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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제 김헌정 22] 김헌정, 또 구속되다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인간적 모멸을 견디며 살아온 지방자치단체 비정규 노동자들. 고 김헌정 열사는 이들의 눈을 띄우고 희망을 제시했던 등대였습니다. 1998년 환경미화원 노동자들과 첫 인연을 맺은 후 10여년의 조직활동 끝에 2천50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민주연합노조를 세웠습니다. 민주연합노조는 그의 열정과 헌신을 그리는 마음에 2013년 5월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나의 형제 김헌정’이라는 평전을 펴냈습니다. 비정규직과의 연대가 화두가 된 요즘, 그의 정신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매일노동뉴스>는 글쓴이인 박미경 작가와 책을 발행한 민주연합노조의 양해를 얻어 본지에 김헌정 평전을 매일 1회씩 연재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깊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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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전국단일조직을 향해

경기도 최초의 상용직 집단교섭·정치판을 빗자루로 쓸어버려라!·교육! 교육! 그리고 또 교육!·경기도노조의 새로운 장수들·김헌정, 또 구속되다·“여보, 나는 당신이 필요해!”·하루도 쉬지 않는 경기도노조·내 시선은 전국을 향하고 있다·“우리는 민주노동당”·‘NL’이냐, ‘PD’냐·기다리던 우군,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공무원노조·환경미화원은 공무원보다 적게 받으라는 법이 있나?·이상관 분회장의 신조 “내 밥숟가락은 내가 지켜야”·배홍국 해복투위원장의 다짐 “나는 제일 나중에 복직하겠다!”·4년2개월 만에 단협 체결한 성남분회·지부에게 조합비 50%를 달라?·끝까지 괴롭히는 청소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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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정, 또 구속되다

김헌정은 각 분회별로 다니면서 교섭과 투쟁을 독려했다. 안양에서는 이준휘 분회장이 잘 이끌어 나가고 있었는데 공무원들이 교섭을 계속 지연시켰다. 교섭위원으로 나온 공무원 가운데 유달리 능글거리고 깐죽대는 공무원이 있었다. 대개 공무원들은 처음에는 노조를 무시하다가도 실무에 들어가면 노동법을 몰라서 꼼짝도 못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공무원은 태도가 오만불손했다.

노조 측 교섭위원들이 저 사람 있으면 교섭 못한다고 나가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이날 교섭석상에 있던 김헌정은 한번 혼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지, 교섭 테이블을 순식간에 뛰어넘어 그 공무원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버렸다. 놀란 공무원들은 경찰을 불렀는데 김헌정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경찰을 맞이했다. 김헌정에게 날벼락을 맞은 공무원들은 경찰에게 정황을 상세히 설명하려니 창피했던지 자기들이 유야무야시키고 말았다.

이 정도로 단협은 어려웠다. 2003년 봄이 훌쩍 지나가도 가닥이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기도노조의 신규분회와 자치단체들 간의 주요 쟁점은 민간위탁시 노조와 ‘합의’냐 ‘협의’냐 하는 것이었다.

경기도노조는 각 분회별로 쟁의절차를 밟아서 4월 28일부터 5월 21일까지 파업을 벌였다. 분회별로 돌아가면서 2∼3일씩 파업을 벌이도록 한 것은 김헌정의 기획이었다.

자치단체들은 노조의 파업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를 청소하는 업무를 하는 자치단체들은 없었다. 대부분 경기도노조가 생기기 이전에 민간위탁이 됐다. 자치단체들은 조합원들이 파업을 하면 무노동 무임금을 바로 적용시켰고 조합원들은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고 불안해했다.

경기도노조와 자치단체들 간의 팽팽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오산에서 청신호가 터졌다. 밀고 당기기를 하던 오산분회와 오산시는 전격적으로 단협을 체결했다. ‘민간위탁시 노조와 합의한다’는 문구가 단협에 들어갔다.

당시 박신원 오산시장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이 아닌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자민련 소속 기초자치단체장이었다. 경기도의원 출신으로 15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던 박 시장은 경기도 내 정가에서 정치력이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담당 공무원들이 반대하던 정리해고시 노조와 합의한다는 부분을 박 시장이 나서 대승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된다고 결단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황준식 분회장이 이끄는 오산분회도 양보한 부분이 있었다. 또 다른 쟁점인 정년에서 노조의 요구안은 61세였는데 시의 안이었던 58세와 절충해서 60세로 합의했다.

