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희 기자

한국수출입은행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듯하다. 원인 제공은 기획재정부가 했다. 기재부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수출입은행을 ‘방만경영 기관’으로 찍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행장 교체기가 겹쳤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의 임기는 다음달 6일까지다. 수출입은행장은 으레 기재부 퇴직관료나 차관급 인사들이 차지하는 자리쯤으로 생각돼 왔다. 벌써부터 낙하산 인사와 관련한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다. 수출입은행 노동자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 됐다.

지난 21일 오전 경기도 일산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용국(43·사진) 금융노조 수출입은행지부 위원장은 낙하산 반대 싸움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외부에서 오는 행장은 조직문화를 이해하고 조직을 키우기 위해 고민하지 않고 정거장 정도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실제 37년 역사의 수출입은행을 거쳐간 17명의 행장 중 3년 임기를 채운 인물은 단 7명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은 특히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우려했다. 그는 “더 좋은 자리를 바라고 단기실적을 높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다 보니 실적 위주로 조직을 끌어가고, 리스키(고위험)한 일을 하려고 한다”며 “외부에서 CEO가 올 때마다 조직이 휘청거리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단기실적주의를 추구하면서 진행하는 무리한 경영은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줍니다. 수출입은행은 남북협력기금이나 대외경제협력기금 등 대외 장기여신을 취급하거든요. 장기대출이라서 장기비전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업이 많아요. 더군다나 최근 수출입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영위할 수 있는 업무영역이 대거 늘어났습니다. 또 공공기관 역할 재정립에 따라 대외업무 전문기관으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법정 자본금도 8조원에서 15조원으로 늘었고요. 늘어난 책임에 맞게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려면 공무원처럼 ‘보편적 전문가’가 아니라 모든 사업 분야에 능통한 ‘실무형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업무 파악에 1년, 퇴임 준비에 1년을 쓰는 관료 출신이 아니라 37년 동안 축적된 역량을 발휘할 내부인사 말입니다.”

수출입은행 노동자들이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은 20개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 중 한 곳이다. 기재부는 수출입은행이 직원 가족들의 의료비와 중·고등학교 자녀의 학비를 지원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김 위원장은 수출입은행이 정상화 대책의 시범케이스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는 “방만경영 기관으로 지정된 곳에 정부의 특명을 받은 새로운 기관장이 오는 첫 케이스”라며 “어떤 식으로 조직을 압박할지, 노조는 어떻게 막아 낼지 본보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방만경영 기관으로 지정된 것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처럼 몰고 있다”며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기재부가 은행의 인원과 예산·정원을 모두 통제하고, 해마다 업무성과를 전년 대비 10% 이상 높이라고 강제할당을 했으면서도 느닷없이 방만경영을 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기재부가 자기들 나름대로 1인당 복지금액을 기준으로 모든 공공기관을 쭉 줄 세워 놓고 20개를 고른 것 아닙니까. 업권에 따라 비교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기준점이 없어요. 금융공기업끼리 비교한 것도 아닙니다. 같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나 산업은행과 비교했을 때 복지가 과다하니 줄이라고 하면 이해나 가죠. 하는 일도, 급여체계도, 복지체계도 다른데 어떻게 비교를 합니까. 이렇게 서열에 따라 나열하면 내년에도 20개 방만경영 기관이 다시 나올 겁니다.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계속 핍박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주문한 대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허탈하죠. 찬물을 끼얹는 겁니다.”

노사관계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김 위원장은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복지축소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할 것”이라며 “강제로 과반수 근로자나 노조 동의 없이 단체협약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면 결국 노사 간에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너무 비열하고 사악합니다. 뒤에 숨어 조작을 하니까요. 사측과 노조를 싸움 붙이고 노사관계를 피폐하게 만들겠다는 것 아닙니까. 정상화 대책이 나온 뒤에 노사관계가 급격하게 나빠졌어요. 내부적으로 뺏고 뺏기는 싸움을 하면 생채기는 조직에 남고, 정부는 과실만 따먹겠죠.”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