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이다. 양대 노총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인 것 말이다. 2011년 4월 양대 노총 지도부가 공동 시국선언을 한 지 2년 만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96년 12월 김영삼 정부와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에 맞서 양대 노총은 공동 총파업을 벌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양대 노총 공조는 처음이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언했고,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화 중단을 결의했다.

그들을 하나로 불러 모은 것은 박근혜 정부다. 백주 대낮에 벌인 박근혜 정부의 어이없는 체포 작전에서 비롯됐다. 지난 22일 경찰은 민주노총 사무실에 강제진입했다. 99년 합법화된 이래 민주노총 사무실이 경찰에 짓밟힌 것은 처음이다. 경찰 6천여명은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겠다며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들이닥쳤다. 최루액과 쇠망치를 들고, 10시간 동안 전쟁을 벌인 경찰은 철도노조 지도부를 찾지 못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빠져나가고 없는 사무실을 부수고, 애먼 노조 간부들만 연행하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휴일에 쉬고 있는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가면서 벌인 일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경찰투입 해프닝을 정당화했다. 강경대응은 어느새 '박근혜의 원칙'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런 기조하에 코레일은 파업 후 처음으로 대화에 나섰지만 노조의 요구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불교계가 중재하고, 국회가 나섰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노사가 협상을 하는 와중에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정부 입장을 재천명하며 압박했다. 국토교통부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면허발급을 강행했다. 면허발급 중단을 촉구한 철도노조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했다. 코레일이 협상장에 나온 것은 여론을 의식한 제스처였을 뿐 노조와 대화할 의사는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의 원칙'을 정부와 코레일이 앵무새처럼 따라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지난해 12월19일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4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과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해를 넘겨 고공농성을 벌이는데도 박 대통령은 침묵했다. 노사관계에 대해선 함구하면서 노사정 대타협에 대해선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그것도 고용률 70%라는 국정과제에 국한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노사관계는 없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벌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를 겨냥하며 노사관계를 처음 거론했다. 노사관계는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노사관계 안정은 매우 중요한 위기관리 사안”이라며 “비정상적인 관행의 정상화 차원에서 사전에 문제점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겐 합법이든 불법이든 노조의 쟁의행위는 비정상이자 위기관리 요인일 뿐이다. 그간의 노사관계 관행은 비정상이며, 양대 노총이 이 관행을 만들어 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박 대통령에게 철도노조 파업은 비정상이자 리스크 요인이다.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를 빌미로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한 것은 정상이고, ‘노동운동 탄압’이라며 항의하는 양대 노총은 비정상으로 여길 뿐이다.

양대 노총은 28일 이런 광기 어린 굿판을 중단시키겠다고 결의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운동을 비정상으로 취급하고, 공안몰이로 노동기본권을 짓밟는 것에 맞서 연대투쟁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양대 노총이 97년 날치기 노동법을 철회시킬 수 있었던 것은 조직의 명운을 걸었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이 고비 때마다 마주잡은 손을 놓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대를 선언한 양대 노총은 이런 과거를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만 불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대화와 타협이라는 상식을 각인시킬 수 있다. 뱀의 해가 저물고 청마의 해가 다가오는 세밑, 양대 노총의 연대가 청마처럼 강인하고 진취적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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