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붙고 나서 처음 며칠은 내용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았다. 계속 기사가 나고 몇 건의 인터뷰 섭외가 들어오면서 꼼꼼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파업 하루 만에 통보된 철도노동자들의 직위해제와 밀양 송전탑에서의 목숨을 건 저항에 대한 안타까움과 불통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와 함께 이 미친 세상에서 당신들은 안녕하신지 묻는 말에 많은 공감을 했다. 그리고 비상식적인 사회와 권력의 탄압에 대해 남의 일이라 외면하지 않겠다던 수백명의 청년들이 호응의 대자보를 붙였다. 사회의 몰상식에 대해 안녕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내용이 공감이 가면서도 어떤 불편한 마음이 며칠간 남아 있었다. 그리고 22일 민주노총에 경찰이 진입하던 현장에서 그 불편한 마음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청년유니온의 한 조합원은 일요일 아르바이트를 미루고 일요일 낮에 현장으로 달려왔다.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민영화 반대를 외쳤던 그는 집회가 끝나고 다시 미뤄 둔 아르바이트를 하러 현장으로 돌아갔다.

근근이 일한 청년들 노동의 대가는 시간당 4천860원 수준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고, 정직원으로 취업하기 어려워 매년 인턴 경험자도 50만명 가까이 된다. 경력이 되는 인턴은 무급인 경우가 많아 생활비가 없으면 지원도 못한다.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년간 준비하고도 경쟁자 20만명을 앞지르기 위해서는 7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경쟁에서 좌절하고 있을 실질 청년실업자는 110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정부가 구직에 필요한 필수 스펙은 9가지라고 발표하는 이상한 세상에 청년들은 살고 있다. 구직을 하기 위해 등록금을 포함해 각종 영어학원, 강요된 연수까지 4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고,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의 평균 근속기간은 1년7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단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경쟁의 승자만이 보통의 중산층이 되고 나머지 90%는 지속적으로 삶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매년 70만명 이상이 지긋지긋한 학벌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고, 그중 10만명은 대출 연체로 빚 독촉에 시달린다. 평당 가격으로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좁은 원룸에서 사는 것을 호사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작은 원룸조차도 어려워 1인가구 청년 중 36%는 주거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방음이 되지 않는 고시원 때문에 옆방에 울고 있는 청년에게 들릴까 봐 방귀를 나눠서 배출해야 했다던 한 소설의 문장은 너무나 처절해서 ‘웃프다’. 나는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보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다 “자기소개서인데 자기가 없는 글을 쓰다 보니 푸줏간의 돼지고기가 돼 버린 것 같다”는 건국대 청년의 대자보가 더욱 공감이 갔다.

그런 청년들이 사회에 물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노동법을 알아도 사장에게 근로계약서 하나 써 달라고 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놓여 있는 그들이 물었다. 열심히 일하고, 사회적 목소리를 함께 내면서도 매달 돌아오는 학자금 대출 빚 문자에 마음을 졸이는 청년들이 사회에 물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많은 청년들이 경쟁체제 속에서 홀로 먹먹하게 살고는 있었지만 사회의 부당함에 눈을 닫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응답했다.

2013년 말 청년들이 사회를 향해 뻗은 연대의 손이 2014년에는 청년에게 향하길 바란다. 청년들에게는 가르침을 주겠다는 멘토여서는 안 된다. 무한경쟁 사회에 살게 만든 기성세대의 미안한 마음이거나 언론에서 붙여 준 안녕세대라는 과한 칭찬으로도 안 된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그리고 취업과 하루 세 끼를 걱정해야 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청년을 바라봐야 한다.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미래 세대를 책임져야 할 청년들의 노동과 삶도 모든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안녕할 수 있어야 한다.

"안녕하지 못했던 2013년, 다들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yangsou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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