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노동자 대투쟁. 한국 사회 노동운동의 최대 분출기이자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의 골격을 세운 한국 노동운동사의 정점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대투쟁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흔히들 해방 직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몰락 이후 70년대 전태일 열사로부터 시작된 유신시대 노동운동을 시발점으로 본다. 60년대는 쉽게 건너뛴다.

과연 60년대 노동운동은 침묵만 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뿌리를 60년대 노동운동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의 전신 대한조선공사노조(조공노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후마니타스·2만3천원)의 저자 남화숙 미국 워싱턴대 교수(한국학)는 조공노조의 역사를 통해 박정희 시대의 민주노조운동을 조명하고 궁극적으로 그 줄기가 87년을 거쳐 현재의 노동운동에 닿아 있음을 역설한다.

(주)한진중공업은 37년 조선중공업(주)로 출발해 해방 뒤 국영기업인 대한조선공사로 전환했으나 68년 (주)대한조선공사로 민영화됐다. 89년 한진그룹이 인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저자는 68~69년 전투적 민주노조였던 조공노조의 투쟁에 주목했다.

50년대 후반 조공노조는 전투적 노조로 재탄생한다. 조공노조는 58년 7개월간 밀린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다. 40년대 이후 첫 파업이었다. 조합원 대다수가 동참했고 가족들까지 몰려올 정도였다. 결국 궁지에 몰린 정부가 체불임금 지급을 약속하면서 파업은 7일 만에 조공노조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60년 4·19 혁명의 물결은 조공노조에도 찾아왔다. 조공노조는 58년 파업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 현장을 새롭게 조직했다. 임시직·계약직·견습공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임금협상에서 하후상박을 요구했다. 오늘날에도 찾기 힘든 연대의 정신이다.

조공노조는 사측과 동등한 파트너 관계가 되도록 노조의 위상을 지키는 데 주력했다. 노조 내부 민주주의 또한 실천했다. 조공노조 지도부는 현장에서 선출된 집행위원들에게 노동자의 의견을 듣고 보고하기를 주문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조공노조에 시련이 닥쳤다.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는 ‘발전주의 국가’를 추진하면서 조공노조와 같은 전투적 노조를 눈엣가시로 생각했다. 60년대 후반 한국은 공산품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을 위협세력으로 판단해 억압적 노동정책을 폈다. 국가개입도 늘렸다.

그리고 68년 정부는 대한조선공사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조공노조는 민영화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등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해 11월 민영화된 대한조선공사에 전 극동해운 소유주였던 남궁련 사장이 부임했다. 그는 과거 부정축재자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새 경영진은 조공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임시직 노동자를 해고했다. 성난 노동자들은 해고중단을 요구하며 17일간 작업을 중단했다.

결국 회사는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듬해인 69년 반격에 나섰다. 같은해 6월 임금·단체협상이 결렬됐다. 노조는 8월 파업을 결정했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가족들도 대규모로 시위에 참여했다. 정부는 처음엔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파업이 장기전으로 가자 진압작전을 고려했다. 정부는 노조의 연대투쟁을 이유로 그해 9월 사상 처음으로 노동쟁의에 대한 긴급조정권을 행사했다.

노조는 패배했다. 노조간부 12명과 조합원 4명이 해고됐다. 노조 지도부 연행과 내부 분열이 뒤따랐다. 지도부는 불법침입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조공노조의 전투적 노조운동은 69년 막을 내렸다.

68~69년 조공노조의 파업에 대해 저자는 “박정희 정권이 권위주의적 노동정책으로 선회하는 계기를 만든 성격의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뒤 조공노조는 70년대 유신시대 암흑기를 ‘온순하게’ 지나가야 했다. 저자는 “60년대 조공노조와 80년대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공평한 분배·민주주의·인간의 존엄성 등 본질적으로 같았다”며 “조공노조의 유산이 80년대에 새로 등장하는 전투적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여년이 흘렀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비정규직·여성·이주노동자 차별이 심화하고 있다. 조공노조가 파업까지 불사하며 임시직 노동자를 끌어안았듯이 지금 한국 조직노동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저자는 묻고 있다.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는 지난해 12월 출간됐다. 저자가 2003년 나온 자신의 박사논문을 오랜 기간 수정·보완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2009년 영문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2011년 제임스 팔레 한국학 저작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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