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인간적 모멸을 견디며 살아온 지방자치단체 비정규 노동자들. 고 김헌정 열사는 이들의 눈을 띄우고 희망을 제시했던 등대였습니다. 1998년 환경미화원 노동자들과 첫 인연을 맺은 후 10여년의 조직활동 끝에 2천50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민주연합노조를 세웠습니다. 민주연합노조는 그의 열정과 헌신을 그리는 마음에 2013년 5월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나의 형제 김헌정’이라는 평전을 펴냈습니다. 비정규직과의 연대가 화두가 된 요즘, 그의 정신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매일노동뉴스>는 글쓴이인 박미경 작가와 책을 발행한 민주연합노조의 양해를 얻어 본지에 김헌정 평전을 매일 1회씩 연재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깊은 성원 바랍니다.<편집자>

제1부 녹색조끼의 탄생

1999년 7월 25일 일요일 새벽 6시 ·찢어지고 부서진 ‘청소부’의 육신·밥 한 끼 주고 밥줄을 끊은 ‘시장님’·동두천의 경험·홍희덕 씨와 나천봉 씨의 등장·“노조의 니은 자도 모른다. 그래도 한다!”·환경미화원들, 일어서다·노동조합은 지금 ‘공부 중’ ·“지금 여러분께서 하시는 행동은 불법이 아닙니다!”·첫 번째 위기, 그리고 반격·싸운 만큼 되찾는, 그대 이름은 노동자·의정부지역시설관리노조에서 경기도노조로·마지막 카드·“파업은 노동자의 학교”·‘인간 쓰레기’를 쓸어 담자·전제만 교육부장의 항변 “잘못한 게 있어야 잘못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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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덕 씨와 나천봉 씨의 등장

시청 소속으로 있을 때 환경미화원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술 마시다가 가끔 노조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 “우리도 노조를 만들자”고 하면, 누군가 “우리는 공무원이라서 안 된다”고 잘랐다. 그런가보다 하면서 다들 소주 한잔씩 입에 털어 넣었다. 또 누군가에게 “총대를 메라”고 하면, “노조 만들다 잘린 선배도 있다”며 “우리는 스파이가 많아서 안 된다”는 푸념이 돌아왔다. 이렇게 그들은 가슴에서 단결을 지우며 살았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때로는 길들여진다는 뜻이다. 공단으로 옮겨 오면서 채용된 장석훈 반장은 이런 분위기가 낯설었다. 해병대 출신으로 선거 때면 민주당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장 반장은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일을 꾸밀 줄도 알았다.

장 반장은 공단 사무실에서 나오는 말들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소문으로만 그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인원축소와 임금삭감이 예상됐다. 이렇게 되면 반장인 그도 채용 당시 공단 관리자들로부터 약속받았던 월급을 못 받게 된다.

장 반장은 민주노총 경기북부지구협의회 사무실을 찾았다. 한국노총에 가서도 상담을 받았는데, 거기서는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민주노총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전화부터 걸었다. 자신의 전화를 쓰지도 않았다. 동료인 진흥화 씨의 휴대폰을 빌렸다.

장 반장은 노동조합은 반란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친절했고 진정성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야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장 반장은 한편으로 꺼림칙했지만 이왕 나선 마당에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노조를 혼자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노총 경기북부지구협의회 사무실은 옛 한국전력 로터리 근처에 있었다. 장 반장은 진흥화 씨와 함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양미경 조직부장이 반갑게 맞았다. 전화로 상담했던 이가 그였다. 양미경은 김헌정의 아내였다. 양미경은 김헌정처럼 학생운동 출신이었고 위장취업으로 공장 생활을 했으며 덕계노동자사랑방에서 활동했다.

당시 민주노총 경기북부지구협의회에는 최혜영 사무차장과 양미경 조직부장, 두 명이 상근하고 있었다. 지구협의회 의장은 보암산업의 변형석 위원장, 사무국장은 북두노조의 정영희 위원장이 맡고 있었다. 의장과 사무국장은 비상근이었다.

장 반장과 진흥화 씨가 방문했을 때, 지구협의회는 경기도 내 6개 의료원(수원·의정부·금촌·이천·안성·포천)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6개 의료원의 거점 파업투쟁본부가 의정부의료원에 꾸려졌다. 파업 이유는 ‘민영화 저지’였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던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양미경 조직부장은 의정부의료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는데, 어떻게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그날 사무실에 있었다. 양 부장은 “노조는 몇 사람만으로는 되지 않으니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모으시라”고 조언했다. 또 “장 반장님이 몇 분에게 언질을 해 놓으면 직접 가서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조직은 책상을 지키면서 하는 게 아니다. 찾아가는 게 조직이다. 가뜩이나 불안해하는 노조 설립 주체들에게는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는 부담감도 덜어준다. 장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 반장이 민주노총을 찾은 게 7월 22일, 장 반장이 동료들을 양 부장에게 소개시켜 주기로 한 날이 7월 26일, 그 사이에 그만 김경영 씨가 변을 당한 것이다.

