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설연휴를 앞두고 들뜨기 마련이지만 그 이면에는 시름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우체국 집배원들 역시 그중 하나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달 17일부터 30일까지를 ‘설 우편물 특별 소통기간’으로 정했다. 연중 우편물량이 가장 많은 시기다. 연평균 3천364.8시간의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집배원들의 업무가 가중되고, 산업재해 우려도 커진다. <매일노동뉴스>가 집배원의 하루를 함께했다.

1천300여세대 아파트단지 '나 홀로 배달'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시흥의 한 아파트단지, 전날 내린 눈이 곳곳에 얼어붙어 있었다. 단지 안으로 시흥우체국 소속 집배원 김종원(38·가명)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섰다. 뒷좌석 짐칸에 동여맨 소포와 택배가 사람 키만큼 높았다. 김씨는 기자를 향해 “점심 드셨느냐”며 인사를 건넸다. 바빠서 점심을 거른 것은 정작 그였다.

요즘 김씨는 비상이다. 이달 17일부터 30일까지 이주일간 비상근무체계로 일하는 ‘설 우편물 특별 소통기간’을 맞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접수될 소포와 택배물량은 지난해보다 16% 증가한 1천370만개로 예상된다. 전국 집배원은 1만8천여명. 단순 계산해도 1인당 하루 평균 50개 이상 택배를 날라야 한다. 이날 김씨가 담당한 택배는 70여개다.

“많이 하는 사람은 150개까지도 해요. 명절엔 택배가 많아 일반우편물은 절반도 처리하기 힘들 정도예요.”

시흥시 인구는 40만명인데, 그가 속한 시흥우체국의 집배인력은 90여명에 불과하다. 1천300여세대가 사는 아파트단지의 우편물 전량을 김씨가 혼자 맡는다. 이날 그가 배송해야 하는 우편물은 1천600여개. 일반우편 외에도 법원 등기 등 특별등기와 우체국 택배가 섞여 있다. 전날 처리하지 못한 물량도 적지 않다. 김씨는 “아침 7시에 출근했다”며 “특별 소통기간에는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두세 시간 늦게 들어간다”고 말했다.

지난해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간한 ‘집배원 노동자의 노동재해, 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기 우체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86시간이다. 하루 평균 15시간이나 된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그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한 손에는 동별로 미리 분류해 묶어 놓은 우편물 한 무더기, 또 한 손에는 2킬로그램짜리 명절 선물세트 두 개를 들었다. 미끄러운 빙판길을 뛰듯이 걷는 발길이 아슬아슬했다. 김씨는 아파트 1층에 설치된 우편함 수십 곳에 날랜 손길로 우편물을 꽂아 넣었다. 동시에 택배 수취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체국 택배인데 지금 댁에 계신가요?”

점심 굶고 우편물·택배 들고 빙판길 뛰어

택배는 고객에게 직접 전해 주거나 고객이 원하는 곳에 맡겨야 한다. 배달시간이 길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중간에 분실이라도 되면 집배원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가 택배서비스를 확대하면서 택배 물량은 지난해보다 20% 가량 늘어났다. 택배를 접수한 다음날까지 배송하는 일일배송정책까지 도입됐다. 업무 강도가 오히려 강화된 것이다.

“빠르게 배달해야 하니까 시간에 쫓기죠. 고객 민원도 늘어났고. 배달 못하면 집배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라 부담이 커요.”

김씨는 다음 동으로 넘어가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택배 언제 와요?” 고객의 독촉전화다. “물량이 많아서 늦어지고 있습니다. 곧 도착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통화 중에도 쉬지 않고 몇몇 우편함에 우편물 반송을 알리는 스티커를 붙였다. 그 후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탔다. 비로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오전에 우편물 구분작업을 두세 시간쯤 한 뒤 배송을 시작합니다.”

오전에는 원룸이 많은 주택지역을 돌았다고 했다. 원룸 밀집지역은 고객이 부재 중인 곳이 많아 두세 번씩 방문해야 한다. 김씨가 이날 점심을 굶은 이유다. 특별 소통기간에 집배원들의 식사시간을 포함한 휴식시간은 하루 평균 37.3분이다. 김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에도 식사는 10분 안에 합니다. 빨리 나오는 자장면이나 빵을 많이 먹죠. 아마 집배원 중에 위장병 없는 사람 없을걸요?”

특별 소통기간에 더욱 멀어지는 '주말과 병원'

특별 소통기간엔 주말도 없다. 평소에는 격주로 토요일 근무를 하지만 특별 소통기간에는 집배원 전원이 주 6일 근무를 한다. 집에 돌아가면 파김치가 된다. 일곱살 난 딸에겐 거짓말쟁이 아빠가 됐다. 피곤해 늘어지다 보니 딸과 놀아 주겠다는 약속을 자꾸 어긴다. 그만 겪는 일은 아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이 업무를 마친 뒤 탈진한 경험을 수치화한 탈진 점수는 48.2점이나 된다. 집배원 절반이 탈진감을 느끼는 셈이다.

