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원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나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임이 확인됐다. 그간 각급 법원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했지만 경영계에선 이를 무시해 왔던 터라 노동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당연한 결과라며 환영하고 있다.

대다수의 언론에서는 이번 판결이 노동자의 편을 들어 준 것이고 직장인들의 급여가 20%정도 상승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경영계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이는 투자감소와 고용축소가 우려된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1개월을 초과해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이라 하더라도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충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통상임금에서 정기상여금을 제외한 노사합의도 무효라는 판결까지는 기존의 판례를 거듭 확인해 준 것이어서 설마하며 가슴 졸이던 노동계가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임금총액을 결정하면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것을 예측하지 못한 “사용자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되고 기업 존립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과거 노사양측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합의한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하더라도 정의와 형평관념에 비춰볼 때 신의에 반하므로 근로자 추가임금 청구는 신의성실 원칙에 위반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이건 뭔가. 결국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노사합의가 있었거나 재정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면 사용자가 과거 3년분에 대한 차액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닌가. 노사합의를 주장한다면 이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경영상 어려움의 정도는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이는 노사 간의 다툼만을 초래할 뿐이다.

각급 법원에서 진행 중인 180여건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과 향후 더욱 늘어날 관련 소송이 더욱 복잡하게 진행될 여지가 더 많아졌다. 즉, 통상임금에 대한 법리적 검토뿐 아니라 이전 임금결정 당시 상황과 사용자의 재정적 상태와 경영여건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는 그간 논란이 돼 왔던 각종 수당 등에 대해서도 ‘재직 중인 자’라는 조건이 부가되거나 ‘복리후생’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해 노동계의 주장을 일축했다.

결국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기존 지법·고법의 판결에서 후퇴한 것이고, 겉으로 노동자의 손을 들어 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용자의 고충(?)을 고려한 정치적 판결이 돼 소송을 진행한 노동자나 노조에게는 소송의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도록 하고 있다.

이제 경영계에서는 통상임금의 범위확대로 인해 발생한 과거 임금차액에 대한 부담을 털고, 단체협약이든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서는 임금체계를 단순화시키거나 연봉제를 확대하는 명분을 얻고 다양한 탈출구를 얻은 셈이다. 결코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리 없는 경영계의 검은 속내를 빨리 눈치 채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간 노동계가 쌓아 온 공든 탑이 한 번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언론의 호들갑에 취해 마냥 대법원의 판결에 환호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