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공인노무사
충남비정규직
지원센터 상임대표

55세는 되고 54세는 안 된다?

얼마 전 천안시가 전액 출자한 비영리공공법인인 천안시시설관리공단이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해 온 청소원 등을 기간제로 직접고용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고령자를 우선 고용한다는 명목으로 응시자격을 만 55세 이상 고령자로 제한해 전부터 일하던 55세 미만 노동자를 직접고용 대상에서 배제시켜 논란이 됐다.

공단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고령자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라지만 연령차별금지법 어디에도 준고령자나 그 이하 연령자를 배제하고 고령자만을 고용하라는 규정은 없다.

그렇다면 공단은 왜 용역업체 소속 청소원 등을 직접고용하면서 응시자격을 만 55세 이상으로 제한한 것일까. 해답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있다. 기간제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기간제 노동자를 2년 넘게 계속해서 고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만 55세 이상의 고령자에 대해서는 2년이 넘더라도 계속해서 기간제로 고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공단이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해 온 청소원 등을 직접고용하는 과정에서 용역업체 소속의 한 여성노동자는 만 55세 이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응시자격이 없어 결국 일자리를 잃었다.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주는 것은 기간제법을 악용하려는 꼼수일 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다.

"진정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면 응시자격에 연령제한을 두지 말라"는 충남비정규직지원센터의 요구에 공단은 "앞으로는 채용공고시 연령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 채용 과정에서 연령제한을 두지 않는지 지켜볼 일이다.

1년 미만은 되고 1년 이상은 안 된다?

공단에는 이상한 고용방침이 하나 더 있다. 용역업체 노동자들을 용역업체 소속으로 11개월 근무한 시점에 기간제로 직접고용한 것이다. 때문에 이들 노동자들은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최근 당진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당진에 있는 공공기관에 직접고용돼 기간제로 일하는 노동자들인데, 근로계약기간을 355일로 정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계약갱신을 거절하고 간접고용으로 전환했는데, 용역업체에서도 355일짜리 기간제 근로계약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주는 것도 모자라 1년 미만으로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을 번갈아 가며 회전문식으로 고용한 셈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의 탈을 쓴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면탈하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5세는 되고 54세는 안 되고, 1년 미만은 되고 1년 이상은 안 되는 이상한 고용방침이 혹시 천안과 당진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른 지역의 사례를 살펴봤다. 예상대로 꼼수를 부리는 지역이 천안과 당진만은 아니었다. 서울 등 전국의 시설관리공단에서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정부는 이상한 고용방침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바로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