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4년 2월25일은 민주노총이 예고한 국민총파업의 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의 날에 총파업으로 민주노총을 침탈한 권력을 심판하겠다고 위원장이 선언하고 대의원들이 결의로서 예고했던 날이었다. 그리고 예고한 날이 왔다. ‘국민파업대회’가 있었다. 서울광장·부산역광장 등 전국 12개 지역에서 ‘박근혜 정권 1년 이대로는 못살겠다. 국민파업대회’라는 집회가 있었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파업위원회가 개최한 집회였다. 민주노총은 전국 867개 사업장에서 전면·부분·간부파업을 하고 연가·총회투쟁을 하는 방법으로 총파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국민파업위원회는 이날 서울광장 4만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10만여명이 대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2. 총파업의 날이었지만 총파업은 없었다. 민주노총은 867곳에서 총파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지만 그건 전면파업이 아니라 부분파업·노조간부만 파업한다는 간부파업이고, 그것도 연차휴가 사용하고서 단체협약상 보장된 조합원총회를 활용해 국민파업대회에 참석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철도노조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총파업의 날에 하루파업을 했다. 철도노조는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의 계기가 됐던 사업장이고,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미 단체교섭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쟁의 중인 상태였다. 이번 총파업을 앞두고 금속노조가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는 재적 조합원의 35.6%와 32.7%의 찬성에 그쳤다. 금속노조 전체 재적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을 얻은 것인지는 투표를 실시한 금속노조가 그 결과조차도 발표하지 않아 알 수가 없으나 찬성률이 절반을 밑돈 것으로 알려졌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민주노총 총파업이 결의되면 그 결의에 따라 실제로 파업을 해 왔던 거의 유일한 산별단위였던 금속노조조차도 이번 총파업은 할 수가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 2014년 2월25일은 총파업이 없는 국민총파업의 날이었다.

3. 이번 국민총파업을 앞두고 경총과 고용노동부는 정치파업을 말하며 불법파업이라고, 중단하라고, 엄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노동탄압 분쇄·민영화 및 연금개악 저지 등이 이번 총파업의 목적이지만 이 조차도 법원이 불법이라고 보는 파업이고 더구나 박근혜 정권 심판을 국민총파업의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정치파업이 아니라고 민주노총이 변명할 일도 아니다. 박근혜 정권 심판으로 해서 이번 총파업은 국민총파업으로 명명돼서 민주노총 외에 시민·사회단체까지 국민파업위원회를 구성하고서 추진이 된 것이다. 이번 국민총파업이 대한민국의 법과 법원이 불법파업이라고 규정지어 왔던 이른바 정치파업인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실 정치파업은 사용자로부터 책임을 면제받는 파업의 정당성의 문제로 취급될 것이 아니다. 개별 사용자를 상대로 한 파업투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을 상대로 노동자들이 계급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서 파업으로 하는 투쟁이다. 개별 사용자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하더라도 국가수준에서 하는 투쟁이라서 그 파업투쟁의 정당성은 정치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참여해서 주장했는지, 나아가 입법 등 국가권력의 행사에 영향을 미쳤는지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 평가도 법과 법원이, 국가권력이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014년 2월25일 민주노총의 국민총파업은 정치파업으로서 어떻게 정당성을 평가할 수 있을까. 총파업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조차도 극히 일부만 참여했다. ‘박근혜 정권 심판’은 취업 1주년을 맞이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호에 그쳤다. 노동탄압 분쇄·민영화 및 연금개악 저지 등의 목적은 이날 국민총파업으로 입법 등 국가권력의 행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가 없다.

