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세상엔 참 다양한 부류의 얄미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각자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거부감을 느끼는 유형이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얄미운 사람은 본인이 책임져야 할 사안에 대해 제3자를 내세워 갈등을 조장하고, 정작 책임의 주체인 본인은 쏙 빠진 상태에서 고고하게 옆에서 훈계를 하고 있는 부류가 아닐까 싶다.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싸우고 있는데, 옆에서 점잔 빼 가며 훈수를 두고 있으니 이 얼마나 볼살을 세게 꼬집어 주고 싶은 상황이란 말인가. 비록 얄밉다는 단어로 순화해서 표현했지만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런 사람들은 사실 비겁하다고 할 수 있다. 본인이 해당 사안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정작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은 비겁하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린다. 그런데 이러한 얄밉고 비겁한 행동이 원·하청 관계와 하청업체 노사관계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인천공항의 경우가 그렇다.

비록 철도파업 등 굵직굵직한 이슈에 가려 많이 주목받지는 못했으나, 불과 1개월 전인 지난달 인천공항 내의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은 개항 이래 최초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측에서 요구한 사항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수의 비정규직노조들이 주장해 왔고, 앞으로도 주장할 그런 내용들이다.

고용안정·임금인상·교통비 인상·교대제 개편을 위한 TFT 구성, 노조 인정, 정규직화를 위한 대화테이블 등 많이 들어본 그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많이 들어본 익숙한 이런 쟁점들이 해결이 잘 안 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 나서지 않고 뒤에서 훈수만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7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우원식·홍종학·진선미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노조 없는 인천공항을 만들기 위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시나리오를 짜고 그 계획에 맞춰 노조파괴 공작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고 밝혔다. 원청인 공사가 하청업체 소속 소장들을 모아 놓고 ‘소장단 회의’를 열어 6단계 노조파괴 방안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파악한 사측의 노조파괴 방안을 보자.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고(1단계), 공사가 쟁의 주도 조합원 교체 요구(2단계)를 한 후, 협력업체가 교체 대상자를 해고(3단계)하고, 소송 제기시 지연전으로 대응(4단계)한 뒤, 잔여 조합원 탈퇴를 유도(5단계)해 노조파괴(종결)가 이뤄지도록 설계돼 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업체에 불과하기에 하청업체 노조와 단체교섭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공사가 하청업체 노조탄압을 지휘하는 모순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전면파업이 중단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파업기간 동안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하청업체에 지급되는 기성금에서 파업기간 임금을 제외한 것이다. 적법·위법 여부를 떠나 교섭개시 시점부터 파업중단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사는 공식석상에서 단 한 번도 본 사안과 관련한 스스로의 책임과 의무를 인정한 바가 없다. 공사측과 개인적으로 접촉해 본 적은 없으나, 만약 왜 직접 나서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쩐지 ‘법과 원칙’에 의해 나서지 않는 것이라는 답변을 할 것만 같다. 적어도 필자의 경험으로는 노사관계에서 ‘법과 원칙’이란 그런 곳에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책임져야 할 주체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니 정작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힘없는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이다. 하청업체는 본인들이 실질적 결정권도 가지지 못하는 근로조건 등을 이유로 노조의 파업을 감내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개항 이래 최초로 파업까지 진행했음에도 아직까지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조 핵심간부들은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태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인천공항 내에서 단식농성을 진행 중이다.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으로 조합원 왕따 논란까지 발생하며 노노갈등에 휩싸여 있다. 모든 원인은 공사가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훈수만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이라 할지라도 실질적 지배력·영향력을 미치는 범위 내에서는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고, 노동법 학계의 통설이다. 원청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하청업체의 노사관계에 직접적·구체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스스로 노조법상 사용자의 지위에 있음을 자백하고 있다. 공사는 비겁하게 하청 노사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전면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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