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식 변호사
(법무법인 공간)

판결대상 / 대법원 2011다60247 손해배상(산)

1. 본 사안의 개요

피고 ○○산업 주식회사(갑회사)는 상시인원 735명을 고용해 자동차 및 장비시설용 부품을 제조·판매하는 회사다. 피고 주식회사 ○○이엔비(을회사)는 근로자파견사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가 2006년 3월1일 소멸된 회사다. 을회사는 2005년 11월9일 원고를 고용해 갑회사에 파견했다. 원고는 갑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그 회사가 제공하는 설비·재료 등을 이용해 사출작업을 했다. 2005년 11월15일 플라스틱 사출기로 제품 가류작업을 사던 중 하금형에 이물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출기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이를 제거하려다 오른팔·손목 등이 상·하금형 사이에 압착돼 오른쪽 전완부 수부압궤상 등의 부상을 입었다. 그 당시 사출기는 안전장치가 있었음에도 고장이 난 상태였고 갑·을회사는 그 고장 여부도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데다 신입사원인 원고에게 이물질 제거 방법 등 안전교육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는 2009년 1월9일 갑·을회사를 공동피고로 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갑회사에 대한 청구를 기각한 채 을회사에 대해서만 약 1억2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원고는 갑회사도 자신에 대해 계약에 의한 안전보호의무를 부담하는데 갑회사가 이를 위반했으므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항소심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갑회사의 원고에 대한 계약상 책임을 인정했다.

2. 본 사안의 쟁점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근로자파견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근로파견관계에서 파견근로자는 파견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뿐, 사용사업주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이 파견근로자와 사용사업주 간에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파견근로자에 대한 보호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견법 제34조 이하에서는 사용사업주를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에서 사업주로 간주하는 등의 특례조항을 두고 있다.

본 사안에서 원고는 갑 회사에 대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민법 제750조)을 추궁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여지가 있으나, 소제기 당시인 2009년 1월9일 불법행위 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도과했기 때문에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항소심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하게 된 것이고, 파견근로자와 사용사업주인 갑회사 사이에 보호의무를 발생시키는 계약관계가 묵시적으로나마 존재하는지가 본 사안의 핵심쟁점이다. 다만 두 회사 간에 근로자파견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도급계약을 체결한 관계로, 도급과 파견의 구별도 주된 쟁점이나 여기에선 이 부분을 제외하기로 한다.

3. 본 판결의 요지

근로자파견관계에서 파견사업주는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용사업주와 근로자파견계약을 체결해 근로자를 파견하고, 이에 따라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되므로, 파견근로자가 파견근로 중에 직면하는 생명·신체·건강에 대한 위험은 대부분 사용사업주가 지배·관리하는 영역에서 발생한다. 파견법 제35조1항 본문에서 “파견 중인 근로자에 관해서는 사용사업주를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3호의 규정에 의한 사업주로 봐 동법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파견관계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에 따른 산업재해 예방 및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 유지·증진 등에 관한 의무를 원칙적으로 사용사업주에게 부과한 것이다.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의 생명·신체·건강에 대한 위험을 예방하고 파견근로자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 정한 형사적 또는 행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러한 점을 고려한 취지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근로자파견에서의 근로 및 지휘·명령 관계의 성격과 내용 등을 종합하면, 파견사업주가 고용한 근로자를 자신의 작업장에 파견받아 지휘·명령하며 자신을 위한 계속적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와 관련해 그 자신도 직접 파견근로자를 위한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함을 용인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파견사업주는 이를 전제로 사용사업주와 근로자파견계약을 체결하며, 파견근로자 역시 사용사업주가 이 같은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함을 전제로 사용사업주에게 근로를 제공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근로자파견관계에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 관한 묵시적인 의사의 합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사용사업주의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손해를 입은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와 직접고용 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에도 이 같은 묵시적 약정에 근거해 사용사업주에 대해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의 위반을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법리에 비춰 살펴보면, 갑회사가 을회사와의 근로자파견계약에 따라 작업장에 원고를 파견받아 사용사업주로서 지휘·감독하며 자신을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고 원고가 이를 받아들여 갑회사에 근로를 제공함에 따라, 원고와 갑회사 사이에는 원고의 파견근로와 관련해 갑회사가 원고에 대해 직접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 관한 묵시적 약정이 맺어졌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갑회사는 원고의 파견근로와 관련해 약정상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의 위반으로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4. 본 판결의 의의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에 대해 계약상 안전배려의무 또는 보호의무를 부담하는 법리 구성은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즉 ① 파견근로자와 파견사업주 사이에 고용관계를 긍정하면서도 현행 파견법이 파견근로자와 사용사업주 사이에 근로계약관계를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간접고용관계에서 주장돼 온 사용자확대이론을 적용해 양자 간의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 ② 양자 간의 부분적인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하는 견해 ③ 파견근로자에 대해 계약상 책임을 부담하는 자는 파견사업주로 한정하면서도 사용사업주의 파견근로자에 대한 부수적 의무로서 안전보호의무를 긍정하는 견해 ④ 계약의 체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제3자도 계약의 보호영역에 편입시켜 보호하는 이론인 ‘계약의 제3자 보호효’를 원용하는 견해 ⑤ 파견근로자와 파견사업주 간에만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해도 이 관계가 형식에 불과한 경우에는 파견근로자와 사용사업주 간의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 ⑥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각종 의무규정을 위반하면 근로자는 당해 사업주를 상대로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견해 ⑦ 사업주의 지휘·감독을 받아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발생한 경우 해당 사업주와 근로자 간에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양자 사이의 ‘특별한 사회적 접촉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 사업주는 근로자에 대해 안전보호의무를 부담한다는 견해 등이 주장되고 있다.(이 학설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전형배, “파견근로에서 사용사업주의 안전보호의무와 민사책임”, 노동법연구 제35호, 193면 이하 참조)

본 판결은 “갑회사가 을회사와의 근로자파견계약에 따라 그 작업장에 원고를 파견받아 사용사업주로서 지휘·감독하며 자신을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고 원고가 이를 받아들여 갑회사에 근로를 제공함에 따라, 원고와 갑회사 사이에는 원고의 파견근로와 관련해 갑회사가 원고에 대해 직접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 관한 묵시적 약정이 맺어졌다고 할 것”이라며 갑회사와 원고 사이에 묵시적 계약에 의한 보호의무가 성립한다고 명확하게 판시했다.

이는 ⑤의 견해와도 다른 법리 구성인데 ⑤는 파견사업주가 그 사업주로서의 실체가 없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이론임에 비해 본 판결은 근로자파견관계의 본질, 즉 파견근로자는 파견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만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돼, 파견근로 중에 직면하는 생명·신체·건강에 대한 위험은 대부분 사용사업주가 지배·관리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관계에서 사용사업주의 파견근로자에 대한 묵시적인 계약에 의한 보호의무를 도출한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향후 파견근로자를 법적으로 보다 보호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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