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에게 가해졌던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올해 들어서는 금속노조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115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아직 판결 전인 청구액까지 합치면 235억원에 달한다. 그리고 철도 민영화 저지를 위해 파업에 나섰던 철도노조에는 152억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됐고 얼마 전 116억원이 가압류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졌다는 소식이다.

이제 사용자는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합법이건 불법이건 쟁의행위를 했다 하면 무조건 손배·가압류를 걸고 보자는 식이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는 결국 노조를 무력화하고 노동자의 삶을 파탄낸다. 이것이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는, 헌법에 노동 3권을 명시했다는 한국의 현실이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자의 숨통을 죄고 급기야 죽음까지 부르는 손배·가압류라는 비정상을 제대로 규제하는 정상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손배·가압류 남발을 규제하는 법개정을 위한 입법부의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노조 입 막고 민영화 추진하려 손배·가압류 남발 

김재길
철도노조 정책실장

얼마 전 서울서부지법이 코레일이 철도노조를 상대로 낸 116억원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 노조활동 자체를 무력화하기 위한 코레일의 막무가내 식 가압류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 자체가 심히 유감스럽다. 코레일은 노조에 15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브랜드 이미지 실추 위자료 10억원을 청구한 것도 모자라 대체인력 투입비용까지 청구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민영화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노조를 옥죄는 것만 보더라도 정부와 코레일의 철도 민영화 추진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할 수 있다.

손해배상·가압류 조치로 노조활동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물론 노조는 조합원 모금운동이나 대국민 모금운동을 통해 노조활동 무력화 조치를 힘 있게 돌파할 것이다. 지난 2006년 파업으로 법원으로부터 100억원대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을 때도 무척 힘들었지만 조합원들의 결의와 노동계·시민들의 후원으로 극복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투쟁으로 극복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나.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활동에 대해 사측이 손배·가압류로 탄압할 수 없도록 법·제도적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 지난해에도 국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려다가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국회에서는 반드시 이 문제가 논의돼 손배·가압류 남발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조치들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민주노총 사업장 손배청구액 1천135억원 감당 어려워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생존을 위해 파업에 나섰던 노동자에게 손배·가압류가 제기될 경우, 노동자 당사자는 물론 그 어떤 단체도 이를 감당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법원이 47억원을 물어내라고 결정했는데, 이에 대한 법정이자만 1년에 9억8천만원이다. 이자만 시간당 10만원이 넘는다.

사회적으로 해법을 찾지 않으면 굉장히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2003년 배달호 열사와 같은 비극적 상황이 또다시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쌍용차 말고도 한진중공업·현대차 비정규직·철도노동자들이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대한 손배 청구액이 1천135억원에 달한다. 돈을 이용한 압박 때문에 노동자들의 파업권,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이 무력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손배·가압류에 따른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각계 인사들이 손을 잡으려 한다. 노동계 인사·국회의원·법학자·문화예술인 등이 참여하는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이달 26일 정식으로 출범한다.

손잡고는 두 가지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먼저 대대적인 모금에 나선다. 아름다운재단으로 모금처를 확정했다. 현재 손배·가압류로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법제도 개선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한다. 손배·가압류 문제를 정치쟁점화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계획이다.

불법파견 책임 회피하려는 손해배상 청구 철회해야 

천의봉
금속노조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법규부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불법파견 혐의로 모두 4번이나 고소·고발 됐는데 검찰은 기소조차 못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235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현대차는 2010년 조합원들이 공장을 불법점거했다는 이유로 손배를 청구했다. 그런데 우리가 공장을 점거하면서까지 투쟁한 이유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고 그에 다른 책임을 전부 우리에게 전가하고 있다. 현대차가 손배를 청구한 대상은 전체 조합원 900여명 중 680명에 달한다. 이미 가압류로 인해 많은 조합원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 실제 법원이 손배 선고를 한다면 비정규직에다가 해고자가 대다수인 조합원들은 그 많은 액수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

현대차가 바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더 이상 파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더 이상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협박이다. 1천600여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사측에 불리한 판결이 나올 경우 적절히 타협하자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현대차는 언제나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진정으로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부터 먼저 철회해야 한다.

노동·시민사회가 ‘손잡고’ 손배·가압류 저지 나설 것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노동법은 대표적인 사회법인데 이를 시민법 관점으로 잘못 판단하는 법조인들에 문제가 있다. 헌법상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사용해 사측에 경제적 손실을 입힌 문제를 노동자가 회사에 빌린 돈을 못 갚은 것과 똑같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노동법을 배우지도 못하고 판단능력을 키우지 못한 탓이다. 근본 문제는 기업이 노동운동에 가진 혐오감이다. 거액의 손배·가압류를 신청하는 건 실제 배상보다는 노조 와해가 목적이다. 예전엔 소수 활동가에게만 청구하던 것을 이제는 조합원 다수에게 청구하며 노조를 탈퇴하면 해제해 주겠다고 한다. 실제 이런 과정에서 노조의 조직력이 와해된 경우도 많다.

현행 노동법은 '합법적 쟁의행위'에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노동법이 지나치게 엄격히 해석되고 있어 합법파업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러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사측이 쟁의행위에 대한 경제적 손실을 청구하는 행위를 봉쇄하거나 상징적인 수준으로 제한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

노동·시민·학계 인사들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를 26일 출범시킨다. 손배·가압류에 고통 받는 노동자를 지원하고 관련 법제도 개선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계기는 쌍용차노조에 대한 47억원 손배 판결이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죽고 있는 상황에 그런 판결까지 떨어져 여론이 주목하게 됐다.

최근 외국 주재 한국 공관에는 한국 기업들에게 '현지 공권력과 협조해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처하라'는 권고가 게시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의 잘못된 관행이 외국에 수출되고 있는 셈이다.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손배·가압류 엄격히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 필요  

심상정 정의당 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회가 철도발전소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코레일과 노조 간의 대화는 여전히 막혀 있는 상태다. 코레일은 노조의 업무복귀 이후 중징계를 예고하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제기하면서 국회와 철도노조가 이뤄낸 합의정신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최근 사용자는 노조나 조합원에 대해 손해배상을 남용하고 있다. 쟁의행위 등 노조활동의 정당성 혹은 불법행위 판단 여부는 결국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소송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용자는 "일단 걸고 보자" 식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가 노조 쟁의행위 요건을 협소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도 손배소 남발의 원인이다. 사용자의 손배청구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 원칙에 부합될 수 있도록 쟁의행위 등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청구를 제한해야 한다는 요구에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단기적 대책으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해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청구를 제한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 본인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폭력 또는 파괴행위에 따른 손해만을 손해배상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조합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철도노조 사건의 경우 코레일은 민영화 저지 파업을 무조건 불법으로 몰아가면서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하지만 불법 유무는 아직 법적으로도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국회에서 철도 민영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코레일은 노사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전향적 태도로 임해야 한다. 조합원에 대한 징계와 손해배상을 중단하는 것이 신뢰형성을 위한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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