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실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노동과 삶)

올해 하반기 동안 조계종 산하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에서 준비하는 이주민 노동자를 만나는 종단 내의 단체와 스님들을 위한 상담매뉴얼 정비작업을 함께했다. 큰 품을 들이기보다는 기존의 잘 정리된 자료들을 최신의 상황에 맞게 정비하는 작업이었다. 여기에 더해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해 그들을 만나는 스님들과 단체 사람들을 직접 만나 기초적인 노동법 교육과 함께 이주노동자 실태를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한국에 자리 잡은 외국인 법당이 장소를 제공해 줬으며, 오전 예불과 오후 예불 사이에 찾아갔다.

필자가 찾은 곳은 경기도 양주에 자리 잡은 스리랑카 법당 ‘마하보디사’였다. 양주역에 내려서도 버스를 타고 30~40분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법당이지만 평택·김포공항·천안 등지에서 찾아온 이주노동자 30여명이 우리를 맞아 줬다. 고국에서 멀리 떠나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온 이주노동자들은 그리운 동포들을 만나고, 자신의 종교를 통해 안식을 찾기 위해 매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움직이는 것이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2층 법당은 이용하지 못하고 문을 잠가 놓았기 때문에 좁은 1층 마루에서 20~30명의 성인남성 이주노동자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처음에는 낯선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도 가까이 오지 못하고 좁은 부엌에서 15~20명이 바글바글 서서 있더니, 교육을 시작한다고 하자 한달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 한국말이 서툰 이주노동자를 위해 ‘와치싸라’ 주지스님이 통역을 담당해 줬다. 교육내용은 근로계약서에 적시해야 하는 근로시간·주휴일·연차·임금의 지급방법에서 임금 계산방법까지였다. 통역을 이용한 교육에 집중하기 어려울 만도 하건만 피곤해 졸린 눈을 비비며, 내용에 집중하는 모습은 노무사로서의 초심을 돌아보게 만들 정도였다.

교육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첫째,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은 월급이나 연봉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들의 임금은 시급이었으며 대다수 최저임금 수준이었다(20여명의 이주노동자 중에 시급이 7천원인 노동자가 딱 1명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종사하는 업종이 통상적으로 3D로 칭하는 고된 노동임을 감안했을 때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시급으로 받는 급여 외의 임금이 있는지를 묻자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시급 외에는 뭘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장님에게 바라는 한 가지를 적도록 하자,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보너스를 받고 싶다고 했다. 보너스도 엄청 많이도 아니고 한 10만원 정도면 좋겠다고 한다.

둘째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일 만났던 노동자들의 절반 정도는 교대제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낮조와 저녁 7시부터 아침 8시30분까지 밤조로 교대로 근무하는데, 한 주에 받는 돈이 대략 18만원 정도라고 했다. 밤조로 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12시간을 일하는데, 임금이 너무 적은 것 같아 밤에 일할 때 자는 시간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휴게시간 1시간 말고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사장님이 일을 더 하면 수당을 주는지 묻자, 준다고 한다. 아무래도 계산이 이상하다.

셋째는 근무지를 옮기고 싶은 이주노동자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에 고된 노동을 장시간 수행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너무 힘들고 지쳐 가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조금 더 여건이 나을까 싶어서, 고된 노동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서 사업장을 옮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 고용허가제는 이러한 이주노동자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옮기기 위해서는 임금이 체불되거나 폭행을 당하거나 사업장이 휴·폐업되는 등 최악의 상황이 돼야만 가능하다. 때문에 이런 최악의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힘든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장에 출근하지 않거나 근로관계를 종료하고자 하면 바로 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즉 이주노동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노동이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어느 사업장에도 취업규칙은 없었으며, 임금명세서를 통해 자신의 임금을 확인한 근로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어떤 사업장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에 근로계약서나 임금명세서를 안 줘도 된다고 사장님한테 들었다고 한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노무사로서 한계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번에 만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에 돌아가 사장님께 근로계약서를 달라고, 임금명세서를 달라고 해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고, 임금을 적게 받아 왔으니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한다고 해서 못 받은 임금을 순순히 받을 수 있을지, 오히려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하는 약점을 이용해 괴롭히지는 않을지, 아는 게 독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그래도 몰라서 당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대처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집단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해결하고, 집단만으로 대응하기 힘들다면 지지하고 지원할 단체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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