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3가합512402 손해배상(국)

1. 역사는 반복되는가

지난해 12월22일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한다는 명목으로 5천 경찰경력이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인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다. 이에 대해 올해 1월2일 박근혜 정권의 민주노총 침탈과 노동탄압을 규탄하며 평균연령 71세 노구의 민주노총 지도위원들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10명의 지도위원 중 유일한 여성인 박순희 지도위원. 그는 30년 전인 1982년 9월27일, 이른바 ‘9·27 사건’이라 불리던 그날,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이었던 원풍모방노조 사무실에 경찰경력이 침탈할 때 노조 부지부장으로서 그 현장에 있었다.

“아아, 닷새를 굶은 여성노동자들에게 그 이상 어떤 힘이 남았겠는가! 그들은 이미 탈진할 대로 탈진한 상태였다. 조합원들은 마지막 힘을 모아 저들의 폭력에 맞섰다. 머리를 얻어맞아 피가 흘러도 한번 잡은 폭력배의 바짓가랑이를 놓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실신하여 쓰러진 조합원들이 타작을 끝낸 볏단처럼 질질 끌려갔다. 작전이 끝남과 동시에 농성도 끝났다.”(<민주노조 10년-원풍모방노동조합 활동과 투쟁> 중 1982년 10월1일의 기록)

원풍모방노조. 우리 노동운동사에 대한 조금의 이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원풍모방노조는 1972년 민주노조로 재탄생한 후 1982년 정권에 의해 강제해산될 때까지 당시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니, 정권의 탄압에 의해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구속되고 심지어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결국은 대다수 노동자들이 강제해고되고 노조 해산조치까지 당했지만 그 이후에도 20년이 넘도록 법외노조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노동운동의 한 길을 걸었다.

2. 판결 검토

1) 사건의 개요

1982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와 남부경찰서는 강제퇴직 당한 원풍모방노조 조합원들의 명단을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작성 및 배포해 이들의 재취업을 불가능하게 했고, 나아가 일상적인 동향 감시와 사찰까지 실시해 이들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았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08~2009년 이들 중 일부는, 민주화운동관련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당시의 노조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아, 1982년의 노조활동에 따른 강제해직에 대한 생활지원금을 국가로부터 받게 됐다. 또한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도 9·27 사건 및 블랙리스트로 인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과거사정리위는 “피고(대한민국)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신청인과 관련 노조 및 조합원들의 노동기본권, 조합원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해 신청인 등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신청인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결정을 함.)

이에 민주화보상심의위로부터 상기 결정을 받은 3명의 원풍모방노조 조합원들과 추가 4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1)원풍모방노조 와해 과정에서의 해고 2)블랙리스트 및 지속적인 감시로 인한 재취업 불가와 인권침해 3)노조탄압 과정에서의 불법구금에 대해 피고인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2) 사건의 쟁점 및 판결의 내용

법원은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원풍모방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9·27 사건을 발생시켰고 이로 인해 원고들이 강제퇴직됐는 바,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원고들의 노동기본권 및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이 같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받은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들에 대해 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블랙리스트 작성·배포 및 감시와 사찰에 대해서도,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원고들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해석하며 역시 원고들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불법구금에 대해서는 제출된 증거자료만으로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해 원고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한편,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되었던 부분은 보다 법리적인 사항들에 있었다. 우선, 원고들 중 3명이 이미 민주화보상심의위의 결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수령하면서 “생활지원금을 받은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해 화해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해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할 것임을 서약합니다”는 동의서를 제출했는데, 이에 대해 피고는 당해 동의서 제출로 인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이므로 이 사건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항변했다.

반면, 원고는 민주화보상심의위의 결정 대상에 블랙리스트로 인한 인권침해 등이 포함되지 않았고 강제해직건 역시도 그에 대한 생활지원금은 불법행위로 인한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지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청구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는 포함돼 있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강제해직건에 대해서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생활지원금에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도 포함돼 있다고 해석)하는 한편 민주화보상심의위의 의결에는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인정해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피고는 이미 오래전 일이라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과거사정리위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원고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봐야하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고, 나아가 과거사정리위 결정이 있었음에도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이 사건 불법행위의 반인권적, 조직적인 특수성과 그 불법의 중대함 등에 비춰볼 때, 원고들은 과거사정리위 결정일로부터도 신의칙상 상당한 기간 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했으므로 이 사건 소의 제기가 권리남용도 아니라고 판단해 피고의 소멸시효 관련 주장을 배척했다.

3. 다시 시대의 어둠을 넘어

비록 원고들의 모든 청구가 다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손해배상액 역시 지난 30년 세월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국가가 행한 불법행위와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의 정당성을,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피해에 대한 배상을, 역사는 법원의 판결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정했다.

당시 원풍모방노조 조합원들의 대다수는 10~20대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 사건의 원고들은 이제 50대의 나이가 됐다. 30년 세월이 흘러 비로소 그 꽃다웠던 젊은 시절의 고통과 피눈물에 대한 명예회복과 국가가 자행한 불법행위에 대한 작은 보상이나마 받게 된 것이다.

마치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참담한 작금의 시대상황이지만, 그러나 다시 시대의 어둠을 넘어 역사는 반드시 진보할 것이며 노동자는 끝내 이길 것이라 믿으며, 원풍모방노조의 주역이었던 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말씀을 다시 새겨본다.

“민주노총 침탈은 원풍모방노조를 짓밟은 사태보다 더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밤새 잠 못 들다 꿈속에서도 악몽을 꿨다. 노동운동의 총본산인 총연맹을 침탈한 것은 전체 노동자의 가슴을 짓밟고 죽인 것이다. 전노협을 거쳐 수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바쳐 민주노총을 만들었다.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은 투쟁하라고 부추기는 촉매제다. 저항해야 한다. 노동자는 밟히면 밟힐수록 자기 정체성이 살아나게 돼 있다. 탄압 속에서 제 자리와 제 권리를 찾는 게 바로 노동자다. 그것이 70년대부터 노동운동을 하며 살아온 내 삶의 증거다. 나는 그것을 확신하고 믿는다.”(지난달 7일 <노동과 세계> 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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