4. 정치투쟁이 경제투쟁보다 높은 수준의 투쟁이다. 이렇게 노동운동사를 배워서 알고,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도 그렇게 실천해 왔다. 이번 민주노총 국민총파업에 대해서도 이런 열광이 있었다. 개별 사업장에서 임단협이라는 협소한 노동자권리 쟁취에서 벗어나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국가수준에서 수준 높은 투쟁이라고 이번 총파업을 결의하고 조직해야 한다고 정치파업에 열광해 왔다. 이번 국민총파업뿐만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언젠가는 해야 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해 왔던 것, 그래서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투쟁의 꿈은 바로 이 정치파업이고 정치투쟁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정치투쟁은 임단투라는 개별 사업장에서 전개되는 이른바 경제투쟁과 대비돼서 그려져 왔다. 수준 높은 투쟁은 수준 낮은 투쟁과 구분돼야 하고 수준 낮은 투쟁이 수준 높은 투쟁의 발목을 잡아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사는 이 두 개의 투쟁이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와 사업장단위조직에서 달리 결의되거나 집행되면서 전개돼 온 것으로 쓰여져 왔다. 이 두 개의 투쟁은 임단투 시기에 시기집중투쟁으로 전개하면서 여기에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의 정치적 요구를 덧붙임으로써 하나로 통합되는 투쟁의 모양새를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는 실제로 파업투쟁을 하는 조합원들은 자신의 임단협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는 노동법 개정 등에 관한 요구를 내건다. 실질은 임단투이고 포장은 노동법 개정 투쟁인 것이다. 정치투쟁이 경제투쟁보다 언제나 높은 수준의 투쟁인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에서 높은 수준의 투쟁이란 무엇이 보다 높은 노동자권리를 쟁취해 낼 투쟁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투쟁 자체를 기준으로 해서 어떤 투쟁이 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참여하느냐, 투쟁 대상을 기준으로 해서 어떤 투쟁의 대상이 보다 많은 노동자들에 해당하는 것이냐 하는 것으로 그 수준을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에서도 투쟁은 목적을 위한 수단인 것이 분명하다. 수준의 높고 낮음은 그 투쟁이 쟁취할 노동자권리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당연하게 알고 전개해 온 정치투쟁은 경제투쟁보다도 수준 높은 투쟁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일까. ‘박근혜 정권 심판’은 구체적으로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어떤 노동자권리를 쟁취해 주는 것일까.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가 걸린 구호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파탄 낸 정권에 대한 심판을 하겠다는 것이라면 민주시민으로서 민주당 등 야당과도 함께할 수 있는 정치구호이고, 계급의 편파적인 눈으로 볼 때 형편없이 수준 낮은 정치투쟁이다. 무슨 노동자세상을 위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당으로 정치적 진출을 하기 위한 투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나아가 ‘노동탄압 분쇄·민영화 및 연금개악 저지 등’의 목적은 단위사업장의 투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위사업장의 투쟁의 결과라고도 읽혀진다.

5.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는 실제로 파업 등 투쟁의 조직적 힘을 갖추고 있는 사업장노조조직이 중심이 돼서 투쟁이 전개돼 왔다. 그런데 그 사업장의 투쟁이 멈추는 곳에서 민주노총 등의 투쟁은 시작된다. 민주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이 개별 사업장투쟁으로는 쟁취할 수 없는 그것을 쟁취하겠다고 그것을 시작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나마 투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업장노조조직이 쟁취할 수 없는 투쟁인데도 그걸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는 모든 노동자의 요구로 입법 투쟁의 요구로 설정하고서 투쟁을 선언한다. 투쟁할 조직적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조직에 그 요구를 넘기고서 사업장조직은, 그 노조간부는 자신이 조합원을 위해서 쟁취를 위해 조직하고 투쟁해야 할 일로부터 벗어난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런 일들이 수도 없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투쟁은 아니라도 지난 번 투쟁은 그랬고 앞으로의 투쟁에서도 그럴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는 사업장조직이 입법 등 국가 수준에서 해결해 달라고 하는 주문을 받아서 이른바 수준 높은 정치투쟁을 선언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조합원을 위한 노동자권리를 쟁취할 수 있는 노조조직의 책임 회피를 위한 것이라면 그 정치투쟁은 사업장단위에서 임단협 투쟁이라는 이른바 경제투쟁보다 못한 투쟁이다. 투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투쟁의 선언이다. 노동자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노동조합이 해서는 안 될 투쟁이다. 사업장단위의 노조조직에 투쟁의 힘이 집중돼 있는 조건에서는 그곳에서 조합원권리를 위해 쟁취해야 할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자권리를 위해서라면 경제투쟁이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의 일이다. 정치투쟁의 구호로 조합원의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조의 일을 회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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