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른 워크아웃(기업 개선작업)은 원래 한시적 제도였다. 1998년 6월 제정돼 2001년까지만 시행하기로 했다가 현실적 이유를 들어 계속 연장됐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기한이 2015년까지 늘어났다.

워크아웃이 이렇게 상시화되는 이유는 경영진과 채권자가 노동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해당 제도가 법정관리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의 경우 법원이 경영진과 채권자에게 일정한 희생을 요구하고, 자료도 제한적이나마 노동자에게 공개한다.

반면 채권은행과 경영진의 협약으로 이뤄지는 워크아웃은 자료 공개도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양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갖은 꼼수로 제3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워크아웃 5년 만에 최근 워크아웃 졸업이 이야기되는 금호그룹이 대표적이다. 잠시 살펴보자.

금호그룹 박삼구·박찬구 형제가 경영권 분쟁에 빠져 있던 가운데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상황에서 그룹의 대표기업들이 일시에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그룹 전체에 현금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 대규모 차입을 통해 2000년대 중반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을 인수한 것이 화근이었다.

누가 봐도 무리한 인수합병이었는데, 경영권 획득을 위해 상대보다 나은 실적이 필요했던 형제가 앞뒤 안 가리고 인수합병을 추진한 것이었다. 계열사의 자금을 탈탈 털어 인수자금을 마련했고, 심지어 투기성 펀드까지 끌어들였다. 그리고 2009년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문제를 일으킨 두 형제는 이후에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을 지주회사로 해서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금호그룹은 워크아웃이 끝나 가는 지금 박삼구 회장이 지배하는 금호산업-금호타이어-아시아나항공을 주축으로 한 그룹과 박찬구 회장이 지배하는 금호석유화학과 그 계열사 그룹으로 나뉘었을 뿐이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이 매각됐지만 어차피 두 회사에 박씨 일가의 돈은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남의 돈과 회삿돈으로 인수한 회사다. 박씨 일가가 소유하던 주식 일부가 워크아웃 중에 무상감자로 사라졌지만, 어차피 경영권과 관련한 주식이 핵심이니 만큼 그룹 전체 경영권에 이상이 없다면 큰 변화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채권단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규모의 워크아웃이 진행된 금호타이어를 보면 산업은행·우리은행 등은 1조원의 채권 중 절반에 대해서는 상환 일정을 조정하고, 나머지 절반은 주식으로 전환했다. 주식 전환 당시 가격은 주당 5천원이었는데, 현재 주가는 주당 1만4천원에 이른다. 채권단이 워크아웃 종료와 함께 금호타이어 주식을 매각할 경우 매매 차익만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상환 연기한 5천억원도 이자를 꼬박꼬박 챙겨 받아 낼 예정이니, 채권단은 5년간 수익률이 100%가 넘는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도대체 이렇게 경영진과 채권단 모두 손해가 없으니, 워크아웃이란 말이 무색하다. 워크아웃이란 채권자와 채무자가 상호합의하에 기업 정상화를 위해 희생을 나누는 것인데 정작 둘 다 손해가 없다. 아니, 채권자들에게 워크아웃은 초고수익 투자가 됐고, 박삼구·박찬구 형제는 경영권 분쟁을 끝내고 그룹을 둘로 나눠 가지는 그룹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는 성과를 챙겼다.

이러한 윈윈 게임의 배경에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다. 금호그룹 노동자 대부분은 정리해고·임금삭감·상여금 반납·복지후생 축소·외주화 등을 겪어야 했다. 노조가 있는 금호타이어의 예를 보면, 2007년 기준으로 물가상승률과 수익상승률을 감안해 계산할 경우 2010~2013년 4년간 6천억원이 넘는 인건비를 삭감당했다. 워크아웃 기간에 신규채용된 노동자들이 임금삭감을 당한 탓에 대기업에서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국회에서도 워크아웃제도가 기업 부실의 책임을 채권자-채무자의 담합 속에 노동자나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기식 민주당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워크아웃을 시행한 120개 기업 중 80% 가까이는 대주주가 바뀌지 않았고, 대주주의 워크아웃 기간 자본 투입은 전체 자금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는 워크아웃 종료와 임금회복·임금인상을 내걸고 올해 임단투를 준비하고 있다. 금호그룹 사례를 계기로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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