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철도와 의료에서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지만 그래도 정부 말을 믿어 보자. 정부에 따르면 철도공사 자회사인 수서고속철도 지분은 민간에 매각되지 않고, 의료기관 자회사는 의료행위를 제외한 부분에서만 영리행위를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건 민영화가 아니라 내부경쟁을 통한 경영 효율성 향상이라는 입장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최소화해 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 약속이 그대로 지켜진다 해도 시민들의 피해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들 자회사들이 어떻게 경영될지 구체적으로 예상해 보자.

의료 자회사를 보자. 정부 이야기대로라면 의료기관 자회사는 의료기기·의약품 도소매부터 주차장·장례식장 등 병원 내 각종 편의시설 운영까지 의료 부대사업 수익을 목표로 사업을 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1년에 의학연구용역·임대료·주차장 등 의료 부대사업으로 185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이러한 이익을 가지고 의료부문 적자를 메운다. 정부 정책에 따르면 민간자본과 합작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해당 사업을 병원 외부로 가져갈 수 있다. 물론 그만큼 환자들이 부담해야 할 의료비는 늘어난다. 수익이 100% 외부로 나간다고 가정하면, 서울대병원을 이용하는 연 275만명의 환자들은 진료당 7천원의 의료비를 추가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외래진료 환자 평균 병원비가 14만4천원이니까 병원비가 5% 인상되는 셈이다.

서울대병원이 좀 더 크게 사업을 벌인다면 의약품 도매업 자회사를 차릴 수도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이미 연세재단을 통해 안연케어라는 의약품 도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의약품 도매업은 미국의 투기자본이 이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이다. 한국 최대 의약품 도매업체인 지오영은 골드만삭스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정부의 규제완화로 이런 의약품 도매업체를 민간자본과 합작해 자회사로 거느린다면 연 2천500억원 규모 서울대병원의 의료재료 공급을 독점할 수 있다. 지오영의 매출총이익률 5%를 감안하면 통행세로만 130억원을 매년 버는 것이다. 의약품 납품시장은 매년 대형 비리사건이 터지는 불투명한 시장이다. 즉 병원이 자회사로 이익을 몰아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의약품 재료비 단가를 높일 수 있다. 만약 자회사 이익분이 환자들에게 병원비로 전가된다면 꽤 높은 병원비 인상이 이뤄질 수도 있다.

대형 민간병원은 영리 목적 자회사가 허용된다면 그야말로 돈잔치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산병원은 의료 부대수입이 1천500억원에 이르고, 이익이 400억원이나 된다. 사업을 통째로 자회사로 이전하면 수익률 24%의 초고수익 기업을 만들 수 있다. 딱히 경쟁이나 영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버는 셈이다. 아산병원은 이런 부대수익 외에도 700억원에 가까운 의료이익을 남기고 있는데, 자회사가 허용되면 자회사로 이익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수익의 외부유출을 규제하는 의료법을 무력화할 수 있다. 당장 연 5천억원에 달하는 의료재료들을 자회사를 통해 납품받으며 중간 수수료만 떼도 300억~400억원을 자회사로 빼낼 수 있다. 이처럼 통행세를 받는 자회사 설립은 재벌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병원의 수익이 외부로 빠져나가면 당연히 공공성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말대로 의료 자회사의 영리사업 대상에서 의료행위가 제외되더라도 사실상 의료사업의 민영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철도 자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지분을 정부가 가지고 있더라도 상법상 주식회사로 세워진 수서고속철도(주)는 다양한 방식으로 민영화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당장 철도공사의 자회사들만 봐도 그렇다. 철도를 이용한 관광사업을 목적으로 세워진 코레일관광개발(주)은 관광사업이 아니라 KTX·ITX·새마을호의 승무원 파견사업을 주된 사업으로 한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도공사의 기존 인력을 구조조정하고 간접고용하는 용도로 운영되고 있다. 코레일관광개발은 또 철도공사와 롯데관광개발의 밀월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용도로 이용된다. 롯데관광개발이 자회사 지분의 39%를 가지고 있다. 여행업이 주된 사업인 롯데관광개발은 이런 밀월관계를 배경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중심사업자로 선정돼 용산역세권개발(주)의 70% 지분을 획득했다. 철도 자회사가 재벌그룹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이용되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알짜노선을 운영해 쉽게 수익을 낼 것으로 보이는 수서고속철도는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재벌이나 초국적금융자본과 합작사를 세울 수도 있다. 지분 전체를 철도공사와 공공자금이 가지고 있더라도 수서고속철도가 민간자본과 합작사를 세워 다양한 수익성 사업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철도공사는 화물·정비 등을 분리해 별도 회사를 세운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수서고속철도가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서부발전은 알짜 발전소를 삼성물산·현대산업개발과 합작사로 세워 수천억원의 이익을 재벌들에게 안겨 주고 있다. 수서고속철도가 바라는 사업모델이 이런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정부 이야기를 전부 믿더라도 사실상 민영화라는 것이다. 자회사 설립 방식의 민영화는 정부가 민영화 반대여론을 비껴 가기 위해 부리는 꼼수에 불과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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