일과시간에 쫓기다 보면 사고는 필연이다. 김씨는 “전날 눈길을 오가다 열 번은 넘어졌다”며 “다들 타박상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그 역시 겨울밤 우체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경험이 있다. 지금도 상처부위가 쑤신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지난해 4~5월 전국 246명의 집배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집배원의 절반 이상(51.0%)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퀵서비스 노동자(35.2%) 등 유사 직종 종사자보다 훨씬 높은 사고비율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은수미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1년~2013년 11월) 집배원 903명이 업무 중 안전사고를 당했고 교통사고로만 10명이 숨졌다.

당장 사고를 피했다 해도 골병은 피하기 어렵다. 김씨는 우편함 1천300여개에 편지를 넣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손목과 무릎을 수없이 굽혔다 폈다. 7.5킬로그램짜리 배 선물세트 같은 무거운 택배상자를 날랐다. 김씨가 종종 바로 눕지 못할 정도로 허리통증을 심하게 겪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손목 인대도 ‘찌르르’ 아프고, 무릎과 어깨도 쑤신다고 했다.

김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근골격계질환을 가진 집배원은 전체의 74.6%이고, 당장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수준인 경우는 전체의 43.3%로 두 명 중 한 명꼴이라는 조사 결과를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고·골병은 일상, 산재·공상처리는 어림도 없어

한의원이라도 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동료들의 눈치도 보인다. 결원이 생기면 남은 인원이 그 물량까지 배달해야 하는 ‘겸배’ 시스템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동료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는 바람에 김씨는 휴가도 쓰지 못했다.

“다들 아파도 그냥 참는 거죠. 그러다 병을 키우기도 합니다. 한 분은 무릎 살이 파였는데 참고 일하다 결국 곪아서 입원했어요. 공상처리를 안 해 줘서 그냥 병가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산재·공상 처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분위기다. 우정노조(위원장 이항구)가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나온 ‘우정종사원의 근로시간과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체국 노동자의 70%가 부상을 당해도 공상처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체국에서는 웬만하면 병가로 처리하라고 하죠. 공상·산재로 처리하는 거 안 좋아해요. 지난해까지는 공상처리율이 우정사업본부 경영평가에 들어간다고 해서 우체국별로 점수를 매겼거든요. 길게 입원하지 않고 짧게 병가를 내서 입원했다가 다시 들어가는 식의 편법도 써요.”

집배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도 대책은 느슨했다. 이번 겨울 들어 김씨가 우체국에서 받은 안전조치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교통안전교육과 무릎보호대, 바이크 바퀴에 감는 체인뿐이었다.

김동근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노동시간이 증가할수록 탈진 정도가 심해지고 근골격계·뇌심혈계 질환과 교통사고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장시간 노동이 탈진과 사고의 악순환을 부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유인력 확보하고, 택배 일일배송정책 중단해야

우정노조는 우정사업본부와 지난달 노사협의를 통해 인력충원에 합의했다. 이로써 장시간 노동의 근본 원인인 인력부족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우정사업본부는 특별 소통기간을 맞아 단기 보조인력 2천100명을 투입했다. 이 중 670명이 집배업무로 배치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예비인력 확보·안전장비 지원 등 사고피해 최소화를 위한 조치와 배송기간 조정·겸배 금지는 바로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우정사업본부는 ‘어떻게든 배송을 해내라’는 태도를 버리고 집배원의 안전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동근 연구원은 "우정사업본부는 사고가 나면 교통안전교육을 강조하지만 정작 현장 집배원들은 '30분 교육받고 나가면 더 바빠서 사고가 난다'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설 우편물 특별 소통기간만이라도 택배 일일배송원칙을 철회하고, 근본적으로는 인력충원과 노동시간단축을 하루빨리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특히 "우정사업본부가 이번에 단기 추가인력을 투입한 것은 더 이상 현재 인력으로는 쏟아지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라며 "집배현장 전수조사를 통해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인력을 산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호등 볼 여유, 병원 갈 여유라도 달라”

저녁 6시가 넘자 주위는 금세 컴컴해졌다. 그러나 김씨는 인근 주택단지로 우편물을 배달해야 한다. 도심지에서 벗어난 지역이라 가로등도 적다.

“밤에 사고가 많이 나죠. 어두운 데다 길도 미끄러우니까. 야간배송만 안 해도 사고가 많이 줄어들 거예요.”

15년차 집배원인 김씨는 “그래도 우체국 일이 좋다”고 했다. 우체국에 입사해 지금의 부인을 만났고 가정을 꾸렸다. 서로 즐겁게 일하려 애쓰는 동료들이 있고,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담당구역 주민들이 있다. 그가 장시간 노동을 버티는 이유다.

그러나 몸이 너무 아프다. 너무 많이 다친다.

“인원을 늘려서 좀 여유 있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신호등 보고 천천히 운전할 여유, 밥 먹을 여유, 마음 놓고 병원에 갈 수 있는 여유 말입니다. 그런 것만 있었어도 이렇게 다치거나 힘들진 않을 겁니다.”

이날 오전 7시에 일을 시작한 김씨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