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철도노조(위원장 김명환) 파업이 지난달 30일 마무리됐다. 여야와 노조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산업발전소위를 구성하는 데 합의했다. 역대 최장기간 동안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은 노조의 질긴 투쟁은 결국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물론 합의내용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파업 투쟁을 이끈 김명환(48·사진) 위원장은 “이제 2라운드가 시작됐다”며 “박근혜 정권 내내 ‘철도 민영화는 안 된다’는 국민 정서와 노조 투쟁이 맞물려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업 철회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강행군에 지쳤을 법도 한데 김 위원장의 기세는 여전했다.

- 파업이 해를 넘길 줄 알았는데.

“통상적으로 파업 복귀 매뉴얼에 따라 복귀 시점을 판단하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매뉴얼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숨이 턱까지 찰 때까지 위원장과 지부장들을 믿고 하루하루 버텨온 것이 복귀시점의 기준이 됐다. 지난달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도중에 직종별 지부장들을 (민주노총으로) 다 불렀다. 지도부에게 72시간만 달라. 31일까지는 복귀 얘기하지 말고 버텨 주면 그 사이에 법이든, 제도든, 시스템이든, 노사합의든, 무엇이든 만들어 내겠다고 했다.”

“사측 노조 흔들기에도 조합원들이 버텨 줬다”

지난달 27일부터 사측의 탄압이 집중됐다고 했다. 관리자들은 이쪽 소속이 복귀했다고 다른 쪽(소속)에 흘리고,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숙소를 찾아가 복귀를 종용했다. 김 위원장은 파업을 더 끌어서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해를 넘기는 결의는 필요하겠지만 해를 넘길 수 있는 투쟁동력이 되는가, 또 해를 넘겼을 때의 명확한 목표가 무엇인가, 두 가지가 고민 지점이었다. 상대편의 부담도 컸기 때문에 교섭은 열렸지만 당근은 안 보이고 채찍만 보이니까 막막했다.

29일 오전부터 민주당·정의당·통합진보당 의원들과 연속 회동을 했다. 법안도 좋고, 제도도 좋고, 기구도 좋으니 무엇이든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야 (정치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전체적인 움직임과 정권의 부담 등 여러 사정이 맞물렸던 것 같다.”

- 한밤중 민주노총에서 전격적으로 합의문이 작성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박기춘 민주당 사무총장이 29일 민주노총에 올지 몰랐다. 오기 전에 세 차례 확인을 요구하더라. 첫째, 여야가 소위를 만들면 복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소위 만들면 복귀한다고 전했다. 둘째, 위원장으로서 책임 있게 담보해 줄 수 있는가를 확인했다. 먼저 이야기했던 바 그대로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국토교통위 여야 간사 합의와 이를 담보할 여당의 실세와 민주당 사무총장이 서명을 하면 밑에 위원장이 서명해 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 아무래도 이게 돌파구가 되겠구나 싶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날 밤 12시에 나를 찾아왔다. 국토교통위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동의했고, 남은 건 새누리당 대표·원내대표·청와대라고 했다. 김무성 의원이 자신이 절차를 밟겠다고 하더니 합의서 세 장을 꺼냈다. 한 장은 민주당 지도부, 한 장은 여당 지도부, 또 하나는 청와대용이었다. 미리 서명까지 해 왔다. (김 의원이) 밤사이에 청와대까지 가야 하니 보안을 지켜 줄 수 있겠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에 나는 지역본부장들과 소통했다. 합의문 작성과 함께 노사합의까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되진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의 형태를 전환하면서 '현장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우리의 투쟁으로 정치권을 견인할 것”

- 정치권의 역할을 주문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차지했다.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나 역시 낯설었다. 싸움은 노조도 하고, 민주노총도 하고, 시민들도 하고, KTX 민영화 저지와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도 했다. 그런데 정작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그쪽(정치권)이 받았다. 화날 만하다. 반면 조합원들은 '복귀 날짜가 잡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과는 저들이 다 가져간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성과는 이것이라고 30일 기자회견에서 하나씩 짚어 준 것이다. 정치권이 어떻게 하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의 투쟁으로 그들을 견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 합의안 내용이 미흡한 것 같다.

“사회적 대화기구·국회 소위·노사합의 세 가지가 다 작동돼야 사실상 민영화 반대투쟁의 성과가 안팎으로 드러나는데, 사회적 대화기구와 노사합의 부분이 채워지지 못했다. 노조는 사실상 파업의 출구를 찾은 것이고, 국민적으로 봤을 때는 불신이 큰 정치권에 철도 문제를 맡겨 버린 셈이 됐다. 간극이 있다. 미완성인 과제를 채우는 것은 결국 또다시 투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파업을 더 끌고 갔을 때 우리 요구안이 모두 담보될 수 있겠는가. 대오가 무너지는 파업투쟁이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렇다면 형태를 바꿔 긴장을 유지하면서 뭔가 성과를 만들어 내자고 판단했다.”