약속 당일 양 부장은 환경미화원들이 종종 휴식을 취하곤 하는 중랑천 다리 밑으로 나갔다. 양 부장은 김경영 씨의 사고를 몰랐다.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희덕 씨와 훗날 경기도노조 부위원장을 맡게 되는 나천봉 씨였다. 전날 동료를 잃은 두 사람은 절박했다. 민주노총에서 나왔다는 생면부지의 삼십대 여성에게 두 사람은 봇물 터뜨리듯이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굴곡 없이 큰 김헌정과는 달리 양미경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온갖 인간 군상과 부대끼며 자랐다. 양 부장의 어머니는 일찍이 홀몸이 돼 유흥가로 유명한 동두천 생연동에서 밥집을 해서 아이들을 키웠다. 가난한 술꾼의 푸념과 불쌍한 양색시의 눈물을 보며 사춘기를 보낸 양 부장에게는 흔히 말하는 밑바닥 정서가 있었다.

양 부장은 홍희덕 씨와 나천봉 씨를 한눈에 알아봤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환경미화원들의 눈에서 재치와 기개, 지혜와 인내를 읽어 낸 것이다. 양미경은 김헌정에게 연락해 두 사람을 믿고 노조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헌정은 양미경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동두천의 경험은 이들에게 ‘어떻게’에 대한 답을 줬다.

환경미화원의 업무는 각자가 홀로 하는 작업이다. 컨베이어 라인을 따라 일하는 금속노동자들에 비해 교섭력이 떨어진다. 분업의 고도화는 노동자를 생산의 도구로 소외시켰지만 노동자에게 단결을 줬다. 그런데 환경미화원들은 여전히 협업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따라서 근로관계 역시 전근대적인 경우가 많았다. 일찍부터 환경미화원을 공개 채용한 자치단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은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인사를 맡겼다. 이들의 말 한마디에 채용됐기에 환경미화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공무원들은 이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들은 환경미화원들을 근로계약의 주체로 여기지 않았다.

1995년 2월, 환경미화원으로 채용된 나천봉 씨는 “인간관계가 참 엉망이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반장은 업무배치를 하는 권한으로 동료들에게서 담뱃값과 술값을 걷었다. 신용카드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이라 터미널이나 유흥가에 배치를 받아서 청소를 하면 하루 3만원을 줍는 게 예사였다. 고물이 많이 나오는 동네도 부수입이 짭짤했다. 반장에게 술을 사지 않으면 부수입은커녕 일하기 고약한 곳만 떠맡게 됐다.

반장 눈치만 보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연장자들 서너 명이 환경미화원들을 자기편이 되도록 줄을 세웠다. 이들은 담당 공무원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면서 동료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렇다 보니 나천봉 씨처럼 성격이 괄괄한 이들은 술 마시다 동료에게 주먹다짐을 하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반장에게 쥐꼬리만 한 권한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서로 협력하지 않고 이간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환경미화원들은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 그러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지경까지 밀려난 것이다. 밥줄이 끊어지게 됐는데 부수입이 생기는 자리에 연연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노조 설립에 나선 장석훈 반장·홍희덕 씨·나천봉 씨는 환경미화원 전원을 노조에 가입시킨다는 원칙을 세웠다. 전원가입은 반장이 나서면 가능했다. 노조 설립 실무를 지원하던 양미경 부장도 이에 적극적으로 찬동했다. 세 사람은 소리 나지 않게 동료들을 설득했고,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던 환경미화원들은 노조 아니라 더 위험한 것도 하겠다며 속속 모여들었다.

“노조의 니은 자도 모른다. 그래도 한다!”

1987년 노동자투쟁 이전에 노동조합을 만들려면 비밀유지가 중요했다. 사용자 측이 눈치를 채게 되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노조 설립을 막았다. 노조창립식을 하기로 예정한 날에 일부러 철야를 시킨다든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을 멀리 전근을 보내거나 심지어는 신고서류를 탈취하면서까지 막았다. 사용자 측의 이런 방해공작에 공권력인 경찰은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어 ‘민주투사’가 대통령이 된 1999년에도 의정부 환경미화원들은 노조를 만들기 위해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해야 했다. 비밀이 탄로 나기라도 하면 노조 설립은 없던 일이 되고 말 게 틀림없었다.

