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어머니는 퇴근길 빙판길에 넘어져 팔을 다친 뒤 일자리를 잃었고,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이 좋지 못한 데다 작은딸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결국 생활고를 이겨 낼 수 없었다. 한국 사회의 고용안전망과 및 사회복지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가 일자리를 잃었지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대상이 못 됐고 부양의무제가 버티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에서도 비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있는 복지제도도 이렇게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지만 알았더라도 세 모녀는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제 한국 사회의 복지제도의 문제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미 있는 제도라고 항변하는 데 그쳐야 할까. 정부는 국민이 생활고를 비관해 죽어가는 일이 더는 없도록 4대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근본적인 제도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박근혜식 기초생활보장법 또 다른 '세 모녀' 야기할 것 

송경용
기초생활보장지키기
연석회의 집행위원장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가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고립으로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리기까지 사회적 안전망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만약 어머니가 실직했을 때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었고 산재보험과 최저생계비가 보장됐더라면 죽음까지 갔을까. 사회복지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멀쩡한 청년도 취업이 안 되는데 장애인이 아닌 이상 근로능력자로 판정하는 식의 가혹한 잣대만 세우는 것이 문제다.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모든 걸 개인 책임으로 돌려선 안 된다. 그러면 정부의 존재 의의도 사라진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하며 최저생계비제도를 없애려고 한다. 사람이 이렇게 최저생계도 보장받지 못한 끝에 죽고 있는데 제도를 확대하기는커녕 있는 것마저 축소하다니 말이 안 된다. 실제 사회보장이 필요한 빈곤층 400만명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130만명도 안 된다. 당장 수급이 필요한 사람도 17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최저생계비제도를 강화해야지 절대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적극적인 빈곤방지 대책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는 옛날처럼 '네가 열심히만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사회복지를 확대하든가 아니면 사회공공적 일자리를 늘려 빈곤층의 생계와 사회서비스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정책을 적극 펼쳐야 한다. 사회복지를 시혜로 여기는 사고도 바꿔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사회복지 보장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시민적 권리와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다.

단기적 '서비스'보다 기초적 사회안전망 확장해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찾아가는 복지서비스와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빈곤층에 대한 일제조사는 그 전에도 죽 진행해 왔다. 그러나 수급자 수가 늘어난 적은 없었다. 지난 2011년 화장실에서 살고 있던 '화장실 삼남매' 사건 이후에도 정부는 일제조사를 진행했고 전국 1만여명에 대한 긴급지원을 실시했다. 그러나 수급자수는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최근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은 이들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없다. 수급 자격에서 탈락했거나 신청해도 자격을 못 받는 이들이다. 가난이 사회안전망의 해체와 더불어 많은 국민들에게 깊고 넓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국가의 복지기준이 너무 낮다. 복지제도가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다.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강화, 사회복지 공무원 충원 좋다. 상시적인 정부의 의무다. 그러나 근본 대책이 아님을 분명히 인정하고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부양의무제 폐지·기초생활보장 대상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

세 모녀의 경우 단 한 번의 소득 중단이 생존을 위협했다. 이들이 비정규직이라서, 아파서, 신용불량자라서, 또는 어떤 이유로 사회안전망에서 탈락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실제로 아파도 진료기록이 없다고 건강보험에서 배제되고 실업급여를 못 받는 식으로 제 역할을 못 해주는 사회안전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고용보험·산재보험 사각지대부터 없애야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세 모녀의 비극적인 선택 이후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긴급지원제도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생계를 책임지던 근로자가 퇴근길에 다쳐서 일자리를 잃게 돼도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점 또한 지적돼야 한다. 공무원과는 달리 근로자가 출퇴근 중에 발생한 사고는 원칙적으로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아서 산재급여를 받을 수 없다. 또한 의사소견서와 사업주의견서 등을 구비해 어렵게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인정받더라도, 다쳐서 재취업활동을 할 수 없는 동안은 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다. 다칠 때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의 상병급여는 처음부터 구직급여를 받지 않았다면 받을 수 없다. 엄격한 수급요건 때문에 취약계층이 고용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적용 제외와 보험료 미납 등으로 인한 가입 측면의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만큼이나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 또 다른 비극적인 사건을 막기 위해 △출퇴근 재해의 산재 인정 △피보험자격 확인청구제도 활성화 △상병급여의 수급요건 인정 등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세 모녀 사건 안타깝다면 부양의무제부터 폐지하자  

제갈현숙
사회공공성연구소 연구실장

기초생활수급자수는 계속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빈곤율이 감소해야 되는데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빈곤문제는 심화하고 있는데 정부가 부정수급 논리를 내세워 기초생활지원비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자살로 인해 이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의 논리는 홍보를 통해 정부의 복지제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한다. 만약 송파구에서 자살한 어머니가 복지혜택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부양의무제도와 식당에서 받는 임금이 소득으로 잡혀 복지대상에서 탈락했을 것이다. 설령 그가 자활근로대상이 된다고 해도 그녀가 받는 임금은 최저생계비 수준 이하다.

정부는 복지혜택의 문턱을 낮추면 복지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한테까지 복지혜택이 가기 때문에 더 어려운 이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빈곤문제에 대해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하지만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의 논리는 복지대상이 확대되고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복지금액이 높아지면 누가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이면에는 '낮은 임금'이 있는 것이다. 저임금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하는데 '근로의욕 저하'라는 황당한 논리를 대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보편적 복지확대 공약을 걸고 당선됐다.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두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안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기초생활지원비가 시혜가 아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가 되도록 가구당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도록 올려야 한다.

현행 복지제도 한계 드러나 … 범정부적 제도개선 필요 

은수미
민주당 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근혜 대통령의 세 모녀 사건과 관련한 지난 4일 발언이 복지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였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백번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세 모녀가 비극적 선택을 하게 된 이번 사안의 본질적 문제를 심각하게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선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현행 실직자 구제제도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공무원이나 군인들에게는 적용되는 출퇴근재해보상제도가 일반 시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퇴근길에 빙판에 미끄러져 팔에 골절상을 입은 어머니는 일자리를 잃게 됐지만 이런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다친 몸으로 구직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실업급여제도로도 구제될 수 없었다. 현행 제도는 구직활동을 해야만 실업급여를 주도록 돼 있어서 어머니에게 적용될 여지가 없었다.

공적부조제도의 허점도 드러났다. 딸은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이 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자리의 질이 터무니없이 낮았고, 새로운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사회적 지원제도는 거의 전무했다. 박 대통령의 계속된 공약파기가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복지국가를 내걸고 당선된 박 대통령은 먼저 여당을 설득해 현재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복지법안들을 우선 통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현재의 제도들을 전면 재점검하고, 다시는 제2, 제3의 세모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범정부적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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