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극장 앞엔 오가는 이 적었다. 그늘 짙어 스산했던 자리에 사람들 늘어서 사연을 풀었다. 육성이었다. 마이크는 약속된 시간에 늦었다. 그러나 또박또박, 말에 거침이 없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이야기였다. 외압 의혹을 전했다. 상영관은 이유 없이 줄었다. 극장의 일방적인 예매취소 사례가 잇따랐다. 원성이 따라 높았지만, 시늉만 뒤따랐다. 뭇 사람들의 정성을 모아 만든 영화였다. 아니, 삼성이 만든 영화라고 황상기씨는 이날 말했다. 영화 상영을 가로막는 검은손이 누구인지 연대단체 회원과 함께 물었다. 잠시 앉아 쉬던 그 시간, 팻말 꼭 쥐고 놓지 않던 황씨의 늙은 손에 주름 깊다. 차갑게 식은 딸의 손을 잡고 남긴 약속이 그 주름처럼 선명했다. 소박한 웃음 여전한 그의 얼굴은 상상에 맡긴다. 삼성에 맞선 구구절절한 그 사연은 지금, 상영 중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