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4년 3월, 다시 봄이다. 임금 등 단체협약 요구안을 확정하며 노동조합마다 2014년 임단투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지난 3일 금속노조도 37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2014년 4대 투쟁목표와 4대 임금·단체협약투쟁 15만 공동요구안을 확정했다. 다른 산별노조, 그리고 사업장노조도 이제 2014년 임단협 요구안을 정하고 있다. 그리고 노조는 이를 위한 단체교섭과 이를 관철하기 위한 쟁의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총연맹이나 산별연맹 차원에서 전개하는 박근혜 정권 심판·민영화 등 정부정책 반대 등을 위한 총파업투쟁·총력투쟁의 구호는 이제 임단투 속에서 외쳐질 것이다. 조합원의 권리는 지금까지 이런 임단투를 통해서 확보해 왔다. 2014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총연맹 차원에서 국가권력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고자 하더라도 현실은 임단투를 외면하고서는 노동자권리를 쟁취해 내기 어렵다. 노조법 등 실정법의 제약이 아니라도 그렇다. 이 나라 노동자들 스스로 정해 놓은 노동조합 규약이 단위노조가 조합원권리를 위한 교섭과 쟁의의 권한을 갖는 것으로 명시해 놓았기 때문에 노조 조직에서 투쟁의 힘은 단위노조에 있다. 그리고 기업별 단위노조에서 산별 단위노조로 전환돼 온 이 나라 산별노조 건설과정은 산별노조의 규약에도 사업장노조조직이 힘을 갖고 있다. 규약으로 보장된 힘이든 현실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힘이든 이걸 무시하고서는 노조운동이 외치는 구호는 그저 구호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규약에 반하는 힘을 어떻게 통제해서 조합원이 산별전환의 결의로 선언한 규약대로 노동조합이 교섭과 쟁의 등 활동이 이뤄지도록 할 것인가가 이런 현실에서 산별노조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임금 등 단체협약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한 임단투는 노동조합이 단지 구호가 아닌 구체적으로 조합원의 권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실천투쟁으로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총연맹의 총파업 구호가 조합원의 파업 없이 광장에서 외쳤다 해도 이 임단투의 파업 구호는 조합원의 파업 없이 외쳐서는 노동조합의 존립이 어렵다.

2. 노조운동은 승리를 잊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노조운동은 수세적인 구호만 외치고 있다. 패배하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스스로 아흔아홉 번 패배해도 단 한 번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 분명히 이 나라에서 자본과 권력이 노조운동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략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라고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활동하라고 대한민국 헌법은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했지만 오늘 이 나라에선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박탈하려는 공세에 겨우 맞서고 있을 뿐이다. 이에 맞서려는 것이 총연맹의 총파업 구호이다. 그런 구호가 전부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노동자들에게 말하고 있지 못하다. 구호는 방어적이고 투쟁은 수세적이다. 침해받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것이 구호이고 이에 맞서 부당하다고 외치며 저항하는 것이 투쟁이다.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연금개혁 저지·노조탄압 규탄·박근혜 정권 심판 등의 구호를 외쳤던 지난 2월25일 민주노총 총파업도 그랬다. 그 이전에 전개했던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총연맹의 총력투쟁이니 총파업투쟁도 그랬다. 문제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이런 투쟁의 구호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노조운동은 현장의 정서니 현실이 어떻다 하며 낙담한다. 총연맹·산별연맹·산별노조는 투쟁을 외치는데 현장은 사업장노조조직은 외면한다며 노조운동은 희망이 없다고 좌절의 말을 하고 있다. 상급조직은 투쟁을 외치는데 노동자는 사업장조직은 투쟁을 외면한다. 이것이 현실진단이다. 그런데 이런 진단을 하고서는 다음 투쟁의 방법을 찾기 어렵고 찾아봐야 뻔하다. 자본과 권력의 공세는 계속될 것이고 총연맹 등 상급조직은 다시 투쟁을 결의할 것이고 사업장조직과 노동자들은 그 결의에 따라 투쟁하지 않을 것이니 낙담은 점점 절망이 되고 만다. 이렇게 노조운동은 이 나라에서 패배를 결의하고 조직하고 있다.