수원분회도 교섭에 진전이 있었다. 5월 10일 정리해고시 합의 부분을 수용하겠다고 행정부시장이 말을 꺼냈다. 수원은 교섭이 지연되자 행정부시장이 교섭에 나왔다. 그런데 6월부터 수원시의 태도가 돌변했다. 노조는 5월 31일 제주도에서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주관한 경기도 내 31개 자치단체장 회의에서 경기도노조와 단협을 체결할 때 정리해고시 합의 부분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산에서 타결을 본 단협의 고리가 끊길 것 같은 예감에 이미숙 조직국장은 선도투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6월 2일 월요일은 교섭이 있던 날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교섭이 30분 만에 결렬됐다. 수원시 교섭위원은 교섭자료도 가져오지 않고 10월이나 돼야 끝이 날 것이라며 딴청을 부렸다.

김영철 수원분회장과 박주욱 부분회장이 시청 로비로 들어갔다. 민원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로비에 이불을 쫙 깔아 버렸다.

이때 5월 31일자로 해고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도 함께했다. 수원시청이나 구청·동사무소에서 직접고용돼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던 비정규 노동자들을 수원시청은 5월 31일자로 해고해 버렸다. 이들은 아직 노조로 조직되지 않았으나 천막농성을 하고 있던 수원분회를 찾아왔다. 로비에 들어오지 않은 간부들은 시청 앞마당 천막농성장을 지켰다.

다음날 오후 5시 시장실 앞에서 농성을 하던 김영철 분회장 등 간부들에게 총무계장이 퇴거명령서라는 종이를 들이대면서 나가라고 독촉을 했다. 김영철 분회장은 그 자리에서 종이를 쫙쫙 찢어 버렸다.

공무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랏일을 하고 있다고 충성을 바쳤던 그였다. 수원시민을 위해 20여년 가까이 일했던 그가 시장과 면담 한 번 하자는 데 시장은 못 볼 것 봤다는 표정으로 그의 앞을 지나가더니, 공무원들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와서는 나가라는 것이다.

그가 눈에서 불을 일으키며 종이를 찢자 공무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시청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김영철 분회장은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공무원들의 발길질을 고스란히 맞으며 얼마나 저항을 했던지 그는 끌려 나오자마자 병원에 실려 가야 할 정도였다. 로비에서 농성을 하던 여성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천막농성장도 공무원 300여명이 달려들어 부숴 버렸다. 공무원들은 천막을 지키려는 조합원들을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공무원 대여섯이 조합원 한 명에 달라붙어서 조합원의 팔과 다리를 잡고 짐짝처럼 툭 던졌다. 시청 밖으로 쫓겨난 조합원들은 “우리가 쓰레기냐?”며 울부짖었지만 공무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작전을 계속했다.

평택농성장에 갔던 김헌정은 수원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고양·부천·오산·시흥 등 여러 분회의 조합원들도 몰려왔다. 공무원들과 몸싸움으로 기운이 쭉 빠져서 넋을 잃고 있는 조합원들을 보자 김헌정은 화가 꼭지까지 솟았다.

수원의 조합원들은 김헌정에게 자신들이 당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총무계장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진두지휘를 했다”고 했다. 그는 조합원들을 몰아내서 기쁜지, 위원장이 와 봤자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었는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김헌정은 날쌘 호랑이처럼 날아서 총무계장을 붙잡았다. 곁에 있던 정보과 형사들에게 김헌정은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 현행범으로 체포해라. 사람을 두들겨 팼다. 왜 안 잡아가느냐?”

김헌정은 총무계장의 멱살을 잡고 ‘사과를 하라’고 하면서 조합원 쪽으로 데리고 오려고 했다. 총무계장을 잡고 있는 김헌정을 공무원들이 둘러싸고 이 광경을 본 조합원들이 몰려와서 서로 뒤엉켜 소란이 벌어졌다.

김헌정과 조합원들은 시청 앞 마당에서 즉석 집회를 열었다. 공무원들과 실랑이는 끝이 나고 집회로 대오가 정리되자 시청 로비를 막고 있던 전경들이 빠져나가려 했다. 이것을 본 김헌정은 순식간에 시청 로비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조합원들도 뒤따랐다.

수원남부경찰서장이 중재를 서서 조합원들은 로비 밖으로 나왔다. 김헌정은 사과를 요구했다. 수원시 자치행정국장은 로비에서 농성하던 간부들을 끌어내고 천막을 강제로 철거한 것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히고 다음 날 교섭을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다음 날 오후 3시 30분 수원시청에서 교섭 중이던 이미숙 조직국장은 수원시청에 경찰병력이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다. 이 국장은 잠시 교섭을 중단하고 경찰 철수를 요구하기 위해 시청에서 내려왔는데 경찰은 이 국장을 연행해 버렸다. 이광희 교섭위원은 지하주차장에서 연행됐다.

이미숙 국장과 이광희 교섭위원이 연행됐다는 것을 안 조합원들은 두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후문과 서문으로 나뉘어 밖으로 나가는 경찰차들을 막았다. 다급했던 조합원들은 아예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경찰들은 조합원 8명을 봉고차에 실어서 연행했다.

