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희망퇴직 ‘칼바람’이 불고 있다. 이렇게 언론은 희망퇴직을 칼바람이라고 표현하면서 사업장마다 불어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신한은행·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도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있고, 동양증권 등 증권회사와 알리안츠생명 등 보험회사도 올해 초, 그리고 지난해 말에 이미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어디 금융사뿐이겠는가. 제조업체 한국GM도 사무직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있고, 이미 쌍용자동차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해 왔다.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으로 사업장에서 추방되고 있다. 희망퇴직 ‘칼바람’은 지금이 겨울이라서 부는 겨울바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선 노동자들에게 사시사철 부는 구조조정의 바람이다. 경영사정이 어렵다며 사용자가 툭하면 노동자들에게 불어대는 칼바람이다.

2. 사용자가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추방하는 제도가 있다. 법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켜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쫓아내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해고, 그리고 정리해고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부는 희망퇴직 ‘칼바람’은 인원 감축을 위한 기업 구조조정의 바람이다. 분명히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불어대는 ‘칼바람’이니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즉 정리해고와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사업장 경영을 이유로 노동자를 쫓아내는 제도로 행사되고 있는 것이 희망퇴직제도다. 희망퇴직, 노동자가 희망해서 하는 퇴직을 말하는 것일 게다. 퇴직하기를 바라서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희망퇴직이라면 사직서 제출하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사직도 희망퇴직인 셈이다. 그러나 스스로 사직서 제출하고서 그만두는 것을 희망퇴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용자가 퇴직금에 위로금 얹어주고 퇴직하라 해서 노동자가 퇴직하는 걸 우리는 희망퇴직이라고 부르고 있다. 노동자의 퇴직신청에 의한 것이니 근로관계에서 노동자가 스스로 그 관계를 종료시키는 사직과 닮아있다. 그러나 사직은 노동자가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지만 희망퇴직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추방시키는 제도라는 점에서 그 실체는 전혀 닮아있지 않다. 전자는 노동자의 의지가, 후자는 사용자의 의지가 그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희망퇴직에 있어서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기획해서 관철해 내는 자는 사용자다. 거기서 노동자의 의지는 사용자의 의지에 굴복하는 의사표시로 나타날 뿐이다.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추방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희망퇴직은 근로기준법 제23조 해고, 제24조 정리해고와 별도로 사용자에게 보장된 또 하나의 무기인 셈이다.

3. 사용자가 정리해고로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추방하면 노동자는 그것이 정당한 거냐고 묻고 그 해고노동자가 해고무효라고 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 그러면 사용자는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희망퇴직 시키면 그럴 일 없다. 그렇다고 오늘 이 나라에서는 희망퇴직이 사용자가 노동자를 내쫓는 무기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보다 희망퇴직으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훨씬 많다. 그러나 오늘 희망퇴직은 뭐라 변명해도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내쫓는 제도다. 강제의 정도와 금전보상으로 정리해고와 차이가 있지만 그 실질을 보면 분명히 강제적으로 사용자가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행위다. 이렇게 사용자가 노동자를 그만두게 하는 걸 법은 해고라고 했고, 노동법은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사용자에 의해서 기획해서 실시하는 희망퇴직이라면 해고로 취급하거나 적어도 그에 준한 제한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사용자에 의해서 기획해서 인적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하는 희망퇴직이라면 정리해고로 취급하거나 적어도 그에 준한 제한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희망퇴직을 해고, 정리해고에 갈음할 수 있는 사용자의 무기로 마냥 인정해 준다면 노동자들은 이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인 해고제도 앞에서 그것이 정당한 것이냐고도 묻지 못하고 해고무효라고 다투지 못한 채 ‘해고는 살인이다’도 외치지도 못하고서 희망 없이 사업장 밖에서 거리와 광장을 실업자로 서성일 수밖에 없다.

