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1. 이런 날은 없었다. 노동운동이 하나로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 이런 날은 아마도 없었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을 언제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가물가물한 내게는 그렇다. 지난해 12월22일 민주노총에 공권력이 투입되자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을 선언하고서 내부의 정파조직을 초월해서 총파업을 조직하고 있다. 서울의 광장과 거리에서 민주노총이 주최한 집회와 시위에 수만의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전현직을 가리지 않고 하나로 민주노총을 침탈한 권력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달려가고 있다. 오는 22일 임원선거가 치러지는 한국노총도 예외는 아니다. 후보들은 공약에서 노조 탄압하는 정권에 맞선 투쟁을 내세우고 있다. 이미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항의해서 노정 대화를 단절한다고 밝혔다. 즉 공권력 투입 다음날 한국노총은 긴급 회원조합대표자회의를 열고 "이번 민주노총 침탈은 노동계에 대한 도발이다.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강력하게 요구하며 가시적인 정부의 반응이 나오기 전까지 모든 노정 대화 참여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12월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대회에 연대의 뜻으로 참석했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투쟁을 존재이유로 하는 노동자의 단체, 노동조합이 이렇게 투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 뭐 이상한 것이겠느냐마는 이런 날은 근래에 없었다. 모처럼 그 존재이유를 세우고 있는 오늘이다. 이런 투쟁의 날에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권력 앞에 선 노동운동을 바라보자. 권력에 맞선 투쟁으로 하나인 오늘 권력 앞에서 노동운동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보자.

2. 단순하다. 투쟁의 날인 오늘 단순하다. 국정원 댓글 선거부정으로 민주주의로 달려가더니 철도파업으로 민영화 반대로 몰려간다. 어제는 민주를 외치고 오늘은 공공성을 말한다. 민주와 공공성이 동의어는 아니다. 무엇이든 운동은 박근혜 정권 새누리당 반대로 단순하다. 그러니 이에 대응하는 권력의 기술도 단순하다. 뭐가 권력에 위험이 되면 다른 쪽을 두들겨 패면 된다. 민주의 구호가 위험하면 노동을 쥐어박으면 독재 타도가 노동탄압 중지로 운동이 돌변하니 권력의 기술은 단순하다. 대한민국에서 시민운동, 민중운동, 심지어 노동운동조차도 민주로 하나고 새누리당 정권 반대로 돌아간다. 독자적인 계급과 세력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무엇이라도 운동으로 하나다. 노동운동이라도 노동으로 독자적이지 못하다. 민중운동의 부분운동으로 스스로를 규정지으면서 활동하고 나아가 통 크게 민주운동에 복무해야 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강령목적으로 정해서 활동한다. 이렇게 단순한 이 나라에서 운동은 결정적인 순간에 언제나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철도파업처럼 불법파업이라며 형사처벌·징계·손배로 권력과 사용자의 공세 앞에 절체절명으로 맞서야 하는 순간에, 투쟁이 뭔가 정치적으로 향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노동운동은 어김없이 야당 민주의 당으로 달려가 호소한다. 그 순간에 민주의 당 지지자가 내 편이라고 민주로 하나라고 승리의 환호를 질러댄다. 우리는 민주의 당의 아류다. 무슨 진보의 당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평소 아무리 민주의 당을 비난해도 결정적인 순간 대권을 두고서 그렇다. 우리의 운동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일부고 노동운동이 아무리 노동을 외치며 노동자투쟁으로 달려왔다 해도 아류에 머물러 왔다. 우리가, 노동운동이 이런데 무슨 노동자 정치세력화니 진보의 당이니 민주로부터 독자적인 정치운동을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우리의 머리는 노동에 머물고 있지 않다. 우리의 몸은 민주의 언저리에서 떠돈다.

