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정부와 보수언론이 뻔한 소리를 또 해댄다. 총파업으로 경제회복과 일자리 확대에 찬물을 끼얹지 말라는 것이다. 민주노조가 생긴 이래 단 한 해도 빠짐없이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고, 어느새 파업으로 국가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주장이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경제위기는 1980년·1998년·2009년이었다. 한국경제는 대체로 이런 큰 위기를 기점으로 변했고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노조 파업으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떠드는데 과연 그럴까. 경제위기 시기와 파업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노조 파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보자.

80년 위기는 세계 오일쇼크의 후유증 탓이 크다. 세계경제가 1%대 성장률로 추락하며, 레이건·대처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면화하던 때다. 여기에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과 전두환 군사쿠데타까지 발생해 국내 정치가 매우 혼란했다. 물론 이 기간은 파업의 영향 자체를 따질 사회조건이 아니었다.

98년 경제위기는 잘 알려졌다시피 재벌들의 무분별한 해외차입이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을 계기로 크게 문제가 돼 발생했다. 80년대 3저 호황 효과가 끝나고 90년대 남미와 동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던 시점이었음에도 당시 재벌들은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매달렸다. 재벌들의 부채비율은 공개된 것만 해도 평균 500%가 넘었고, 부실의 규모를 파악할 수도 없을 정도로 분식회계가 심했다. 96~97년 겨울 노동법 날치기에 대한 총파업이 있었지만 97년 하반기에는 예년에 비해 오히려 파업이 적었다. 어느 외신도, 신뢰도 있는 경제연구소도 한국이 파업 때문에 경제위기가 발발했다고 보지 않았다.

2008~2009년 경제위기는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한 것이 원인이었다. 금융 투기꾼들이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며 고위험의 투자상품들을 만들었고, 결국 부동산시장이 가라앉자 금융시장도 함께 주저앉았다. 한국경제는 환율이 1천900원대까지 치솟으며 외환위기 직전까지 도달했다. 기업들은 재무위기를 완화하고자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때 경제위기도 노동운동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순전히 대외조건과 관련한 것이었다.

요컨대 한국의 경제위기는 과도한 대기업 수출 의존성으로 인해 대부분 재벌의 과실이나 국제경제 여건에 따라 발생했다. 경제위기를 통해 드러난 한국경제의 문제점에 강성노조나 파업은 없었다. 경제위기 때만 그런 게 아니다. 주기적 경제침체도 마찬가지다. 노조 파업으로 경제가 침체했다는 근거 있는 자료를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노조의 파업이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여 오히려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사례가 더 많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대표적이다. 80년대 3저 호황으로 수출 대기업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노동자들의 몫은 거의 늘지 않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민주노조 설립이 있은 후에야 53%밖에 되지 않았던 노동소득분배율(전체 부가가치에서 노동자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포인트 상승했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급락한 임금과 고용조건을 그나마 개선한 것도 민주노총의 여러 파업과 투쟁 탓이 크다. 외환위기 2년 후부터 기업들은 상당 부분 이익률을 회복한 반면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은 2004년까지 계속 하락했다. 특히 대규모로 늘어난 비정규직 탓에 이런 양상이 심해졌다.

민주노총이 조직을 정비하고 비정규직 문제 등을 가지고 정치투쟁을 벌이면서 노조 조직률을 상승시켜 그나마 노동자의 몫을 조금이나마 높였다. 실제 이 기간 노조 조직률 변화와 노동소득분배율 변화는 상당 부분 일치한다.

소득재분배와 임금격차 축소는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표적인 거시경제 정책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한국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주노조가 정치적 파업을 통해 이뤄 냈다고도 볼 수 있다.

2·25 국민파업에 대해 정부와 보수언론은 정치파업이라고 욕한다. 그런데 경제적인 파업보다 정치적인 파업이 국민경제에 득이 된다. 정부 정책이나 산업적 쟁점을 가지고 초기업적으로 이뤄지는 정치파업은 그 효과도 초기업적이다. 의제가 보편적인 만큼 저임금 노동자에게 유리하다. 재분배 효과가 확실하고 임금격차 축소와 내수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정치 총파업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제대로 정치 총파업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2·25 국민파업은 민주노총 간부들의 헌신적 노력에도 참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내부 상태를 볼 때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이 다시 정치적 총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임금·미조직 노동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조직의 체질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총파업의 ‘정치성’은 구호의 과격함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보편적 요구를 정치의제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 생각에 앞으로 민주노총의 진정한 정치적 투쟁은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200억원 조직화 기금을 실제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