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화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는 올해 1월22일 서울 종로경찰서장에게 집회신고를 했다. 1월25일부터 2월15일까지,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청계광장 남쪽인도에서 집회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이달 15일 오후 5시30분께에 1천명 정도가 집회신고 장소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경찰은 신고된 집회장소 앞 태평로 차도에 10대의 경찰버스를 일렬로 주차해 차벽을 설치했다.

반면에 같은 시간 시국회의 집회장소 건너편 동화면세점 앞 인도에서는 1천여명이 '반국가 종북세력 척결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경찰은 보수단체가 개최한 집회에 대해서는 차벽을 설치하지 않았다.

경찰은 정당한 이유 없이 시국회의가 주최한 집회장소 주변에 자의적으로 차벽을 설치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보수단체의 집회와 차별적으로 조치해 집회를 방해했다.

이러한 자의적 법 집행은 최근 들어 문제된 것이 아니다. 경찰은 광우병 촛불집회가 진행됐던 2008년 6월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원천 봉쇄했다. 이후에도 서울광장에서 불법·폭력 집회나 시위를 개최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경찰버스들로 서울광장을 둘러싸 서울광장에 출입하는 것을 제지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1년 6월30일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위헌확인결정을 하기도 했다.(헌법재판소 2011. 6. 30 2009헌마406)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1월28일 합법집회에 대해 차벽을 설치해 사전 차단하는 조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제1항의 즉시강제의 요건을 불비해 집회의 자유, 이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권고한 바 있다.(집회금지통고제도 및 사전차단조치 개선을 위한 법령 및 관행 개선권고)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있었음에도 경찰은 차벽 설치에 관한 집회 대응지침까지 마련해 집회의 자유 침해를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경찰의 ‘차벽설치’에 의한 차단조치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3조제2항에 따른 사전 통보도 없이 무분별하게, 필요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집회 개최시부터 사전적으로 과도하게 취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이 차벽으로 집회 참가자와 일반 시민을 분리시키는 조치는 시민들이 집회의 내용을 보거나 자유롭게 집회장소에 접근해 참가할 수 없도록 한다. 주최자가 시민들에게 플래카드와 집회 진행상황을 보여 주는 것이 불가능하게 돼 집회목적 달성을 곤란하게 만든다. 신고된 집회에 참가하러 온 이들은 주변이 차벽으로 막힌 상황에서 긴장감·위압감·감시받는 느낌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 집회참가자 개개인의 의사결정을 본질적으로 제약하게 된다.(헌법재판소 2003. 10. 30 선고 2000헌바67,83 병합 결정)

집회의 자유는 소수자의 집단적 의사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다. 단순히 위법행위의 개연성이 있다는 예상만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다. 위법행위가 발생하기도 전에 미리 위법상황을 예상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다.(헌법재판소 2009. 9. 24 선고 2008헌가25 결정)

헌법은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다. 합법적인 집회신고 후 경찰이 포괄적인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차벽을 설치한다면, 경찰의 자의적인 조치로 당해 집회의 목적과 신고내용이 변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도한 차벽설치가 반복된다면 소수자의 집단적·외부적 의사표현으로서 헌법적 기능은 사실상 경찰의 공권력 집행에 의해 폐지되고 만다.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허가제를 용인하는 위헌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이 집회장소 주변에 차벽을 설치하는 법적 근거(집시법상 질서유지선 설정 내지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즉시강제)와 적정한 질서유지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 집회 현장에서는 즉각적인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

25일 국민파업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앞으로도 서울 도심에서 크고 작은 집회가 열릴 것이다. 집회에서의‘목소리’는‘여의도 제도정치의 테이블’에 없는 이슈가 대부분이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무질서’로 매도해 분리시킬 권리가 없다. 과소대표되고 있는 자들이 제3의 시민, 과잉대표되고 있는 자들 및 그 대표자들을 향해‘소리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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