한편 이날 오후 6시 15분 사복경찰 수십 명이 고양의 경기도노조 사무실로 쳐들어와서 김헌정을 찾았다. 사무실 바깥에서 나는 경찰차 소리를 들은 김헌정은 건물 지하에 있던 사우나로 재빨리 피했으나 20분 만에 경찰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김헌정은 수원남부경찰서로 이송됐고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은 경찰서 앞으로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여보, 나는 당신이 필요해!”

나의 구속 소식을 듣고 아내가 경찰서로 왔다. 나는 몸이 아파서 조사를 받지 못한다고 버티고 있었다. 아내도 거들었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가슴에 통증이 있다는데 병원부터 데려가야 한다고 펄펄 뛰었다. 형사들은 혹시라도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병원에 가자고 했다.

아내는 그때 보건의료노조 조직부국장으로 있었는데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아주대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가슴에 압박감이 느껴져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사진상으로 뭐가 보인다고 해서 아내와 간호사들이 긴장하는 눈치였다. 좀 있더니 의사가 폐기종이라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한테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라고 했다. 의사는 담배를 끊으라며 돌아섰다.

진짜 아픈 사람은 아내다. 얼마 전 자궁근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 달 휴직계를 내고 치료 중이었다. 조합원인 간호사들과 상의해서 수술을 받지 않고 민족의학 서울생활관에서 단식과 풍욕을 배워 치료하는 중이었다. 간호사들이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는데 내가 뭐라 할 계제는 아니었고 그 치료법에 대해 나 역시 관심과 기대가 있었다.

내 바람은 아내가 건강을 되찾는 것이지만 이것 말고도 아내에게 바라는 게 있다. 그 당시 아내는 나에게 화가 나 있었다.

2000년 1월 경기도노조를 만들 때 아내는 민주노총 경기북부지구협의회나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동지들에게 알리고 공개적으로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면 구리환경미화원노조도 경기도노조에 가입시킬 수 있다는 거였다. 구리환경미화원노조가 단협을 체결할 때 자신이 지원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그리고 내가 계획했던 대로 의정부 환경미화원들로만 경기도노조를 출범시켰다.

아내에게 이 사건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스무 살부터 함께 활동했지만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 사람은 늘 나였다. 아내는 보조하고 동조하는 것으로 그친다는 게 불만이었는데 그것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쌓였다. 실은 그래서 아내는 나와는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고 보건의료노조로 갔던 것이다.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부부가 한 지역에서 그것도 남편은 노조위원장으로, 아내는 민주노총 지역 간부로 일하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게다가 경기도노조는 중앙집중제로 유명하니 자칫 ‘패밀리 비즈니스’로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내심 찔리는 구석이 있던 나는 노동운동가로서 자신의 실력을 쌓기를 바라면서 아내의 결심을 말리지 않았다. 노동운동의 변방에 머물렀던 우리였는데 아내가 보건의료노조라는 큰 중앙무대로 진출한다는 점에서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러나 아내가 자신의 일에 열과 성을 다할수록 나와는 거리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경기도노조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는 나보다 아내는 더했다. 지방 사업장 출장에다 경희대 파업 지원이다 하면서 일주일씩 보름씩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나는 아내에게 심통을 부렸다.

“당신이 보건의료노조 임원이야? 위원장인 나도 집에 들어와서 애들을 본다구!”

이런 내 말을 아내는 들은 척 만 척했다. 아니 말 안 통하는 남편 보듯이 대했다.

나는 아내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하다. 정말 절실하다. 경기도노조가 커지면서 일이 많아지고 손이 부족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내 머리와 마음이 복잡하다.

최근 내 고민은 우리 노조가 양적으로는 커졌지만 질적으로 발전한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직이 성장했다는 데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우리 노조는 의정부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조직하고 투쟁했다. 조합원이 많아지면서 연대와 교육으로 노동자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간부나 조합원들은 여전히 경제적 관점에서 노조를 활용하는 것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오십대 이상 조합원들은 의리파다. 하지만 30∼40대 일부 간부들의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그들의 맨 얼굴을 보는 것이 괴롭다. 내가 구속이 되자 일부 간부들이 속내를 드러내는 모양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포장을 하겠지만 결국은 우리 노조가 조합비를 많이 걷고, 연대투쟁을 많이 한다는 점이 불만일 거다. 그러나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우리 노조는 홍희덕 사무처장님을 중심으로 한 나이 든 간부들이 중심을 확실히 잡고 있다. 그런데 나천봉 부위원장님은 좀 염려됐다. 면회를 와서 “우리 노조는 만날 위원장 석방투쟁만 한다”고 푸념했다.

