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활동가로 몇 년을 살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자회견, 집회 문자와 각종 토론회 개최 이메일을 받게 된다.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온라인 개인 담벼락에 계속 노출된다. 지난 7일에는 2009년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부당했기에 무효라는 서울고법 판결이 나왔고, 삼성전자 노동자의 산재 문제를 다룬 영화의 단체 관람과 개봉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2009년 여름 평택 쌍용차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경험과 폭력적이었던 경찰의 탄압, 그리고 불법파업이라며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았던 노동자들의 모습,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노동자의 장례식 등 한 주의 사건에 대한 과거의 경험은 활동가로 살아오는 기간에 비례해 늘어난다.

어디 쌍용차와 삼성전자뿐인가. 최장기 투쟁 사업장 중 하나였던 재능교육과 기륭전자 문제도 합의가 불이행되면서 여전히 미해결된 현장으로 남아 있다. 1~2주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철도 민영화와 철도노조 파업은 또다시 언제 끝날지 모를 투쟁으로 전환됐고, 정부와 기업은 구속·손배소와 같은 지독한 방법으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삶을 압박해 온다.

언젠가부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문제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지루한 법정싸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질긴 놈이 이긴다"는 말을 하곤 한다. 사회가 어찌 된 것인지 누군가가 죽거나 누군가가 악다구니로 싸우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고, 간신히 문제로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마다 가끔 세상이 나아지고 있는가라는 한탄을 하게 된다.

한 청년이 있었다. 항상 밝게 웃고 사람들에게 상냥한 청년이었는데 계속 불안해하면서 머리를 긁적이거나 손톱을 깨물었다. 좋지 않은 일을 이야기할 때도 웃으면서 이야기하곤 했는데 나중에 청년의 노동 경험을 듣고 왜 그런지 이해하게 됐다. 청년은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업에서 일했다. 고객과 마찰이 있거나 고객이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도 싫은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현장에서 1년 넘게 일했다. 욕을 하거나 위협을 가해도 웃으면서 괜찮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청년은 영국에 여행을 갔다가 무척 놀랐다고 했다. 식당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실수로 접시를 깼는데 다른 직원들이 바로 그 직원을 휴게실에서 쉬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업무 매뉴얼에 사고가 나면 당사자가 가장 많이 놀랐을 것이니 일단 안정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야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노동자가 1천750만여명이고, 그중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노동자 비율은 단 10%밖에 되지 않는다. 10명 중 9명은 노동자라는 무거운 이름보다 직장인·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청년노동은 더욱 그렇다. 청년들의 노동은 노동이기보다 생계를 위한 것이다. 조직률도 낮고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활동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드넓은 태평양에서 '손이 가고 당장 눈에 띄는 곳'부터 건드릴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힘은 연대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자본의 힘은 막강하고 노동자는 연대해야만 이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 노동자임을 거부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어떠한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는가. 저항하고, 투쟁하는 수많은 현장과 문제들 속에서 이기는 싸움, 아니면 최소한 지지 않는 싸움의 전략은 있는가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항하거나 투쟁으로 드러나지 않는 더 많은 노동의 문제를 발굴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노동자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yangsou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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