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훈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기약 없이 치료가 계속돼야 하는 장애인 자녀와 아내를 포함해 가족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어느 50대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미 몇 년 전 어느 학습지 회사로부터 사직을 종용받고 퇴사한 아픔이 있는 분이기도 하다.

3년 전 어렵사리 구한 새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생활하던 중 지난해 6월 회사에 새로 온 이사란 자가 그분이 근무하던 부서로 오면서 삶이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이사는 한 달 만에 자신의 추천으로 차장 1명을 입사시켰고, 부장이면서 팀장이었던 그분은 이사가 팀장을 겸하면서 팀원으로 내려앉게 됐다.

그래도 평소 2명이 감당하기엔 벅찬 업무였던지라, 새롭게 2명이 충원돼 일이 좀 수월해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새로 온 이사는 그분께 과거 몇 년 전의 일, 하물며 입사하기 전 일까지 들쑤셨다. 모든 게 그분의 책임이라며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 반드시 들어간 시말서·경위서·보고서 제출을 강요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항변을 담은 시말서는 버려졌다.

해고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분은 끝내 이사가 원하는 반성문을 제출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이사는 부하 직원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그분이 제출한 시말서를 읽으며 핀잔을 주고, 오직 그분께만 매일 업무보고를 아침·저녁으로 문서나 전화로 하라고 지시했다.

이사는 퇴근 후 그분을 제외한 팀원들만 따로 불러 회식을 하는 치졸한 행동을 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가겠다며 연차휴가를 신청하자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며 이를 소상히 밝히지 않으면 연차휴가를 승인해 주지 않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숨 쉬는 것을 제외한 그분의 자잘한 일상에까지 잔소리를 하며 사직을 종용했다.

결국 그분은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자리나 지키고 있는 신세가 됐다. 지시하지 않는 한 어떠한 업무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부하 직원인 차장의 지시를 받고 일하라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하루에 한두 가지 업무만을 지시하고선 저녁 퇴근 무렵에 불러 왜 하루 종일 한 일이 없냐고 다그치는 뻔뻔한 이사. 이사의 추천으로 입사한 차장이란 자 역시 이사와 마찬가지로 그분을 직장상사로 대하지 않았다.

그분은 매일매일 이사와의 대화 내용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하고, 이사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저장하면서, 또다시 자기 발로 회사를 나오진 않겠노라고, 가족 때문에 아픈 자식 때문에라도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진 않겠노라며 하루를 견디고, 또 하루를 참아내고, 무너지지만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티고 버텼다.

그리고 50대 나이의 아버지는 이사에게 ‘사랑받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글로, 그동안 자신이 당한 굴욕의 상처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사는 자신에게 굴종하지 않는 그분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며, 해고시키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언제까지 버티겠냐며 제 발로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분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의 수가 100건이나 되고, 이메일도 수십 통에 이른다. 그분은 늘 깨어 계신 듯 보였다. 가족에게 들킬세라 새벽시간에 홀로 깨어 이메일을 쓰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이사와의 일들을 기록했다. 그러다 지난해 연말 그분으로부터 소식이 끊겼다. 부디 무소식이 희소식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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