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파상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 역사상 최초다. 이달 13·18·20·21·28일 전국 각지에서 기습적으로 파업이 이어졌다. 108개 도급업체가 전국에 산개해 있는 관계로 아직까지 쟁의권 확보가 모두 이뤄지지 않아 전 조합원이 일시에 파업에 돌입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쟁의권이 확보된 분회들을 중심으로 게릴라 파업 전술로 사용자를 압박하고 있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삼성은 공식적으로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협력업체 노조이지 삼성 노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노조 설립 시기부터, 최종범 열사 교섭, 그리고 경총을 내세운 대리교섭과 파업시 대체인력 투입까지 모두 삼성이 지휘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 역시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상대방은 바지사장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삼성의 초헌법적 왕국은 노사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신입사원 총장추천 할당제 해프닝이 그 예다. 삼성이 대학들을 자기 맘대로 줄 세워 보려 했으나 국민적 비판만 받고 이틀 만에 이를 철회했다. 삼성의 오만이 지나쳤고, 국민이 삼성에 보내는 경계가 더 커진 탓이다. 삼성이 제작단계부터 온갖 방해를 해 온 삼성 백혈병 노동자 실화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은 결국 다음달 6일 시민들의 힘으로 상영을 시작한다. 며칠 전에는 법원에서 금속노조 삼성지회 간부의 해고사건을 다루며 삼성의 무노조 전략이 실재하며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된다는 판례가 나오기도 했다. 삼성 문제와 관련한 단체들이 모두 모인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지난해 12월 출범해 활동에 돌입했다. 삼성의 노동환경 문제를 국제적으로 다룰 네트워크도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베트남 공장의 대규모 시위 사태처럼 해외공장에서 다양한 저항이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한국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과 영향권에 있는 협력업체들까지 합하면 국가경제의 3부의 1 정도 규모다. 사실 한국의 재무부는 기획재정부가 아니라 삼성 전략기획실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 삼성을 위한 것이라면 국민적 손실이 있더라도 제도가 바뀐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부문 투자활성화 대책이 대표적이다. 투자대책의 핵심인 의료기관의 영리목적 자회사 설립 허용안은 삼성이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헬스케어 사업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바이오로직스 등 10여개 계열사에서 동시에 추진 중인 헬스케어 사업을 의료서비스의 최종 판매처인 삼성의료원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삼성의료원의 영리목적 자회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로 든 사업 대부분은 사실 삼성이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병원 영리화로 국민건강이 어떻게 되든 삼성에 좋은 것이 국가에 좋은 것이라는 발상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그룹의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경영권 승계만은 제때 이뤄 낸다는 것이 삼성 경영진의 컨센서스다. 삼성코닝의 지분을 코닝에 주고 코닝 지분을 받는 식으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지분을 정리한 것이나, 삼성에버랜드 건물관리사업부를 에스원에 넘기고 패션사업부를 제일모직에서 가져오며 지주회사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나 모두 경영권 승계의 일환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삼성 왕국에 대한 국민적 경계가 커지는 가운데 삼성이 만들어 놓은 초헌법적 장벽들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삼성은 21세기형 왕권승계라 할 경영권 승계를 위해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으며,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어떻게든 처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설 이후 삼성왕국에 민주주의와 노동권의 빛을 비출 최전선에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있을 것 같다. 삼성전자 애프터서비스의 경우 5월부터 9월까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측이 노조탄압을 하려면 2월부터 4월까지가 적기다. 이미 삼성은 최근 조직력이 강한 센터 몇 곳의 재계약 여부에 관한 소문을 흘리며 노조를 흔들기 시작했다. 노사교섭보다는 대체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도 보인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의 탄압에 다양한 투쟁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파상적 파업을 이어 가고 있고, 업무로 인해 언제나 스마트폰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서비스기사들을 위한 팟캐스트도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서비스부문 생산자와 소비자 간 연대방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민단체와 연대하고 있다. 사측의 압박으로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센터들을 조직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연대도 이어 가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파업과 동시에 사회적 연대를 중심에 두고 투쟁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모든 투쟁을 시민과 함께 나누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파업을 하고 아예 광장에서 시민들의 가전제품 수리상담을 해 주며 삼성의 서비스 정책 문제점과 분 단위 급여체계의 문제점을 이야기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삼성이 빠진 자리에서 서비스 기사와 소비자가 직접 만난다면 그야말로 창조적인 일을 더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시민들 역시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지키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싸움은 노동조합의 임단협 투쟁이기에 앞서 삼성왕국에서 벌이는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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