단결의 필요성은 느꼈지만 단결의 힘을 맛본 적이 없는 환경미화원들이 사용자 측의 회유나 탄압을 견디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사용자가 경찰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의정부시설관리공단 책임자였던 박용래 이사장은 경찰 출신으로 의정부경찰서 수사과장을 지냈고 총경으로 퇴직했다.

의정부 환경미화원들은 노조 설립을 추진하면서 비밀 유지를 위해 서로에게 각서까지 받았다. ‘배신하지 말고 끝까지 함께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공무원들의 이간질에 서로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왔던 탓도 있겠지만 스스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그들은 노조 설립하기 전 서너 차례의 사전모임을 가졌다. 모임에 한 번이라도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강용산·김광수·김기열·김정복·김종열·김창준·나천봉·윤준근·장석훈·전제만·정상구·정영실·진흥화·최달용·홍희덕(이상 가나다 순).

노조 설립 준비모임은 회룡역 근처에 있던 빈집을 이용했다. 이 집은 전자제품 할부판매 일을 한 적이 있어서 아는 사람이 많았던 나천봉 씨가 구했다. 의정부 외곽에 있는 보신탕집에서도 모였다. 모두 어려운 형편임에도 10만원씩 갹출해서 경비로 사용했다. 마음 가는 데 돈이 가는 법이고, 그들은 그만큼 절박했다.

거사에는 택일이 중요하다. 그들은 노동조합 창립식을 8월 9일로 정했다. 8월 5일이 월급날이었다. 월급을 받아 보면 임금이 절반으로 깎인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월급이 절반으로 깎이면 사용자 편에 설 환경미화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월급은 1인당 40만원에서 80만원까지 줄었다. 공단은 근속가산금과 정근수당을 자기들 마음대로 빼 버렸다.

또 하나의 정보가 있었다. 의정부시청 공무원들과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이 일본으로 외유를 떠난다는 것이었다. ‘높으신 분들’이 자리를 비운다는 이야기에 환경미화원들은 일말의 안도감마저 느꼈다. 대개 환경미화원들은 일과를 마치는 오후 5시가 되면 시민회관 지하에 모인다. 8월 9일 그 시각, 그곳에서 노조창립총회를 하기로 했다.

하루 전날에는 리허설까지 했다. 혹시라도 공무원들이 절차상의 실수를 트집 잡아 노조 설립을 무산시킬 것을 염려해서였다. 노동조합 창립총회 식순에 따라 각자 맡은 역할을 연습했다. 창립총회가 끝나면 바로 보고대회를 열기로 했는데, 이때는 민주노총 경기북부지구협의회 임원들과 소속 노동조합 간부들을 초청하기로 했다.

양미경 부장은 사전모임부터 리허설까지 모든 회의에 참석해 진행 과정을 챙겼다. 양미경이 실무를 맡았다면 김헌정과 김인수의 몫은 전략이었다. 둘은 노조 설립 이후가 고민이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딱 하나였다. 시청으로 원상복귀였다. 이를 위해서는 곧바로 파업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김헌정은 공단 소속 환경미화원들만으로는 파업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단 소속의 환경미화원들을 ‘가로반’이라고 하는데, 가로반은 거리청소를 했다.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은 업체 소속이었다. 이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하는 게 중요했다. 업체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은 근로조건이 더 나빴다. 노동조합은 모두에게 필요했다.

김헌정은 의정부시설관리공단노조가 아니라 의정부지역시설관리노조로 가야 한다고 양미경에게 역설했다. 공단노조가 되면 업체 소속 환경미화원들은 조합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김헌정은 진작부터 복수의 사업장을 포괄하는 지역업종노조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미경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들은 덕계노동자사랑방 때부터 기업별 노조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울산이라면 모르겠으나 열악한 영세 중소기업들이 몰려 있는 경기북부지역에서 기업별 노조란 성립하기 힘들었다. 사용자의 지불능력 자체가 불안정했고 노동자 숫자가 너무 적었다.

양미경은 이런 점들을 노조 설립을 위한 사전모임에서 밝히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말인즉 그의 이야기가 옳다. 허나 설명하는 양미경도 환경미화원들이 선선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양미경은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운을 뗐다.

“우리의 목표는 원상복귀입니다. 그런데 우리 힘만으로는 이게 쉽지 않습니다. 의정부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이 모두 뭉쳐야 합니다. 하지만 업체 소속 환경미화원들의 요구는 원상복귀가 아니라 근로조건 개선입니다. 서로 요구조건이 다르니 행동통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뭉쳐야 삽니다. 그게 노동조합입니다.”

