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현장노동자의 생명에는 무관심하고 돈벌이에 혈안인 재벌대기업과 투쟁해 건설노동자들의 안전권을 쟁취해야 한다. 모든 건설노동자들이 안정된 일자리에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휴일에는 쉴 수 있게 건설노동자의 생존권을 쟁취하고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건설산업연맹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양천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공개한 투쟁결의문이다. 연맹의 투쟁 목표는 이날 대회와 함께 치러진 임원선거에 단독출마해 당선된 이용대(56·사진) 위원장의 어깨에 지워졌다. 이 위원장은 향후 2년간 그가 위원장을 겸직하는 건설노조를 비롯해 플랜트건설노조·건설기업노조 등 산하 3개 조직의 사업을 총괄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대림동 연맹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 며칠 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또 사망사고가 났는데.

“여수산단 대림산업 폭발과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타워크레인 붕괴 등 지난해부터 유난히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죽어 나가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탓이다.

노조 깃발을 띄운 후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변한 게 없다. 투쟁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올해 기업살인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어느 정도 이슈화된 것을 토대로 삼아 사용자와 정부에 명확한 정리를 요구할 것이다. 실무자들이 지난해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를 접촉해 법 제정 문제를 논의 중이다. 올해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 의원들이 '사람이 죽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본 논리에 공감하고 있다. 사용자측이 회유·압박을 하면 정면으로 맞설 것이다. 그나마 토목·전기원 노동자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조합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산업재해 적용도 안 된다. 이들의 산재보험 전면적용이 올해 투쟁계획 중 하나다.”

- 매년 6월에 총파업 투쟁을 벌인다. 올해 이슈는 무엇인가.

“그때가 조합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일손이 한가해지는 시점이다. 현재 기획단계인데, 올해는 연례행사 식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상경투쟁을 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6월 상경투쟁을 통해 정부로부터 임금체불 방지대책과 퇴직공제금 인상 등 여러 가지 약속을 얻어 냈다. 그런데 약속들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올해 총파업 투쟁은 정부의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특히 건설현장 카드출입제를 주요 이슈로 부각할 계획이다.”

- 카드출입제가 이뤄지면 현장이 어떻게 변하나.

“건설현장은 복마전이다. 정권 통치자금의 3분의 1이 건설기업에서 나온다는 얘기도 있다. 4대강 사업은 논외로 하더라도 아파트 하나를 지어도 그 안에 주택조합·원청·하청·재하청이 얽혀 수많은 돈과 이익을 쪼개고 나눈다. 하지만 그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드러나 있지 않다. 카드출입제를 시행하면 현장에 건설노동자들이 얼마나 투입되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게 된다. 건설현장 투명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산재사고나 임금체불 방지활동도 용이해 지고,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사회보장 강화에도 활용될 수 있다. 카드출입제를 통해 건설노동자들의 이력과 경력을 관리하면 국가는 미래 건설산업 육성을 위한 인적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다.”

- 현장에서는 간혹 상급단체가 다른 건설노동자들끼리 취업을 놓고 다투는 일이 일어나는데.

“최근에 당선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달 말 민주노총 국민총파업에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들었다. 무척 반가운 얘기다. 건설현장에서도 양대 노총 건설노동자들이 하나가 돼 현장을 바꾸고 자본가들을 상대로 공동투쟁을 전개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렇게 할 용의도 있다. 그런데 한국노총 산하 조직의 경우 지역별 체계를 갖췄다고는 하지만 막상 찾아가 보면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채널만 담보된다면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

- 2010년 이후 전체 산업에서 임금체불이 줄어든 반면 건설부문만 늘어났다.

“조합원들은 혹시라도 일자리를 잃을까 봐 한두 달 임금을 받지 못해도 강하게 얘기하지 못한다. 그러다 4~5개월 임금이 밀리고, 공사를 끝낸 건설사는 ‘먹튀’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노조의 문제제기로 2012년 7월 이후 ‘하도급대금 등 지급확인제’와 ‘건설기계 대여대금 지급보증제’가 도입됐다. 사실 노조가 개별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체불감독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조합원들은 악성체불로 변질되기 전에 지역조직과 상담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노조는 체불방지 제도를 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해 미이행 업체를 고소·고발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 건설현장의 여러 문제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이 많다.

“다단계 하도급의 근간이 됐던 시공참여제도는 건설노조가 2008년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폐지했던 제도다. 법대로만 지켜지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현장에 가 보면 대다수 건설사가 서류상으로는 문제없이 꾸며 놓고 하청에 재하청을 주고 있다. 7단계에서 8단계까지 내려가면서 노임저하·임금체불 문제가 생기고 안전시공에 구멍이 난다. 건설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조가 서류 등을 취합해 증거를 만들려고 해도 너무나 은밀하게 이뤄져 쉽지 않다. 올해는 원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조직된 건설기업노조와 연계해 시공참여제도 폐지 이후 발생하는 문제점을 다각도로 파악할 예정이다. 그런 다음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이다.”

- 무엇보다 최저가 낙찰제도를 폐지해야 할 것 같다.

“미국의 경우 공공공사에는 적정임금(Prevailing Wage) 제도가 적용된다. 국가가 건설노동자들의 표준임금을 정해 놓고, 건설사는 의무적으로 이를 지불해야 한다. 2007년 말 국토부는 제도 도입을 위해 현지답사까지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두 폐기돼 버렸다. 현실적으로 단시간에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표준임대차계약서 등을 통한 적정임대료나 적정단가를 명시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 최소한 건설기업들의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경쟁이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현재 국회와 연계해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 적정임금과 임대료를 명시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관련법이 발의될 예정이다.”

- 건설산업 불경기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올해 연맹 사업계획 중 하나가 건설산업 불경기에 대한 전반적인 대안 모색이다. 연맹 산하 건설기업노조 조직의 85% 이상이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마쳤다. 유수의 건설기업 노동자 조직이 모두 전환했다. 이들과 연계해 수주와 물량 전망이 어떤지, 이러한 것들이 건설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할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의 고용과 직결된 문제다. 올해 건설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연맹 차원에서 동향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초창기 투쟁구호는 ‘차라리 죽여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였다. 요즘에는 ‘차라리 죽여라’는 잘 외치지 않는다.(웃음) 그만큼 현장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흔히 ‘노가다’로 부르며 건설노동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대놓고 그렇게 하는 곳은 없다.

과거에는 탈의실이나 세면시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에는 탈의실과 세면시설이 없으면 난리가 난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이처럼 현장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건설노동자들은 무척 소박하다. 남들처럼 퇴근 후 가족과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꿈이다. 하루 8시간 노동이 필요한 이유다. 200만 건설노동자 중 5만명이 조합원이다. 조합원 하나하나가 사회적 약자인 1천500만 노동자들을 대표해 투쟁해 나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자부심으로 5만 노동자를 10만으로 조직할 것이다. 모든 건설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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