- 철도산업발전소위에서 노조 요구안을 의제화할 수 있다고 보나.

“당장 소위에서 수서발 KTX 주식회사를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또는 언급해야 한다는 것부터 충돌할 것이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 면허발급 철회가 담보도 안 됐는데 왜 합의했느냐가 아니라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대한 논쟁이 다시 떠오르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해 노조탄압과 수서발 KTX 주식회사 면허발급 과정의 문제점을 다루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왜 자꾸 노조가 저런 방식으로 일을 하지’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매 시기 놓치지 않고 ‘철도 민영화는 안 된다’는 국민적 의식을 끊임없이 올해, 내년, 내후년, 박근혜 정권 내내 가져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노조가 파업을 할 수도 있고, 정치권을 이용할 수도 있고, 시민사회와 연대할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핵심은 ‘철도 민영화는 안 된다’는 국민정서와 노조투쟁이 연속해서 가는 것이다.”

- 최장기간 파업기록을 갱신했는데.

“원래 6일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사측은 이틀 내지 사흘 정도 버틸 거라고 봤고, 노동부는 아예 (파업에) 못 들어간다고 했다. 우리도 내심 14일까지 가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2일간 파업을 했다. 조합원들이 정말 잘 버텨 줬다.”

"철도 민영화는 안 된다"는 국민 공감대 형성

- 파업 기간 중 언제가 고비였나.

“사망사고가 났을 때였다. 소식을 듣고 완전히 ‘멘붕’이었다. 사람을 살리자고 들어간 파업인데 시민이 죽고, 한 젊은이의 인생을 망치고…. 간부들과 회의를 했는데 복귀에 대한 입장이 엇갈렸다. 그러자 조합원들이 더 버틸 수 있다고 하더라. 경찰이 민주노총을 치고 올라오기 전에도 고비가 있었다. 사실 19일 이후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파업동력에 자신이 없었다. 22일 민주노총에 경찰이 쳐들어온 뒤에는 25일까지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고비가 지나가 버린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부가 파업을 장기화시킨 셈이다. 최소한 4일은 더 연장시켰다.”

- 경찰이 민주노총에 강제로 진입했을 때 지도부가 사라져 놀랐다.

“현장에서도 난리가 났다. 지부장들에게는 위원장이 복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절대 복귀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 뒀는데, 지도부가 사라져 버렸으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지부장들의 전화기가 불이 났다. 지도부가 살아 있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을 조계사로 보냈다. 투쟁 집행력을 담보하기 위해 나는 다시 민주노총으로 돌아왔다.”

- 지난 인터뷰 때 "멋진 마무리를 할 수 있는 복이 나에게 오겠냐"고 말했다. 지금은 지금은 어떤가.

“과거에 파업 복귀 과정을 보면 반은 울고 반은 씩씩대고 그랬다. 주먹다짐도 했다. 이 정도면 복 받은 거라고 본다. 결국 소통의 힘인 것 같다. 견해차가 있어도 사선을 함께 넘어온 동지들을 믿고 함께 소통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함께 갔다 함께 오는 파업투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모두 고생했지만 파업동력을 잡아 준 기관차·차량·열차가 가장 고생했다. 기관차의 정점에는 수도권 전동차와 고속기관차가 있다. 원래 직종별로 취약한 곳이 있기 마련이지 않나. 예전에는 가장 빨리 무너졌던 곳이 이번에는 가장 끝까지 버텨 줬다. 이들이 제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나머지가 뒤를 받치며 버틸 수 있었다. 조합원들에게 감사드린다.”

- 징계·손배 가압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한숨을 길게 내쉬며) 미리 각오한 측면은 있었지만 2009년 파업 때보다 징계수위는 더 셀 것 같다. 지난번에는 해고자가 194명이었는데 이번에는 두 배를 훨씬 웃돌 것 같다. 지금 남아 있는 해고자가 100여명이다. 이번에 나올 해고자들까지 합치면 500여명이다. 노조 조합비 전액을 해고자 구호에 써도 모자랄 판이지만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

- 노조 활동 위축이 걱정되지는 않나.

“위축될까? 아직은 물음표다. 파업 과정에서 잘 싸우면 조직은 유지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우리는 잘 싸웠다.”

김명환 위원장은 당분간 자진출두 계획이 없다고 했다. 노사교섭과 국회 투쟁 등 책임 있게 처리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선 지도부 구성에 대한 계획도 당분간은 없다고 했다. 현안을 마무리한 다음 자진출두하겠다는 계획이다.

"감옥에 갈 때까지 당당하게 투쟁할 것이다. 감옥에 가서도 잘 싸우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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