3. 그러니 민주의 당이 집권하면 노동운동은 분열이다. 여전히 어제의 권력 새누리당 반대로 새로운 권력자 민주의 당과 함께해야 한다고 권력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참여한다고 심란한 논란으로 쪼개진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갈라지든, 노동운동의 제 정파조직으로 편을 가르든 민주의 당이 차지할 권력을 두고서는 노동운동은 하나일 수가 없다. 분명히 새누리당 권력에 반대하는 데서 하나였던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 누구도 민주의 당이 노동의 당이라고 감히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누구는 지금은 민주의 당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누구는 민주를 공고히 할 때라고 고민하고 노동을 위한 현실적인 선택을 행동한다. 김대중 정권에서도, 노무현 정권에서도 그랬다. 앞으로 올 민주의 당 정권에서는 더 그럴 거라고 지금 그리고 있다. 그것이 안철수의 당이든 민주당이든 뭐든 이 나라 노동운동은 그런 길을 갈 것이라고 그리고 있는 2014년 1월이다. 그러나 민주의 당의 권력 안에서 찾는 노동의 길은 좁고 막다른 길이다. 권력의 밖에서 그 길은 넓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뻗쳐 있는 것으로 보이던 노동의 길은 갑자기 민주의 당의 권력의 길에서 장애물로 다가온다. 이미 잊혀진 1997년부터 10년간 민주당 정권의 시간은 권력과 노동의 불화의 10년이었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의 길은 민주당의 권력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민주당의 권력 안에서 찾고자 했던 노동의 길은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앞으로 올 민주의 당 시대에도 그대로 재연될 것이다. 노동운동은 권력의 길을 두고서 분열하고 끝내는 노동의 길을 잊든지 아니면 그 길을 다시 찾아 헤맬 것이다.

4. 권력은 인민을 자신의 영토로 한다. 인민은 권력에 복종하는 자다. 권력 앞에서 노동자든 뭐든 인민으로 복종한다. 징세로 재정을 마련하고 징병으로 무장하고 무엇보다도 인민을 위한다는 통치로 권력은 날마다 강화된다. 대한민국 권력은 대한민국에서 인민을 국민으로 해서 존립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2항)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헌법 제1조1항)은 결단의 주체이든 통합의 대상이든 인민을 국민으로 해서 존립해 나간다. 노동자든 사용자든, 노동이든 자본이든, 그리고 노동조합이든 기업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대한민국에서 모두 권력의 영토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행사방법을 두고서 보수의 당과 민주의 당이라고 스스로를 내세우며 교대로 권력을 차지해 왔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상대당을 비난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이런 당들이 국민의 표를 모아 권력을 차지하고 행사해 왔다. 노동은 없다. 그 권력 쟁탈전 앞에서 국가 안녕이든 민주든 뭐든 줄을 서고 줄 세우는 자들에게 노동은 없다. 노동은 그저 그들이 확보해야 할 노동자표를 말할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노동은 자신의 영토가 없다. 현재 권력에 대한 반대투쟁은 그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고서 다음을 노리는 당의 집권으로 달려간다. 노동은 스스로의 영토가 없고 오히려 그들의 영토로 존재하니 오늘은 이래서 지지하고 내일은 저래서 표를 준다.

5. 노동운동이 자신의 세상을 그리고자 한다면 권력 앞에서 스스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영토를 분명히 경계지을 수 있어야 한다. 식민이라도 노동이 스스로 권력 그리고 자본과의 경계를 볼 수 있다면 노동운동은 자신의 세상을 꿈꿀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권력 앞에서 스스로를 분별할 수 없다면 노동운동은 자신의 세상을 그릴 수 없고 거기서 노동은 권력 쟁탈전의 승자가 차지하게 될 영토일 뿐이다. 작은 것이라도 노동운동은 권력 앞에서 노동을 자신의 영토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오늘 투쟁의 날에, 이 나라 노동운동이 정권 퇴진투쟁을 선언하고 총파업으로 달려나가는 이 투쟁의 날에 스스로 노동을 경계짓고 가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박근혜 정권 새누리당 반대로 달려 나가는 민주의 당과는 어떻게 노동의 영토를 경계 짓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지금 노동운동이 노동으로 경계 짓지 못하다면 투쟁의 태양이 아무리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해도 거기서 투쟁으로 함께인 우리는 노동으로 하나는 아니다. 그 태양에 노동의 시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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