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제고, 여성이고, 감정노동자입니다.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나선 과제가 다 우리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니 한국마사회가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있는 거죠. 그거 가지고 버티는 겁니다.”

최근 만난 김순지 마사회시간제경마직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시간제경마직은 경마장에서 발매와 안내를 하는 노동자들이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자다. 마사회는 이들을 퇴직금과 연차수당·주휴수당을 주지 않는 15시간 미만자로 남게 하려고 시간을 분식했다. 금·토·일요일 사흘 동안 경마장을 운영하면서도 금요일 근무자와 토·일요일 근무자로 나눴다. 대기시간이나 초과근로 시간을 합치면 어쩔 수 없이 15시간이 넘을 수밖에 없는 토·일 근무자들은 출근시간을 줄여 잡고, 휴게시간을 늘려 잡아 하루 7시30분 미만, 이틀 14시간 미만에 맞췄다. 침대에 맞춰 다리를 자르거나 몸을 늘려 죽게 만들었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꼭 마사회의 시간제 운영방침이다.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라던 김 위원장의 생각은 일단 틀린 모양이다. 첫 단체협약과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은 진척 없이 끝났다. 중앙노동위원회에 가서도 지난 16일 결국 조정이 중지됐다. 노조가 요구했던 주 3일 근무제 도입은 물론이거니와 임금인상률도 입장 차이가 컸다. 회사는 3일 근무제가 경영권에 관한 사항으로 교섭대상이 아니며 임금은 내년 공기업 가이드라인(1.7%)보다 두 배 넘게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집행부가 너무 강성이라는 비판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단체협약안을 제시하면 회사 교섭위원이 교섭장에서 ‘알바에 맞는 협약안을 가져오라’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기자를 만나는 내내 “마사회가 잘돼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비보도 요청을 했다. 강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다른 뜻에서 노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누구도 바라지 않지만 파국은 눈앞이다. 노조는 현재 조합원 2천700여명 중 93.5%가 투표에 참여해 92.2%의 찬성률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마쳤다. 그들은 시간제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것도, 정규직 대우를 원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단지 “알바가 아니라 마사회 직원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뿐이다. 20일부터 시간제경마직 근무가 시작된다. 파국을 막을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마사회에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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