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유조선 충돌사고로 기름이 유출된 전남 여수 남포동 지역에서 정상 수준의 20~100배를 웃도는 벤젠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역주민들의 몸속에는 일반 국민보다 20배 정도 많은 크실렌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벤젠과 크실렌은 두통·구토 증상을 유발하고 심하면 각각 백혈병과 폐렴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노총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 21개 노동·보건·환경단체로 구성된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준)’는 10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수 기름유출 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사고지역 대기에서 21.4~52.2피피비(ppb)의 벤젠이 검출됐다. 다른 지역(0~0.52피피비)과 비교해 20~100배 많다.

휘발성 유기화합물질인 벤젠은 대기 중에 노출되면 8시간 안에 사라진다. 이번 조사는 사고가 난 뒤 닷새 뒤에 진행됐다. 그런데도 다른 지역보다 최대 100배 정도가 검출된 것은 사고 당시 유출된 벤젠량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고용노동부가 정한 작업장의 벤젠노출 기준은 1피피비에 불과하다”며 “사고가 나자마자 방제작업에 긴급투입된 현지주민들이 구토와 두통에 시달린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의 체내에서는 독성물질이 나왔다. 주민들의 소변을 분석했더니 톨루엔과 벤젠은 미미하게 검출되거나 나오지 않은 반면 크실렌은 최소 22.4mg/L, 최대 56.4mg/L가 검출됐다.

크실렌은 몸속에 들어가면 1시간30분 안에 빠져나가지만 10~20%는 지방조직에 쌓였다가 58시간이 지나서야 몸에서 사라진다. 유출사고 당시 엄청난 양의 크실렌이 체내에 흡입됐다는 얘기다.

이윤근 부소장은 “벤젠과 톨루엔도 몸에 들어가면 각각 5시간과 24시간 뒤에 빠져나가기 때문에 흡입량이 적다고 장담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화학물질 사고시 주민들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권리와 행동 매뉴얼이 필요하고, 화학물질 정보를 사전에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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