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계, 노동부 통상임금지침 폐기투쟁 선언’. 뉴스 제목이다. 지난 23일 고용노동부가 통상임금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산하 지방관서로 하여금 업무처리하도록 작성한 지침이다. 노동계는 분노하고 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각종 복지공약 파기와 의료기관 민영화, 기만적인 공공부문 정상화 방안으로 국민의 저항에 직면한 박근혜 정권이 이번에는 통상임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전체 제조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며 “다음달 25일 국민총파업을 시작으로 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노동부가 노동자의 체불임금 청구권을 제한하는 지침을 발표했다”며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고용노동부 지침에 대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사용자들의 오판과 편법을 야기시키고 있다”며 “기업편향적이고 일방적인 반노동 정책이 계속되는 한 노사정 대화는 불가능하다”면서 지침을 즉각 폐기하라고 지난 23일 성명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지침을 두고서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투쟁을 선언하고 노사정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오늘 이 나라 노동조합은 분노하고 있다.

2. 고용노동부는 지난 23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에서 고용노동부는 고용노동부의 기존 통상임금 판단기준을 지난달 18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단기준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기존 태도를 변경하고서 정기상여금 등 1월을 초과해서 지급되는 임금, 실제 근무 여부에 따라 지급금액이 변동되는 금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그 동안 법원판례 기준을 무시한 고용노동부 예규 ‘통상임금 산정지침’, 행정해석 등으로 인해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법원의 판례기준에 따른 임금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들로 하여금 위법부당한 통상임금 산정에 의한 법정수당을 지급하도록 조장했다. 국가 대한민국이 사용자로 하여금 임금체불의 범죄행위를 저지르도록 지도하고 감독했다. 그런데도 기존의 통상임금 기준이 부당한 것이었다며, 그로 인한 피해자 노동자들에게 사과의 말도 변명의 말도 한마디 없이,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기대서 비겁하게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으로 자신의 기준을 변경했다. 여기에 비열한 짓을 덧붙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두고 해석상 논란이 되고 있는 재직 중인 자에 한해 지급하고 퇴직자에겐 일할계산해서 지급하지 않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고 단정해서 지침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정기적인 지급이 확정돼 있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던 날 대법원은 직접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있고 그것이 신의칙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그 노사합의의 유효기간까지 향후에도 신의칙이 적용돼서 추가 임금청구가 불가하다고 지침으로 지방관서에 하달했다. 이렇게 법원 판례에 항복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노동자권리를 짓밟고 말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6월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1천곳을 상대로 상여금 지급기준을 조사한 결과 고정상여금을 지급하는 사업장 가운데 38.2%만이 “퇴직근로자에 대해서는 정기상여금을 일할 지급한다”고 밝혔다(2014.1.24자 매일노동뉴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60% 이상의 사업장 노동자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3. 지침에서 고용노동부는 마치 신의칙 때문에 소급분의 추가 임금청구도 노사합의의 변경 전에는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했다. 그러나 아무리 포장 기술이 뛰어나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관한 포장이므로 그 판결의 법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지침에서 고용노동부는 신의칙 적용요건에 해당하는 사업장의 경우 정기상여금을 제외하기로 한 기존 노사합의의 만료기간까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전 소급분 청구뿐만 아니라 그 뒤의 추가 임금청구까지 부정했다. 고용노동부 지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판시한 신의칙 적용요건(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있고 ② 그럼에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해서 근로자가 추가 임금을 소송으로 청구하는 때에는 ③ 그 추가 임금 청구로 기업경영의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때)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법원이 판결한 신의칙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있다고 곧바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추가 임금청구가 기업경영에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도에 이르는 등 엄격한 요건하에서 예외적으로만 적용된다고 대법원이 판결문에 쓰고 있다. 지침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를 변경하는 노사 간에 새로운 합의가 있은 후에야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다는 식으로 고용노동부는 과장해서 설명하고 있다. 대법원이 신의칙으로 문제될 수 있다고 본 노사합의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전에 한 노사합의에 관해서다. 이런 노사합의는 강행법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무효임에도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신의칙 적용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 소급분의 추가 임금청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문제의 신의칙 판결을 했던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후에 한 이러한 노사합의는 법위반으로 그 효력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고 이전에 한 노사합의가 새로운 노사합의 전까지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판결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기존 임단협의 만료기간까지 신의칙이 적용돼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한 추가 임금청구가 불가하다는 식으로 지침에서 부당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리해 본다면, 첫째, 지침에서 밝힌 고용노동부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신의칙 적용요건에 해당하는 사업장에서만 해당한다. 판례의 신의칙 적용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사업장 사용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는 물론이고 이전의 소급분까지 추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없는 사업장이나, 이런 노사합의가 있었더라도 이 나라에서 도산이나 적어도 적자 경영이 아닌 정상적으로 경영해 온 기아차·현대차 등 대부분 사업장 사용자는 소급분까지 추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둘째, 정기상여금을 제외하기로 노사합의를 했고 회사 경영사정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해서 추가 임금을 지급하게 되면 기업 경영에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사업장이라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 노조가 기존 노사합의는 무효라며 법에 따라 지급토록 요구했음에도 사용자가 무작정 추가 임금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사용자는 더 이상 신의칙을 주장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사실 고용노동부의 신의칙을 두고서는 노동자들이 무서워할 일은 아니다. 이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선고의 날에 떨었던 것으로 충분하다.