3. 패배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이기지 못할 길인데도 그 길은 나의 길이다 하고 가면 된다. 그러면 패배는 언제나 나의 것이다. 이기지 못할 길이란 당장은 물론 앞으로도 그런 방법으로는 이길 수가 없는 길을 말한다. 그러니 오늘은 이기지 못하더라도 내일은 이길 수 있는 길이라면 이기지 못하는 길은 아니다. 노동운동은 이기지 못하는 길로만 달려왔던 거 아닐까. 노동운동이 세운 세상은 오늘 보이지 않는다. 수백 년 동안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노동자세상을 꿈꿔 왔다. 그 노동자세상의 모습은 하나는 아닐 것이다. 노동자만이 독점하지 않아도 적어도 노동자도 주인인 세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없다. 무엇일까. 수백 년의 운동은 이길 수 없는 길로 그것이 나의 길이라고 달려 왔던 것이다. 올바르니 이기지 못해도 나는 간다 하며 노동운동은 오늘도 그렇게 가고 있는가. 이렇게 몇 세기에 걸쳐 전개되는 거대한 노동운동은 그렇더라도 오늘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해야 하는 노조운동은 패배만을 노래해서는 안 된다. 주인이 아니라도 노동자가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도록 노동자단체인 노동조합은 권리를 확보해 줘야 한다. 노동운동은 아흔아홉 번 패배를 노래할지라도 노조운동은 단 한 번의 패배조차 노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 한 번의 패배조차도 노동자에겐 치명적이다. 고용·임금 기타 근로관계에서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주장할 권리를 잃고 노조운동을 외면할 수도 있다. 한번의 패배로도 사업장에서 쫓겨나고 임금을 삭감당한다. 노동자가 주인 되게 하는 세상을 꿈꾸는 노동운동은 아니라도 이 세상에서 노동자권리를 확보해야 하는 노조운동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법이 투쟁의 무기를 보장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단체교섭하고 단체행동 할 수 있는 노동기본권을 헌법은 보장했고,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단체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노조법은 정하고 있다. 노조운동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별 수 없이 노동조합은 이 힘으로 조합원에게 노동자권리를 확보해 줘야 한다. 이 힘은 패배를 위해서 보장한 것이 아니다. 조합원에게 노동자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패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보장한 것이다. 그런데도 노조운동이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면 이건 노조운동이 패배의 방법만 찾고 있기 때문이다. 힘을 사용할 방법을 찾지 않고 힘을 낭비할 방법을 찾아서 투쟁의 구호를 외치기 때문이다. 노조운동에서 요구의 수준은 조합원에게 확보해 줄 노동자권리가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요구가 조합원을 투쟁에 나서게 한다. 투쟁의 대의가 아니라 투쟁의 필요가 조합원을 파업투쟁에 참여하게 한다. 조합원에게 구체적으로 확보해 줄 노동자권리를 말해 주고 그걸 위해서 투쟁을 말해야 한다. 이런 투쟁을 두고서 경제투쟁이라는 비난의 말은 정당하지 않다. 조합원에게 이 세상이 선언한 노동자권리를 구체적으로 확보해 주는 것이므로 사업장에서 사용자를 상대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인 만큼 경제적인 것이다. 당연히 경제투쟁이고 그것은 노동자에게 구체적인 권리를 확보해 주는 것으로 정당한 투쟁이다. 이를 두고서 투쟁의 수준이 어떻다고 비난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얼마나 더 구체적으로 조합원에게 쟁취해 내야 할 노동자권리라고 알려서 그 투쟁에 참여시켜 낼 수 있느냐로 바라보고 평가해야 한다.

4. 2000년대 초반 산별노조로 노조활동이 전개되고 나서 노동조합이 당연히 해 내야 할 이런 투쟁을 자신의 구호로 제대로 내세워 전개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 나라 노조운동은 거창한 투쟁의 대의를 상실해서 패배해 온 것이 아니다. 조합원의 권리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투쟁의 필요에서 멀어져서, 산별교섭 쟁취·노동법 개정 투쟁 등의 산별노조의 구호 속에서 패배해 왔다. 금속노조는 지난 3일 임금·단체협약 공동요구안으로 통상임금을 내걸었다. 금속노조가 이 요구로 법과 규약이 보장한 교섭과 쟁의의 권한을 사업장조직에 위임하지 않고 행사해서 조합원을 하나의 투쟁으로 조직해 낸다면 산별노조 출범 이후 잃어버린 10여년에서 벗어나 이 나라 노조운동사는 새로운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권리를 놓지 말아야 조합원을 투쟁으로 조직할 수 있다. 투쟁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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