양미경의 설명이 끝났다. 환경미화원들은 놀랍게도 “그럼, 그렇게 하자”고 금방 동의를 해 줬다. 평소와는 달리 긴장한 그의 표정을 살피고는 행여나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싶어 가슴을 졸이던 그들이었다. 어떤 이는 “뭔 소리를 저렇게 어렵게 꺼낸다냐”며 안심하는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번에는 양미경이 놀랐다. 사실 환경미화원들은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본인들 입으로 늘 “노조의 니은 자도 모른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양미경의 어깨는 더 무거웠다. 노조는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동두천의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김헌정과 김인수는 시간표를 짜고 있었다. ‘원상복귀’라는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공단 소속으로 완전히 굳어지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싸워야 했다. 그러나 당장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의정부의 환경미화원들은 이제 겨우 조합원이 될 마음의 준비를 했을 뿐이었다. 조합을 만들자마자 파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총 쏘는 법은 고사하고 제식훈련도 받지 않은 신병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경영 씨가 비명에 간 지 보름째 되던 날, 그의 동료들이 하나둘 시민회관 지하로 모여들었다. 공단으로 옮겨 오면서 환경미화원들의 대기실도 시민회관 지하로 바뀌었다. 사전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던 환경미화원들은 이날 노조 결성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헌정과 양미경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동두천과 구리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30여명이 지원군으로 왔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먼저 접했던 선배로서 ‘사수대’를 자처했다. 쟁의부장으로 내정돼 있던 나천봉 씨가 사수대의 지원을 받아 출입구를 통제했다.

과연 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적잖이 당황했을 뻔했다. 관리자들과 정보과 형사들에, 일본 출장을 갔다던 공단 이사장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사수대는 “여길 왜 들어오려 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노조 측의 지원군이 든든했기에 사용자 측은 섣부른 짓을 하지 못하고 웅성거리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의정부 환경미화원들은 이 연대투쟁을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아무리 같은 일을 한다지만 자신들의 일도 아닌데 동두천과 구리에서 차비 들이고 시간 쪼개 와 줬다는 게 고마우면서도 신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 뒤부터는 의정부의 ‘동지들’이 동두천과 구리의 동지들이 담당했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시민회관 지하 환경미화원 대기실에서 나천봉 씨가 어리둥절해하는 환경미화원들에게 노조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렸다. 열렬하지는 않았으나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다들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조가입원서를 썼다. 공단에서 뽑은 5명의 환경미화원들도 가입에 응했다. 가로반 전원인 73명이 조합원이 됐다. 식순에 맞춰 리허설까지 했건만 노조 창립총회는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공무원이나 반장으로부터 업무지시나 받았지 이제까지 자신들이 의논해서 무엇을 결정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바른 말에 딴죽을 걸거나 딴청을 피우며 자리를 피하던 게 예사였던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환경미화원들은 식순이 이어지지 않거나 발언이 끊어질 때마다 박수로 서로를 격려하며 창립총회를 진행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 말아 쥔 주먹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창립총회를 마쳤을 때 그들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흘렀다. 그것은 존경이었다. 앞으로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그들은 자신을 존경할 이유를 더 많이 발견할 것이다.

의정부지역시설관리노조 초대 위원장으로는 장석훈 반장이 선출됐다. 전 반장이었던 김종열 씨가 수석부위원장, 최달용 씨가 부위원장, 김기열 씨가 회계감사로 뽑혔다. 사무장에는 홍희덕 씨, 쟁의부장은 나천봉 씨가 맡았다. 임원선거는 단독 입후보였고 그 후보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환경미화원들의 지난 세월을 모르는 이들은 이를 두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코웃음을 칠지 모른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서로 불신의 벽을 치고 그것을 숨기지 않았던 분위기에서 과반수 이상이 임원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은 정말 의미심장했다. 그들은 노조를 원하고 있었다. 창립총회가 끝나고 민주노총 경기북부지구협의회 임원을 비롯한 소속 노조 간부들이 축하인사를 건네는 시간이 마련됐다. 민주노총 임원들은 10만 공공연맹 조합원들이 여러분과 함께한다면서 조합원들을 격려했다. 김헌정은 경기북부노동정책연구소장 자격으로, 김인수는 연구소의 조사법률국장 자격으로, 의정부 환경미화원들과 첫 대면을 했다.

노조 창립대회의 마지막 구호를 나천봉 쟁의부장이 선창했다.

“똘똘 뭉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함께할 것을 결의한다!”

평생 구호라고는 외쳐 본 적이 없는 데다, 구호랍시고 운율도 맞추지 않았으니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래도 조합원들은 ‘똘똘 뭉쳐’ 대목은 놓치지 않고, 따라 외쳤다.

작가 박미경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