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운동 10년,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거론되는 후보 중 경력이 가장 짧다. 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면서 한 번도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한국노총의 무너진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인상(53) 공공연맹 위원장이 이달 12일 열린 연맹 대표자회의에서 내년 1월 치러지는 한국노총 임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존재위기에 직면해 있고, 한국노총은 대중적 존재감·자주성·민주성·현장성을 상실했다"며 "한국노총 개혁진영 후보로서 선거 과정에서 변화와 개혁을 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연맹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한국노총 위원장 후보로 4명이 거론되고 있지만 개혁진영의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어 출마를 결심했다”며 “단 한 표를 받는 한이 있어도 이번 선거는 반드시 완주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다. 일각에 나도는 다른 후보와의 연합설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탄핵사태로 소통의 힘을 배웠다”

- 공공연맹 위원장을 맡은 지 2년이 흘렀는데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내홍으로 올해 초 탄핵사태를 겪었다. 많이 힘들었다. 아직도 100% 치유됐다고 보기 어렵다. 초선 연맹 위원장으로서 경험이 부족했다. 탄핵사태 이후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고 자부한다.

최근 6개월 사이 조직이 많이 확대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2011년 12월 연맹 위원장을 맡았을 때 70여개였던 가맹조직이 현재는 93개로 늘었다. 노동부유관기관노조를 모델로 올해 11월 환경부유관기관노조가 설립됐을 때 가슴이 벅찼다.

양대 노총의 공공부분 노동계의 대정부투쟁 활성화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올 초 공공노련이 양대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에 가입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사실 공공연맹 입장에서는 공공노련의 참여를 꺼릴 수도 있는 문제인데 오히려 내가 나서 다른 위원장들을 설득했다."

이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그는 “공공연맹 위원장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 출마를 결심하면서 연맹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서도 “결심에는 조금도 후회가 없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노동자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자 내린 선택”이라는 이유였다.

- 올해 3월26일 연맹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에 대한 탄핵 여부가 표결에 부쳐져 부결됐다. 탄핵사태 이후 조직의 갈등은 어떻게 치유됐나.

“탄핵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 때문이었다. 한국노총 산별조직 가운데 유일하게 조직적 결의를 통해 문재인 후보 지지를 결정한 것에 대해 지금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간섭을 많이 받는 조직이다.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정치적 색깔도 다양하다. 하나로 결집하기가 쉽지 않다. 위원장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그동안 노동운동을 하면서 손가락질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 개인적 비리가 아니라 가장 민감한 정치적 상황에 맞서 민주적 절차를 밟아 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노조는 51%의 힘으로 간다고 한다. 하지만 49%의 소수 의견도 중요하다. 이번 탄핵사태가 나를 키우는 큰 바탕이 됐다. 무엇보다 소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지금처럼 조직이 안정적으로 갈 수 있게 됐다."

“박근혜 정부는 불통 넘어 먹통”

- 박근혜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노총을 찾아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겠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기대가 있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불통이 아니라 먹통이다. 불통이 알면서도 안 하겠다는 식이라면 먹통은 대화 자체를 아예 모르는 거다. 지금 철도노조를 비롯해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는데 정부는 이를 깔아뭉개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는 고용노동부도 없고 안전행정부도 없다. 오로지 청와대 지시만 있을 뿐이다.”

-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밀어붙인다면 내년 공공부문 총파업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라는 주장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이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라면 공공기관 노동자들도 충분히 양보할 준비가 돼 있다. 이 모든 게 대화를 통해서 조율돼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대화를 모른다. 정부가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총파업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법 개악과 함께 노동운동 원칙이 무너졌다”

- 출마를 결심한 배경은 무엇인가.

“노조운동이 견지해야 할 3대 원칙은 자주성·민주성·대중성이다. 2009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논의 당시 한국노총에서 이런 원칙은 모두 무너져 내렸다. 노조법 개정에 대한 노사정 합의안은 정부가 공익위원 안으로 제시했던 내용보다 후퇴했고, 대의원대회에서 80%를 웃도는 파업 결의를 받고도 집행부가 이를 무시했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분출하는 대중의 욕구를 한국노총의 지도부는 받아 안지 못했다. 노조법을 개악시킨 당사자들이 이제 와서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7개 산별이 모인 개혁연대에서 후보를 내고자 했던 이유다. 한국노총이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1천800만 노동자의 대표로서 박근혜 정부와 맞짱 뜰 수 있는 위원장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노총은 개혁의지와 투쟁력을 모두 겸비한 사람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두려운 것은 실패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개혁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외면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고 했다. 단 한 표를 얻어 떨어진다 해도 한국노총 개혁에 도화선이 된다면 그것으로 역사적 사명을 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언컨대 보수와 손잡는 일 없다"

- 이번 임원선거는 어떤 의미가 있나.

"흔히들 이번 선거가 구도도 없고 쟁점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번 선거는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 잠재돼 있는 욕구에 불을 댕기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사지로 가고 있다. 철도노조의 파업을 보면서, 경찰이 방패와 최루탄을 앞세워 민주노총을 침탈하는 광경을 목격한 조합원들은 분노하고 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노동계와 대화할 의지가 없다. 한국노총이 이럴 때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지금 변화에 대한 욕구를, 개혁에 대한 열망을 속 시원하게 말해 줄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임원선거가 시작되면 정책토론회를 통해 제대로 후보검증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중의 요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 왜 이인상이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

“이달 30일이면 노동운동에 들어선 지 만 10년이 된다. 노동운동 경력이 짧다. 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원칙을 저버린 적이 없다. 노조법 개악 과정을 보라. 현재 어느 누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방침을 결정했을 때 주변의 만류가 컸다. 조직적 결의를 거치지 말자고도 했다. 하지만 반드시 민주적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탄핵사태까지 가게 됐지만 후회는 없다. 지난 10년간 원칙을 지켜왔고, 싸워야 할 때 반드시 싸웠다.

이번 선거에 출마선언을 한 4명의 후보 중 원칙을 지키며 싸워 온 개혁진영의 후보는 단 한명도 없다. 당선을 위해 결코 보수와 손잡는 일은 없다. 이번 선거에 끝까지 완주해 한국노총의 개혁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분출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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