일부 간부들이 기업별 노조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한 조직인 노조의 원천적 한계이기도 하다.

민주노총도 금속·보건·철도·전교조 등 모두가 분산돼 조직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효과적으로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단병호 위원장이 노사정위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언론에 드러냈던데 그의 판단이 나와는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조직력이 없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들어간다고 해도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위안이 될 지경이었다.

나 스스로도 느낀다. 최근 들어 내 감정의 한가운데 냉소가 크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 역시 초심을 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옥살이는 명분도 없는 데다 예상치도 않았고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서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강문대 변호사에게 빨리 석방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 의중이 전달됐는지 노조는 김금수 노사정위원장을 비롯해서 명망 있는 노동계 분들에게서 탄원서를 받는다고 했다. 고맙지만 마음은 더 무겁다.

이미숙 국장과 수원분회 조합원들은 내 석방을 위해 수원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내게 걸린 죄목 가운데 공무방해치상이 있다. 구속되기 전날 내가 수원시청 총무계장의 멱살을 잡고 조합원들에게 사과하라고 한 일 때문에 생긴 것이다. 안양에서 단체교섭 중 얄미운 공무원과 실랑이를 벌인 건도 붙어 있다.

수원시는 총무계장에게 나의 선처를 바란다는 합의서를 쓰게 할 테니 노조에서도 양보를 하라고 제안했다. 수원시도 이런 문제로 법원을 오가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부담이 됐던 것 같다.

이미숙 국장과 수원분회 조합원들은 내 석방을 위해 이번 단협에는 민간위탁 관련 문구를 아예 넣지 않는 것으로 수원시와 합의를 했다. ‘민간위탁시 노조와 협의한다’는 문구가 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단협 갱신 때 싸워서 따내면 된다. 하지만 달갑지는 않았다. 의정부 투쟁으로 구속됐을 때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다.

지난번에는 조합원들에게 파업투쟁의 의미를 한 번이라도 더 전하기 위해 법정투쟁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법의 절차라는 것도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몸도 마음도 편치 않은 내 상태를 아내라고 해서 척척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툭탁거리면서도 늘 같이 일하던 아내가 없으니 불안했다. 내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불편했다.

조합원들의 주름진 얼굴과 손을 보면서 겨우 마음을 가다듬는다. 수원의 김영철 분회장님과 강병월 조합원님은 보석이든 뭐든 나를 석방시켜 달라는 탄원서를 썼다. 다른 간부들도 썼다. 김영철 분회장님은 당신께서 공무원들에게 두들겨 맞았고, 그래서 내가 항의를 하다가 구속이 됐으니 자신 때문인 것 같다고 제발 나를 빨리 풀어 달라고 하셨다.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 위원장 석방시키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생각하면 속상하다.

지금도 조합원들은 여름 불볕더위도 마다않고 구치소 앞에서 위원장 석방투쟁을 하고 면회투쟁 중이다. 내가 그분들에게 알려 드린 것은 노동조합뿐인데 이것으로 그분들은 앞으로 얼마나 힘든 길을 걸어야 할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 옥살이는 나 혼자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행된 조합원들은 풀려났고 이미숙 조직국장과 수원분회 이광희 교섭위원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내게는 집시법 위반, 공무방해치상 등의 죄목이 붙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2000년 구속으로 받은 집행유예기간이 2003년 4월 30일로 끝났다.

노조와 강문대 변호사가 열심히 뛰고 있으니 판검사들 휴가기간에 걸리지 않으면 7월 중으로 석방이 될 것 같은데 그동안 휴식이라고 생각하고 건강이나 돌볼 참이다. 치질이 말썽이다. 홍희덕 사무처장님은 석방되면 바로 병원으로 가자고 하신다. 아무래도 따라가야 할 것 같다.

아내는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보다. 두 달 휴직기간을 다 채우고 출근을 하는 모양이다. 편지를 집이 아니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로 보내 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주 동국대병원에서 파업을 한다고 아예 짐을 한 보따리 싸서 경주로 간다고 했다.

아내는 나와 일을 하지 않으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내게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내는 조직부장으로 채용돼 6개월 만에 조직부국장으로 승진했다. 경기도노조보다 훨씬 조직이 큰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내의 승진이 반갑지 않았다. 노조가 우리 삶의 전부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되겠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노조활동을 하려면 아내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데 아내는 내가 남편으로서도 동지로서도 필요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한 번은 하도 화가 나서 아내에게 별거하자는 소리까지 했다. 그런데 아내는 “별거는 왜? 이혼을 하자!”고 되받아쳤다. 이런 말싸움과 각자의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 사이는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

작가 박미경
<계속 이어짐>

박미경 작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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