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독서는 위대한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며, 내 인생의 멘토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김윤주(66·사진) 군포시장이 건넨 명함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경북 예천 시골마을 출신인 김 시장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7남매의 맏이인 그는 궁핍한 가정형편 탓에 일찍 학업을 포기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웃에 사는 친척이 운영하는 조그만 책방에서 일하며 손에 잡히는 책이란 책은 가리지 않고 독파했다. 그가 군포시장이 되고 나서 '책 읽는 도시'를 제1의 시정목표로 내세운 이유다.

군포를 특색 있는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목표도 있었지만 김 시장이 유독 책에 관심을 쏟는 것은 그의 아날로그 기질도 한몫했다. 김 시장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손쉬운 정보접근, 시험을 치기 위한 교육만 받는 현실은 인간을 사람이 아닌 기계로 만들고 있다"며 "내면을 채울 수 있는 독서를 통해 군포시를 인간냄새 나는 공동체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독서 전도사'를 자처하는 김 시장은 사실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범양냉방노조 위원장을 하다 한국노총 경기중부지역지부 의장을 지냈다. 한국노총 중앙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우연치 않은 계기로 98년 민선 2기 군포시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됐고, 2002년 지방선거에서 연임 시장이 됐다. 이후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뒤 2010년 군포시장 3선에 성공했다. 노동계 출신 기초단체장 중 최장기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30일 오후 군포시청 시장실에서 김 시장을 만났다.

"책 읽는 도시, 인간냄새 나는 공동체"

- 시청 본관 1층에 대출이 가능한 도서관이 있는 게 인상적이다. 2010년 군포시장에 당선된 뒤 시정목표를 책 읽는 도시로 내세웠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리나라 교육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시험을 잘 치기 위한 교육만 시킨다. 교과서 대신 문제집으로 수업을 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시험 치는 기계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돼 버렸다. 정보접근이 손쉬워진 반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에 대한 필요성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인간냄새가 사라지고 있다. 책에서는 누구나 만날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면을 채워 나간다. 적어도 군포만큼은 무조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관련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책으로 소통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인간냄새 나는 군포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직생활을 돌아본다면.

"보람으로 살아왔다. 시장이라는 위치는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경청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내가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일 뿐인데도 그런 행동이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는 것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1년 내내 베풀고 살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은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선정한 전국 시 단위 종합청렴도 조사에서 군포시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1등급에 선정됐다.

사실 시장을 하면서 아픔이 많았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의 경우 비난이 제기되고, 시장 개인에 대한 흠집 내기가 종종 벌어진다. 시민들이 진정성을 믿어 주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다. 그럴 경우 공식적인 평가와 분석·집행을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 얼마 전 제1회 한국의 최고경영인상 윤리경영 대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공직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시민들이 호응을 해 주고 인정해 줬기 때문이다. 여러 평가를 통해서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장 개인이 잘해서 윤리경영 대상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정 운영에 변화는 없나.

"현재로서는 민선 5기 임기를 어떻게 잘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뿐이다. 군포에서 3번이나 시장을 시켜주신 시민들의 믿음과 기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온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을 생각이다.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하루를 한 달처럼 쓰면서 책과 철쭉으로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군포시 공무원 모두와 힘을 합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구직자 데이터 확보해 일자리 창출 지원할 것"

- 지자체 단위 일자리 창출사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시민 맞춤형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해소하기 위해 주민센터마다 취업상담사를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취업을 원하는 이들의 데이터를 확보해서 구인을 원하는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연결시키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경력단절 인력을 고용할 경우 기업에 채용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할 생각이다. 현재 군포지역 고용실태 조사와 고용률 제고방안 연구사업을 진행 중이다. 결과가 나오면 일자리 정보 제공수단과 필요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것이다.

아울러 결혼이나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위한 일자리 창출사업 공모와 다문화가정 구성원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개발, 고용창출 기업 지원을 위한 대응투자금 조성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나는 노동운동이 파견한 시장"

- 세 차례 시장업무를 수행 중인데 노동계 출신이 가지는 장점이 있나.

"노동계 대표 생활을 안 했다면 시장 역할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시장이 없어도 시정은 별다른 문제 없이 굴러간다. 하지만 일을 하는 시장이 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조직을 유지하고 끌고 가는 능력, 교섭하는 과정에서 몸에 익힌 대화의 방법들이 시장이 돼서도 조직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배경이 됐다고 본다. 노동운동을 할 때 조합원이 5만명이었는데 지금 군포시민이 30만명이다. 규모만 커졌을 뿐이다. 지금도 노동운동 현장에서 파견 나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언제든 어디에 가서든 노동계 출신이라고 당당히 얘기한다. 나는 아직 노동계를 떠나지 않았다."

- 정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98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군포시장에 당선됐다. 당시만 해도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정치에 대한 생각은 '정치인의 씨는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우호적인 정치인을 조직적으로 지원해 당선시키면 얼굴을 싹 바꾸는 게 태반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해 보자고 나선 것이다. 시민들 인식은 노동자가 무슨 정치를 하냐는 반응이었다.

노동자가 시장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사회변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른 이들의 출마를 도왔는데 출마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마이크를 잡고 노동자 이야기라도 실컷 하자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했다. 그런데 덜컥 당선돼 버렸다. 최초의 한국노총 출신 단체장이 된 것이다."

"노동운동 정치세력화에 도움됐으면 좋겠다"

- 노동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동계는 나를 시장으로 만들어 줬으니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웃음) 어떻게 하다 보니 시장을 세 번이나 하게 됐다. 처음 출마할 때는 노동운동 정체세력화를 확산시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잘못하면 '노동자 출신이 그렇지 뭐' 라는 평가가 나올 거다. 반면 내가 시정을 잘 운영해서 노동자 출신이 정치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전국에 출마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선거운동을 하는 셈이 된다. 내가 잘해서 노동운동 정치세력화도 잘돼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노동계 출신이라고 이력서에 쓰면 득표에 도움이 되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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