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피터 샌드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투자자의 날’ 행사에서 “한국 지점의 25%를 줄여 250개만 남겨 둘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점 100개를 줄이겠다는 영국 본사의 기침소리에 한국 SC은행은 뒤집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점포폐쇄 작업이 조용하게 진행됐다. 임대기간이 만료되는 지점을 출장소로 격하시키고, 은밀하게 통폐합 지점을 만드는 방식이다. 지난달에는 10만3천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검찰 수사 결과 SC은행 IT센터 외주업체 직원이 USB에 담아 무려 5차례에 걸쳐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경영 상황이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SC은행 본사에서 만난 서성학(47·사진)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 위원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서 위원장은 “SC가 한국에 들어와 8년 동안 돈 되는 영업만 하다 보니까 고객한테 외면을 당했다”며 “단기업적주의가 독약인지 마약인지도 모르고 먹다가 총체적인 부실경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유출도 같은 맥락으로 봤다. 점포폐쇄와 IT업무 외주화가 은행의 ‘축소 일방적인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상황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서 위원장은 “64일 동안 파업을 벌였던 2011년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점포 축소와 관련한 교섭은 교착 상태다. 더군다나 은행은 임금·단체협상에서 지점장 자살을 초래할 정도로 악명 높은 차등적 성과급제 확대와 후선발령제도·성과향상프로그램(PIP·Performance Improvement Plan)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서 위원장은 “2011년 파업에 들어갈 때 은행이 내걸었던 요구”라며 “사람(은행)이 다 죽어 가는 마당에 근본적인 염증을 제거할 항생제를 처방하는 게 아니라 이상한 진단으로 애먼 직원들만 옥죄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위원장은 단기 업적주의·축소 일방적 정책과 더불어 총체적 부실경영의 원인으로 매트릭스 제도를 꼽는다. 영업그룹·리스크관리그룹·IT그룹·인사그룹처럼 그룹별로 업무를 따로 추진하고 성과평가를 받는 방식이어서 통섭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매트릭스 조직을 해체하지 않으면 한국만의 독자적인 영업을 할 수가 없다”며 “자기 라인만 잘되면 그만이니까 책임은 전가하고 실적만 부풀리는 경영을 한다”고 비판했다.

지부가 SC 본사에 "한국에서 영업에 실패한 원인은 매트릭스 조직 때문이며 점포폐쇄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 위원장은 고객정보유출 문제와 관련해서는 IT총괄 부행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상품개발 역할을 하는 IT는 은행 비즈니스와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직원들을 흔들면 개발도, 아이디어도 창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SC은행의 IT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고객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IT총괄 부행장이 휴가시즌이라며 휴가를 갔어요. 은행과 직원들을 버리고 간 겁니다. 그것도 직원 15명을 영업점으로 발령하겠다고 통보하면서 말입니다. 구조조정 시도인데, 노사합의 위반입니다. 특수 직종이라서 일정 비율의 인원을 유지해야 합니다. 당연히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죠. 전산부 직원들은 거리로 내몰고, 남아 있는 직원들 밤낮 없이 야근시키고…. 그러면서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포장만 하는 사람을 일벌백계로 다스리지 않으면 은행의 정체성이 무너집니다.”

노조의 투쟁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고객정보 유출사건과 관련해 IT총괄 부행장 사퇴와 IT 외주화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한 침묵시위와 피케팅은 본점 안에서 밖으로, 소규모에서 대규모로 확장되고 있다.

이달 24일에는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연다. 서 위원장은 "지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음달 19일께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지원에 인색하면서 고객만 유치하라고 직원들한테 목표를 높게 제시하고, 못하면 징계로 채찍을 내려칩니다. 벼랑 끝에 선 SC은행의 현주소죠. 지부가 실종된 경영책임을 묻는 투쟁을 하고 있는데요. 실제로는 은행 살리기 투쟁을 하는 겁니다. 현재 경영진은 오합지졸이에요. 매트릭스 헤드들이 단결해서 은행을 어떻게 살릴지 궁리해야 하는데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바르게 가는 경영진도 일부 있지만 전반적으로 모래성 같아요. 물결이 조금만 들어오면 다 무너질 겁니다. 경영진은 힘든 시기를 뚫고 지나가기 위해서라도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일어서고 뭉쳐서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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