4. 물론 희망퇴직도 해고에 해당한다면 노동자는 그 정당성을 해고무효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 해고에 해당한다면. 노동자가 한 희망퇴직신청이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한다면 민법 제107조에 의해서 무효인 것이니 그 신청이 없는 것이고 그에 따른 희망퇴직처리는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인 근로관계의 종료행위인 해고로서 무효이다. 즉 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해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 것이라 할지라도, 사직의 의사가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왔다.(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5다38270 판결 등) 이처럼 판례가 근로자의 사직의 의사표시가 비진의의 의사표시로서 무효라고 본 것으로는, 과거 퇴직금 중간정산을 위해 형식상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대법원 1992. 3. 27 선고 91다44681 판결), 사업의 양도·합병·조직변경에 따라 소속 근로자들이 회사 방침에 의해 퇴직금을 받고 일괄 사직한 경우(대법원 1999. 6. 1 선고 98다18353 판결), 특채에 반발하는 노동조합과의 협상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 해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대법원 1992. 3. 27 선고 91다44681 판결),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일괄사표”를 제출받은 후 그중 일부만을 “선별수리”하는 형식을 취해 사표를 낼 마음이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작성·제출하게 해 근로자를 사직시키는 경우(대법원 1991. 7. 12 선고 90다11554 판결) 등이 있다. 또한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한다면 민법 제110조에 의해서 그 희망퇴직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권리를 보호하는 노동법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단지 법률행위에 관한 민법에 의한 것이다. 특별히 희망퇴직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도 아니고 더구나 희망퇴직을 해고로 보고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은 더욱 아니다. 그저 희망퇴직제도를 노동자가 사직하는 제도로 보고 그 사직의 의사표시에 하자가 없는 것인지 따져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희망퇴직으로부터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법원의 판결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희망퇴직 앞에서 진의 아닌 사직의 의사표시였다고 법정에서 읍소하며 주장해야 했다. 노동자의 이런 주장은 퇴직금 말고 위로금 얼마를 더 받을 수 있다고 스스로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이니 진의로 한 사직의 의사표시인 거라고 쓴 판사의 판결문 앞에서 수도 없이 좌절해야만 했다.

5. 그러나 오늘 대한민국에서 희망퇴직제도는 사용자가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추방하는 제도다. 아무리 위로금으로 퇴직신청의 형식으로 이 실체를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는 공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법은 이 실체를 숨긴 형식만 보고 그 형식이 의사표시에서 문제가 없는 것이냐만 살피며 변죽을 울려 왔다. 그러나 한 두 차례면 변죽일 수 있어도 노동자가 희망퇴직이 부당하다며 자신을 추방하는 제도라고 수도 없이 주장해대는데도 그 주장을 외면한 채 계속해서 변죽만 울려대고 있다면 그것은 실체를 숨긴 사용자의 해고를 정당한지 여부도 따지지 않고서 사용자의 권한으로 보장해 주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늘 희망퇴직의 근본문제는 희망퇴직을 의사표시의 문제로 볼 것이냐 아니면 해고의 문제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의사표시의 문제로 보고서 그 하자가 있다면 희망퇴직은 해고로서 무효라고 보고 있는 오늘 판사의 판결, 나아가 학자의 논의가 이 희망퇴직을 이렇게 만들었다. 사용자가 정리해고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내쫓는 제도로 기능하도록 했다. 희망퇴직은 뭐라 변명해도 오늘은 해고다. 퇴직신청의 형식이 아니라 사용자의 의지가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 그 실체를 법은 주목해야 한다. 입법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입법이 되지 않아도 해고를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23조나 정리해고를 규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24조가 희망퇴직에 적용되는 것으로 법원은 희망퇴직을 판결해야 한다. 지금처럼 법원판례가 희망퇴직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해고로서 정당성을 다툴 수 없는 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법원이 사용자가 노동자들을 사업장에서 추방하는 제도를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나쁘다. 노동자에게 희망퇴직은 나쁘다는 말도 못하니 더 나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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