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중단으로 철도 민영화 논란이 잠시 주춤한 사이 의료 민영화 논란이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3일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서비스 규제완화를 신속히 이행하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정부 정책을 두고 민영화냐 영리화냐 논란이 있지만 의료법인이 영리사업에 나서고 의사가 수익창출에 내몰리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건강보험제도가 흔들릴 것으로 우려된다.

의사협회는 3월3일 총파업을 예고했고 보건의료노조는 의료 민영화 저지 6월 총파업을 결의했다. 시민사회 역시 100만인 서명운동·1인 시위 등 반대행동에 나섰다. 박근혜 정권은 “의료 민영화가 아니다”라며 국민의 이해를 구할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의료 민영화 논란에서도 사회적 대화는 실종된 듯 하다.

진단도 처방도 엉터리 ‘의료 민영화’ 정책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보건의료정책을 두고 의료 민영화냐 아니냐 논란이 많지만, 영리자본이 보건의료분야에 투입되느냐 안 되느냐가 핵심이다.

영리자본이 투자하고 이윤을 배당받을 수 있는 영리자회사를 허용하는 것, 영리자회사가 의료기기와 의료용품·건강식품·화장품 등을 생산·판매하고 호텔업·숙박업·헬스사업·여행업·해외환자유치업 등 환자를 대상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부대사업 영역을 대폭 확장하는 것, 영리자본이 더 집중적인 자본투자와 이윤추구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것, 법인약국 형태로 영리자본의 투입을 허용하는 것.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 민영화·의료 영리화 정책의 핵심내용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두고 기본권이나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영리자본의 투자처로 접근하는 것이다.

뒤틀리고 왜곡된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보건의료분야에 영리자본의 투자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1-2-3차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고, 의료기관 간 치열한 경쟁과 양극화를 해결하며, 저부담-저보장-저수가의 악순환체계를 적정부담-적정보장-적정수가의 선순환체계로 바꿔야 한다.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고, 국민들에게 대재앙을 안겨주는 의료 민영화 정책은 진단도 처방도 엉터리인 최악의 정책이다.

영리자본이 보건의료분야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길이 열리느냐, 막아내느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서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범국민적 투쟁만이 우리나라 의료를 바로 세우는 해결통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도 환자 진료 대신 돈벌이에 내몰릴 것 

방상혁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
(비대위 간사)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의료 민영화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도 반대한다. 그런데 이미 의료기관 중 90% 이상이 민간인 상황에서 의료 영리·상업화가 맞는 표현이다. 현재 진료비 원가 중 75% 정도가 수가로 지급된다. 정상적인 운영으로는 의료기관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의료기관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진료 이외의 곳에서 수익수단을 찾으라는 얘기다. 언뜻 의사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를 허용하면 의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에 혼란이 생긴다. 예컨대 의사들이 환자 진료에 집중하는 대신 자회사의 건강식품·의료호텔 서비스를 판매하라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진료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진료 외 수익을 만드는 데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학생수업에 열을 올려야 하는 교사들에게 교복·학용품을 판매하도록 하도록 맡기는 것과 같다.

원격의료 허용도 마찬가지다. 이는 문진·청진·촉진·타진으로 이뤄지는 환자 진료체계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당뇨·고혈압이 무서운 이유는 뇌졸중 등 합병증 때문인데 원격의료로는 이를 잡아낼 수 없다. 합병증의 급격한 증가 등으로 국민건강이 위험에 처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의료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중대한 정책을 추진하며 의사협회 등 전문가 집단이나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오로지 경제 관료의 손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한다. 의사협회가 정부의 보건의료서비스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투쟁을 결의한 이유도 이와 같다.

영리화 아닌 민영화, 파업투쟁으로 막아내야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일부 진보언론과 민주당이 의료 민영화가 아닌 영리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우리나라 병원에 민간병원이 많기는 하지만 현재는 영리사업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규제 포기는 고용 불안정을 부르고 건강보험제도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민영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영어에도 영리화라는 표현은 없다. 유사한 것이 있지만 학문적으로 민영화의 하위 범주에 속한다.

정부는 공론화 과정 없이 밀어붙이기 위해 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을 통해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홍보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앞서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처럼 전국적인 대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각 지역별로도 대책위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파업투쟁이 불가피하다. 시민들의 촛불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철도에 이어 의료까지 민영화된다면 그 피해는 실로 막대하다.

병원과 건강보험공단 노동자, 그리고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나서야 한다. 병원의 경영난 해결을 위해 영리사업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11조원이나 되는 건강보험 흑자분을 이용해 민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을 알려 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서민들이 부담 없이 병원을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점을 강조해야 된다. 이런 것들을 알려내면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면,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철도파업보다 더 큰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의료 민영화는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는 돈놀이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근혜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국민의 의견을 괴담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면 자회사의 영리추구 때문에 환자의 의료비가 상승할 것이고, 법인약국 설립을 허용해 주면 대형 프랜차이즈 약국이 약국시장을 독점해 약가 담합을 초래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대자본이 의료영역을 지배할 구조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데, 이것이 의료 민영화가 아니면 무엇일까. 의료는 공공재이고 국민의 것이다. 이 의료를 두고 정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 매일같이 새로운 규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 봐도 의료 민영화 시도가 명확하다는 확신이 생긴다. 보건의료 분야는 ‘공공의료 중심의 무상의료 실현’이라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15일 ‘의료민영화 저지! 공공의료 실현! 통합진보당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앞으로 설명회·서명운동 등 전국적인 의료 민영화 저지 활동을 벌여 나갈 것이다. 의료 민영화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는 돈놀이다. 의료 민영화와 의료 영리화를 반대하는 모든 단체·세력과 연대해 반드시 막아내겠다.

의료기관 이윤 극대화로 건강보험 보장성 약화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병원의 비중이 턱없이 낮고 민간병원이 비중이 높아 이미 민영화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단일보험인 건강보험을 통해 어느 정도 공공적 통제가 이뤄져 왔다.

정부가 내놓은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은 현재 민간이 소유한 병원들이 더 영리적인 목적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는 데 문제가 있다. 병원들이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각종 시술을 늘린 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이런 시술들을 권하지 않겠는가. 이번 대책이 민간보험의 활성화 방안을 노골적으로 담지는 않았어도, 결국 건강보험 보장성이 약화로 귀결될 것이다.

명칭 자체가 투자활성화대책 아닌가. 투자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윤을 원한다. 정부는 여러 안전장치를 둬 의료법인 자회사의 수익이 다시 의료법인을 위해 쓰이도록 하겠다지만, 자회사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영리적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강요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들은 최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한 상태다. 조만간 서명운동을 위한 온라인 홈페이지를 개설해 국민들에게 의료 민영화의 실태를 알려나갈 계획이다. 정부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국회 입법이 아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개정의 방식으로 이번 대책을 밀어붙일 경우, 이에 맞서 법적 대응 등을 모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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