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재직자 요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은 어불성설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채필(58·사진)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복리후생적 금품과 달리 정기상여금은 퇴직자에게도 지급의무가 발생하는 임금”이라며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요건을 설정하는 것은 상식에 반하며, 재직자 요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노동부의 해석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 지난해 3월11일 노동부 장관에서 물러난 지 11개월이 지났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축구에 비유하자면 30여년 공직생활로 인생의 전반전을 뛰었다. 지금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와 한국기술교육대 석좌교수로 일한다. 또 비영리 공익법인인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뛰고 있다. 학생이나 후배 공무원들을 상대로 특강도 많이 다닌다. 두루두루 즐겁게 살고 있다.”

- 노동부에서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까지 떠났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언론을 통해 그리고 여러 부처에서 근무하는 후배 공무원들을 통해 노동부의 돌아가는 사정을 듣고 있다.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논의 속도가 더딘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히 철도노조 파업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노동부가 노사관계 주무부처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가 과연 노동계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신중하지 못했다고 본다.”

-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통상임금 문제가 노사관계 최대 이슈다. 통상임금 논쟁을 어떻게 보고 있나.

“통상임금은 시간외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돈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돈으로 접근하지 말고 가산임금 기준지표로 봐야 한다. 노사 어느 쪽에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지는 접근방식은 옳지 않다. 노사 당사자는 유불리에 집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정부라면 유불리의 블랙홀에 빠져서는 안 된다.”

“노동부 지침, 통상임금 소송 부추겨”

- 노동부가 지난달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내놨다. 이른바 ‘재직자 요건’이 붙어 있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노동부의 해석인데.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적 금품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통상적으로 복리후생적 금품은 회사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퇴직한 사람에게 복리후생을 적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재직자 요건이 붙은 복리후생적 금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도록 판결한 이유다.

하지만 임금성 금품에 해당하는 정기상여금은 얘기가 다르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을 하더라도 정기상여금이 해당되는 기간에 대해서는 일할계산해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근로자가 임금체불로 진정이나 소송을 내면 사업주는 해당하는 금품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소정근로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요건을 설정하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 재직자 요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노동부의 해석 역시 어불성설이다.”

- 노동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에 등장한 ‘신의성실 원칙’의 적용시점을 ‘새로운 임금협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로 해석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나.

“표현상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동부는 기존 임금협약의 유효기간까지는 신의칙이 유지된다고 봤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노사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새로운 노사합의를 할 수 있다. 노동부 지침은 노사가 새로운 합의를 형성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앴다는 데 문제가 있다. 노사 자치주의에 따라 노사가 적극적·능동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길을 막은 것이다.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특징은 수당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임금을 올리되 기본급화되는 것을 막겠다는 노사의 묵시적 합의가 전제돼 있다. 각종 수당의 복잡함에서 비롯된 통상임금 논쟁에 대해 노사도 공동의 책임이 있다.

노동부 지침은 개별 사업장 노사가 자기 회사의 사정을 감안해 새로운 룰을 형성하게끔 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길을 봉쇄하면 결국 사법적 쟁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장관 시절에 예규 못 고친 것 아쉽다”

- 노사 현장에서 노동부 지침은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 교수가 장관 재직 시절에 내놓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와 복수노조 매뉴얼이 노사관행을 흔들었던 전례도 있지 않나.

“노동부 노사지도 지침은 법규로서 효력을 갖지 못한다. 다만 이러한 지침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관련법령의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 노사가 납득할 수 있는 법령내용을 담았는지, 아니면 외생변수를 고려해 확대해석한 내용을 담았는지에 따라 지침의 실효성은 크게 달라진다. 논란이 많은 행정지침은 영향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근로시간면제 제도와 복수노조 매뉴얼은 노조법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해석했다.”

- 장관 재직 시절 통상임금 산정지침(노동부예규 제47호)의 개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예규 개정이 무산된 이유가 무엇인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2012년 3월 금아리무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 뒤 실무자들과 함께 수개월에 걸쳐 예규 개정 여부를 검토했다. 당시 논의의 결론은 1임금지급기를 초과해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이라도 다른 요건을 충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위 규정, 즉 근로기준법의 개정 없이 예규만 바꿀 경우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법 개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문제는 시기였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에 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다.

그런 가운데 그해 9월 기존의 예규가 재고시됐다. 당시 나는 이러한 사실을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기사를 보고 알았다. 당시 담당 실무자가 장관 보고 없이 전결로 처리해 벌어진 일이다. 미리 이 같은 사실을 알았더라면 근기법 개정 전이라도 예규를 개정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근로시간단축법 처리하려면 노사정 많이 만나야”

- 통상임금 문제는 곧 근로시간의 문제다. 장관 재직 시절 근로시간단축을 위해 정책적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근로자는 기계가 아니다. 쓰고 나서 버리는 소모품은 더더욱 아니다. 당장 편하자고 ‘오늘 저녁에, 이번 주말에 일 더하면 돈 더 줄게’ 하는 관행은 인간존중의 노동문화로 볼 수 없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근로시간 문제에 접근했다. 완성차 업체들을 상대로 수시감독을 벌이고, 근로시간단축에 따른 추가고용 계획도 받아 냈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업계가 주야 맞교대를 주간연속 2교대제로 바꾸는 획기적인 변화도 있었다.”

- 근로시간단축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논의가 더딘 이유는 뭐라고 보나.

“법안을 제출했다고 해서 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설득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자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정부가 노사정 당사자와 자주 접촉해야 법안 논의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 노동부 장관 출신으로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앞서 말했듯이 축구경기의 후반전을 뛰고 있다. 교수로서, 비영리단체 관계자로서 보람 있게 살고자 한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바탕으로 사회에 봉사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를 둘러싸고 울산시장 출마설이 제기되곤 하는데, 당장 그런 계획은 없다. 물론 세상사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