재 5천700원인 시급을 6천340원으로 인상하라는 것이다. 통상임금 기준으로 나가는 제 수당이나 상여가 없다 보니 시급 인상이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수령액 기준 실제 인상액은 월 15만원 내외다. 서경지부에서 가장 많은 조합원이 있는 미화직의 경우 현재 월 임금이 130만원으로 한국 노동자 월평균 임금 33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대학 시설관리 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동정에 가까웠다. 노동운동 내에서 역시 이들의 투쟁은 저임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정도로 평가돼 왔다. 그런데 사실 서경지부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들의 투쟁은 동정의 대상도, 단순한 생존권 투쟁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운동이 그렸던 이상적 모습을 실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연대를 통한 전략조직화와 조직의 성장, 사업장을 넘어선 초기업적 교섭과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돼 버리는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법정 최저임금을 훌쩍 뛰어넘는 시급을 쟁취해 나가는 것도 이런 운동의 결과다.

200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전략조직화였다. 민주노총은 얼마 전 대의원대회에서 전략조직화기금 200억원 모금을 결의했다. 전략조직화와 관련해 여러 해외사례가 소개되고, 정책도 수차례 논의되고 있지만 사실 답을 어렵게 찾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서경지부가 한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형태로 전략조직화를 성공시킨 사례이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공공노조 1기 전략조직화 사업으로 선정돼 2009년 3월부터 2011년 2월까지 2년 동안 진행된 대학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은 공공노조와 사회단체, 그리고 학생조직이 함께했다. ‘밥 한 끼의 권리’로 이름 붙여진 캠페인을 통해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려 내며 사회적 연대를 넓게 만들었고, 먼저 조직된 미화 노동자들이 직접 옆 대학을 방문해 노조를 조직했다. 노조를 깨기 위해 용역업체가 폐업을 하고, 대학 노무팀이 노조와해 공작을 펼 때면 대학생들이 헌신적으로 노조와 연대했다. 서경지부 전체가 산별노조답게 함께 싸움을 만들었다. 그 결과 2007년 말 100여명에 불과했던 대학 시설관리 조합원은 현재 14배가 늘어난 1천400여명에 이르게 됐다.

서경지부가 전략조직화의 모범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단순히 많은 조합원을 모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직화를 통한 성장이 조직의 DNA가 돼 일상 사업의 상당 부분이 언제나 전략조직화에 집중돼 있고, 또한 조직된 조합원을 기업별노조가 아닌 철저하게 산별노조로 묶어세우는, 어쩌면 조직화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노동운동의 혁신을 모색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경지부는 노조의 중앙교섭이 없는데도 지역지부 독자적으로 집단교섭을 만들었다. 요구-교섭-투쟁을 사업장이 아닌 지부 차원으로 집중시켰다. 2010년 3개 사업장 8개 용역업체로 시작해 현재 16개 사업장 24개 용역업체가 집단교섭에 참여하고 있다. 약간의 복리후생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공동임금요구안은 명분만 공동이 아니라 실제 공동으로 관철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서경지부는 조직화와 함께 산별 질서 또한 전략적으로 세워 나갔다. 사업장 분회가 있기는 하지만 노조 운영은 지부 주도로 이뤄진다. 조합원들의 정체성도 다른 노조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초기업적이다. 금속노조를 비롯한 한국의 산별노조들이 지역지부를 통해 만들고자 했던 모델에 가장 근접해 있다 할 것이다.

서경지부가 더 놀라운 것은 조합원 평균 나이가 60세에 이르는 고령노동자들의 노조란 점이다. 시설관리 업종은 한국의 대표적 고령 노동시장이다. 서경지부는 서울의 15만 노동자 중 2천여명을 조직하고 있다. 조직률이 높지는 않지만 서경지부의 집단교섭이 시장임금을 전반적으로 높이고 있다.

민주노조 전체 차원에서 서경지부가 소중한 이유는 앞으로 예상되는 노동시장의 가장 큰 변화가 고령화이기 때문이다. 현재 55세 이상 임금노동자 중 가장 많은 수인 16%가 시설관리업에서 일하고 있다. 제조업은 13%, 건설업은 10%에 불과하다. 베이비붐세대의 대규모 은퇴가 앞으로 10년 가까이 예정돼 있고, 한국의 노동자들이 은퇴 후에도 평균 10년 가까이 더 일하는 것을 감안할 때 시설관리업종 노동시장이 팽창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해당 업종의 대표 노조인 서경지부가 어떤 노동조건을 만드느냐는 은퇴를 앞둔 모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지만 가장 높은 수준에서 노동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는 서경지부의 투쟁을 응원한다. 올해 임투가 조만간 마무리될 수도 있을 텐데 그 뒤엔 지금까지 그랬듯이 서경지부는 또다시 조직화를 위해 전략지역을 뛰어다닐 것이다. 서경지부의 모범이 노동운동 진영에서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