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아르바이트생과 전화로 노동상담을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청년은 자기가 받은 시급이 최저임금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산 잔고가 빈다고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노동법에 노동자의 권리가 규정돼 있으며 모든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청년은 대뜸 반문을 했다. “제가 알바이긴 해도 노동자는 아닌데요?” 나는 그 청년에게 왜 당신은 노동자이고, 노동자여야만 하는지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체불임금 받는 방법을 안내해 주는 데 그치고 말았다.

맥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로 단순노무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단기적인 생계 목적의 돈벌이지 노동을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르바이트는 노동도 일도 아니고 덜 고단하고 시급이 더 많으면 무조건 좋은 돈벌이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 청년의 반응에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노동조합을 갖고, 노동자성을 인식하는 누구가에게는 위대한 이름이지만 근근이 하루하루 생계만을 위한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럽거나 너무 멀리 있거나 혹은 가끔 초라해 보이는 이름일 뿐이었다.

지난해 유럽에 갔을 때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 벨을 누르거나 종업원을 부르지 않고, 서빙 노동자가 고객에게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놀랐다.

“음식 나오셨습니다” 와 같은 이상한 존칭에 억지로 서로 불편한 감정노동을 하지 않았고, 서빙 노동자는 자신의 동선과 흐름에 따라 일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서빙이 단순노무가 아니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숙련도 차이가 큰 직종이라는 것에 놀랐다. 서빙으로만 20년 넘게 일하는 사람도 있고, 정기적으로 직업훈련을 받으면 임금도 높아진다고 들었다.

우리 사회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청년들은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인사하는 기계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일의 방식이나 숙련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기계의 부속품처럼 한 자리를 채우고 있으면 되는 일로 치부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일도 노동도 아닌 돈벌이에 그치고 만다.

사회는 이처럼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최근 학원강사 실태조사를 해 보니 80%의 학원강사 청년들이 개인사업자 소득신고로 3.3%의 세금을 내고 있었다. 개인사업자로 신고한 탓에 4대 보험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비율이 90% 가까이 됐다. 실제 현장에서는 학원장의 업무지시를 받고, 학원의 기자재를 이용하는 등 명백한 노동자임에도 노동자 아님에 대해 스스로 용인하고 넘어가고 있었다. 헬스장에서 일하는 젊은 트레이너들 또한 과거 기본급에 성과급을 받던 상황과는 달리 최근에는 기본급은 거의 없고 개인 트레이닝에 따른 성과급 중심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청년들은 명목상 사장님이 돼 있었지만 그들의 사회안정망과 최저임금은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성과를 낸 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성과는 원래 사장님 마음대로 배분해서 줄 수 있는 여지가 크고, 일을 하지 못했을 때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청년고용 대책에서 주로 제시하는 창업정책 또한 청년들의 노동을 사장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미 자영업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우리 사회에서 정부는 청년들에게 꿈을 키우라며 창업으로 밀어 넣고 있지만 실제 생계형 창업, 개인 노동력만으로 근근이 유지되는 창업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는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노동자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헌법상 노동 3권과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4대 보험 등 수많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고, 스스로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받지 않을 수 있다. 모든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yangsou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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