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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니 죽을 날만 기다린다?
박세길
역사연구가

얼마 전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36세의 새파랗게(?) 젊은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커다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언제인가 한 노조간부와의 대화 중 이런 말이 나오기도 했다. “요즘 집행부 모임이 있으면 40대가 담배 심부름 합니다.” 철도노조 파업을 이끄는 지도부 또한 희끗희끗한 머리와 함께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90년대 초 노동조합 집행부 간부 대부분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음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세대재생산이 되지 않은 것은 진보운동 전반에 걸쳐 나타난 현상이었다. 진보운동 어디를 가나 40~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집회 현장은 노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가 젊어질수록 숫자가 줄어든다. 20대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존재가 돼 있다.

누구인가 일본의 오사카를 방문했다가 보궐선거 장면을 목격했다. 공산당 후보 지지자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젊은이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일본 진보운동의 현주소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일본의 진보운동 모습이 한국 진보운동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진보 인사들의 정신세계마저 함께 늙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는 현재의 고통을 견디며 미래의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들이다. 그런 만큼 기회가 있으면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들의 속성에 부합되는 것이다. 그럼 지금의 진보는 어떠한가. 진보 인사들이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조용히 되돌아보라. 진보 인사들은 주로 옛날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성찰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회고하고 추억하는 것으로서 과거를 말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에게 미래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그들은 과거에 의지해 남은 삶을 이어 간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그들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가장 큰 밑천인 것이다. 그런데 진보 인사들의 정신세계가 바로 그 노인들의 것과 너무나 비슷해져 가고 있다. 정녕 진보운동 또한 나이를 먹을 만큼 먹다 보니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윈스턴 처칠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25세 때 자유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35세 때 보수주의자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 칼 포퍼는 여기에 빗대어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이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은 공통적으로 젊을수록 좌파 성향이 강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우파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좌파 대신 진보, 우파 대신 보수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대학생들 사이에서 대자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더불어 젊은 세대 사이에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파업을 지지하는 행동이 줄을 이었다. 그럼으로써 파업투쟁을 전례 없이 발랄한 분위기로 만들어 갔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치도 바닥을 드러냈던 저수지에 물이 고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그 물이 흐르고 흘러 진보의 대지를 적시면서 세대재생산의 가뭄을 해소시켜 줄 것인가.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갈구한다.

하지만 나의 이성은 그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 반응을 보인다. 지금의 진보운동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한 젊은이들이 합류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과연 진보가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기에 그럴까. 젊은 세대에게 진보운동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 하면 상당수가 이렇게 말한다. "꼰대!" 매우 귀에 거슬리지만 그들이 진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왜 진보를 꼰대로 취급하는 것일까.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박세길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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