4. 이번 지침에서 고용노동부는 엉뚱하게도 노사 간에 대화를 통해 원만히 풀도록 지도하고, 임금구성을 단순화하고,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로의 개편이 이뤄지도록 지원하라고 통상임금 지침으로 지시했다. 노동관서로 하여금 노동현장에서 사용자의 법위반을 단속하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기는커녕 임금체불을 해 온 사용자와 피해자 노동자, 노동조합이 노사대화로 원만히 풀도록 지도하라는 등 역할을 망각하도록 지방관서에 지시했다. 앞으로 지방노동사무소 등에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 해당한다며 노동자들이 체불임금으로 사용자를 고소·고발·진정할 경우 적극적으로 임금체불로 입건해서 처리하기보다는 소극적으로 노사대화로 원만히 해결하라고 말하는 근로감독관들을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지방노동관서를 통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결은 크게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기대와는 달리 소송 등 보다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찾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고용노동부 지침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침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지침이 되고 말았다.

5. 반복해서 말한 것처럼 통상임금은 1일 8시간, 1주간 40시간의 법정근로를 초과한 법정외근로를 제한하기 위한 법정수당의 지급기준이 되는 임금제도다.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이 문제인 것은 근로기준법 제2조1항7호(소정근로시간)에서 정한 법정근로 범위 내에서 그보다 단축된 근로시간을 노사가 정해서 일하도록 정했음에도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이렇게 정해서 노동자로 하여금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기상여금·각종 수당·복리후생명목 임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도록 사용자에 합의해 주거나 묵인함으로써 법정근로시 지급받는 시간당 임금보다도 적은 임금을 법정외근로시 지급받도록 노동조합이 조장하거나 방치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법보다 못한 법정수당을 지급받는 일이 발생해서다. 어찌 보면 전원합의체 판결로 대법원이, 지침으로 고용노동부가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니 쟁취해라. 이 판결 전에 어리석게 통상임금인 것을 사용자와 합의해서 제외했다면 그건 네 잘못이니 사용자 편드는 나는 사용자 상태 봐가며 노동자 너의 권리를 보장해 주겠다. 그걸로 날 찾아와도 소용없는 일이다. 임금은 근로의 대가라고 근로기준법이 이미 정의해 놓았으니 퇴직하더라도 제가 일한 만큼 지급받는 것은 당연하다. 지급받아라. 네 스스로 네 권리를 찾아라.” 그러니 이에 덧붙여 나도 한마디 하겠다. 노동자의 분노는 고용노동부 지침이나 대법원 판결이 아니라 법보다 못한 수준으로 체결한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 내지 그런 합의를 강요한 사용자, 혹은 그런 합의를 한 노조에 대한 것이어야 하며, 노동자의 투쟁은 통상임금에 있어서는 복리후생명목 임금·각종수당·정기상여금 등 그 지급조건이 무엇이든 법정근로(소정근로)시 지급받는 임금 모두가 포함되도록 쟁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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