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오후 '2014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워크숍'이 열린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맡은 평가위원들을 팀별로 위촉하는 자리에서 노사관계 항목을 담당하는 노사복리후생팀 위원들이 줄줄이 사퇴의사를 밝힌 뒤 자리를 뜬 것이다. 이날 위원직을 사퇴한 인사들은 노사복리후생팀장에 내정됐던 사립대 교수 A씨를 비롯해 변호사·노무사·교수 등 8명이나 된다. 노사복리후생팀 정원 15명 중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 것이다.

◇전문가들 경영평가 기조 우려=11일 경영평가 위원들과 노동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경영평가단(단장 염재호 고려대 부총장)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계가 "정부가 경영평가를 무기 삼아 노사관계에 지배·개입하려 한다"며 경영평가 거부를 선언한 데다, 전문가들까지 경영평가 기조에 반발해 잇따라 사퇴했기 때문이다.

경영평가단은 평가단이 발족하고 3일이 지난 11일에야 노사복리후생팀 평가위원 선정을 마무리하는 등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워크숍에 참가했던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위원들이 사퇴한 배경에는 정부가 정상화 대책의 이행 여부를 평가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는 이날 워크숍에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이행실적을 평가해 그 결과에 따라 신상필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공기관 보수와 복리후생 개선 등 노사 단체협약 개선 여부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노사팀→노사복리후생팀' 이름도 바꿔=정부가 경영평가를 앞세워 노사관계에 지배·개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노사관계를 평가하는 팀의 이름을 기존 '노사팀'에서 '노사복리후생팀'으로 바꾼 것도 이 같은 정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팀장직을 고사한 A씨는 "위촉이 되기 전에 이미 (평가단에)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사퇴)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위원직을 사퇴한 B씨는 "수년간 노사관계를 평가해 온 지표가 있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맞춘 평가지표를 들이밀면서 점수를 매기라고 하면 문제가 있지 않겠냐"며 "객관적이어야 할 경영평가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될 여지가 많아 올바른 평가가 될 수 없겠다고 판단했고, 다른 분들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B씨와 함께 사퇴의사를 밝힌 C씨는 "여러 가지 우려가 되는 점이 있어 위원직을 사퇴했다"며 "지금 시점에서 특별히 할 얘기는 없다"고 밝혔다.

실제 워크숍에 참석한 위원들 사이에서는 "시험범위도 아닌데 시험을 보면 학생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팀명이 갑자기 바뀐 이유가 뭐냐"는 문제제기가 잇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평가지표는 전혀 변동이 없는데 이름 하나 바뀐 걸로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문제 삼느냐)"며 "일종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주장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연맹 공공기관사업팀장은 "경영평가 자체를 왜곡해 공공기관들에게 문제가 많은 정상화 대책을 수용하게끔 압박하고 있다"며 "지금 진행되는 경영평가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공공기관 혁신이라는 명제는 타당하지만 그것이 구성원들의 의견이나 권리에 대한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이 전문가는 "공공기관을 혁신하려면 중장기적 로드맵을 가지고 구성원들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톱다운 방식은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은 5월까지 평가를 진행해 6월 말 평가 결과를 발표한다. 정부는 9월 정상화 계획 이행실적 중간평가를 실시해 10월10일 '공공기관 정상화데이'에 결과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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