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개혁이요? 개혁 좋죠. 근데 정부 행태가 괘씸하다는 겁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보는 격이란 말이죠."

정부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대한 공공기관 노동자 A씨의 울분 섞인 말이다. 그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노조들을 향해 "개혁에 저항할 경우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기사를 접한 뒤 뒷목을 잡았다고 했다.

정부 말마따나 공공기관 개혁이 시급한 국정과제일지 모른다. 2012년 말 기준으로 493조4천억원에 달하는 부채규모만 봐도 그렇다. 공공기관의 과도한 부채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타깃이 잘못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공공기관들의 부채는 대부분 정부정책을 이행하느라 떠안은 빚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주장하듯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도에 넘은 임금과 복리후생비를 누린 탓이 아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정상화대책 이행계획을 보면 전체 부채 감축 목표액은 39조5천억원이다. 이 중 복리후생 등 복지 관련 감축비용은 1천600억원에 불과하다. 감축 목표액의 4.3%, 중점관리기관 부채(411조7천억원)의 0.0364%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오죽하면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가 "정부가 공공기관 직원 1인당 감축하기로 한 144만원의 복리후생비로 공공기관 부채 520조원(2013년도 기재부 전망치)을 모두 해소하는 데 3천250년이 걸린다"는 깨알같은 지적을 했을까 싶다.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은 핵심에서 한참 비켜나 있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때려잡기 전에 잘못된 정책을 입안한 정부관료나 전문성 없는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들부터 문책해야 한다. 그것도 싫으면 정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

지금도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들이 내리꽂히고 있다. 정부는 4대강 사업·보금자리주택·해외자원 개발 등 부채 폭탄을 안긴 사업에 대해서는 "잘못은 있었다"는 말로 눙치고 그만이다.

정부의 잘못을 외면한 채 독기 품은 표정으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대통령이나, 이에 질세라 "신의 직장"이니 "신의 노조"니 나팔을 부는 여당 의원들이나 거기서 거기다. 뒷목을 잡은 노동자는 A씨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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