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욱 변호사
(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 수원지법 평택지원 2011가합1752 근로자지위확인

1. 사건의 개요


(주)쌍용자동차 하면 대부분 상하이차 먹튀·정리해고·파업·회계조작·손해배상 문제를 떠올리지만, 쌍용차도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불법적으로 파견근로자로 받아 사용해 왔다. 2009년 대규모 정규직 정리해고가 있기 이전인 2008년 11월 350여명, 2009년 파업기간 중 10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업체폐업·계약해지 등으로 소리 소문 없이 쌍용차 생산현장에서 사라져 갔다. 이때 구조조정 됐던 비정규 노동자 4명이 2011년 쌍용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등의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지난 11월29일 1심 판결이 선고됐다.

2.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부정

대상 판결은 사내협력업체들이 독립적 물적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고유기술이나 자본 등이 업무에 투입된 바 없으나, 각 협력업체들이 4대 보험에 가입하고, 회계 등이 별도로 이뤄지고, 임금을 지급한 법률상 주체는 사내협력업체였다는 이유로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는 부정했다. 2010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전 간헐적으로나마 인정되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역설적으로 대법원 판결 이후로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법원이 배척 근거로 제시한 것들은 4대 보험·회계·임금지급 주체 등 전부 형식적 사유로서 이는 사용자가 언제라도 쉽게 변경할 수 있는 사유들일 뿐 아니라 원청업체와 해당 근로자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하청업체 자체에 존재하는 사유들로서 이를 근거로 근로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근로관계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원칙에 비춰 볼 때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3. 근로자 파견 관계 인정

대상 판결은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계약 목적 또는 대상의 특정성, 전문성 및 기술성, 계약당사자의 기업으로서 실체 존부와 사업 경영상 독립성, 계약 이행에서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권 보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근로관계의 실질을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래 근거들에 의해 근로자 파견을 인정했다.

“① 도급비 산정 기준인 생산차량대수는 결국 당해 노동에 투입된 근로시간의 수에 따라 산정되는 것으로서 피고가 사내협력업체에 도급계약에 따라 지급한 보수는 근로시간에 대한 것으로서 노동력 자체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있는 점, ② 사내협력업체별로 이뤄지는 근태관리는 피고에게 보고돼 피고에 의해서도 관리된 점, ③ 피고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근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점, ④ 원고들은 피고의 정규직원들과 동일한 생산라인에 배치돼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 작업내용이 정규직원의 작업과 혼합돼 작업결과가 누구의 작업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고, 원고들의 업무 내용이 단순해 전문성·기술성을 가지고 있지 못해 계약 목적과 대상이 원고들이 보유한 노동력의 제공으로 보이는 점, ⑤ 피고가 작성해 정규직원 및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제시한 표준작업요령·조립사양서·일일생산계획서는 피고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조립 등 작업을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반면에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 등이 그 책임하에 원고들에게 독자적인 업무지시를 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는 점(표준작업요령·조립사양서·일일생산계획서가 도급인의 수급인에 대한 지시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⑥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 등이 원고들에게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이는 도급인이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이거나 그러한 지휘·명령이 도급인 등에 의해 통제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⑦ 작업수행과 관련한 근로자의 배치는 피고와 사내협력업체 사이의 도급계약에 따라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피고에 의해 변경되기도 하는 점, ⑧ 이 사건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원고들의 근로기간인 2001년 11월21일부터 2005년 10월1일까지 사이에 있어서, 원고들은 피고가 통제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생산방식에 맞춰 컨베이어벨트상 차체·의장의 일부 공정에서 작업을 수행해, 피고의 전체적인 작업지휘에 따라 근로에 종사했다고 보이고, 사내협력업체는 원고들의 작업과 관련해 그 근태관리 정도를 했다고 보이나(다만, 당시 피고의 공정 단위로 조직된 ‘직’의 직장이 정규직원으로서 원고들을 포함한 그 직과 관련된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출퇴근 현황을 직접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상으로 평상시나 설계변경 등 특이사항 발생시 원고들의 작업을 직접 지휘하는 등의 관여행위를 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는 점 등을 보태어 보면, 원고들은 2001년 11월21일부터 2005년 10월1일까지 사이에 사내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의 작업현장에 파견돼 피고로부터 직접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 판시는 대법원 2008두4367판결과 서울고등법원 2007나56977판결에서 제시한 근거들을 기초로 한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점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하게 입장을 밝혔는데 ① 생산대수에 따른 물량도급의 경우에도 그 생산대수 자체가 투입된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의 수에 좌우되는 것이므로 근로자 파견을 부정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는 점, ② 도급계약에 따라 협력업체가 수령한 금원의 실질이 노동력 자체에 대한 대가라는 점 등이다. 그간 원청업체측에서는 인건비에 인원수를 곱한 임율도급에서 물량도급으로 변경됐으니 적법한 도급이라고 주장을 해 왔으나 그러한 주장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또한 ③ 사내협력업체에 의한 근태관리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협력업체가 작업에 관여한 바는 없었고, 근태관리는 원청업체에게 보고도 이뤄졌고, 출퇴근의 경우에는 원청업체가 직접 확인한 적도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사내협력업체의 근태관리를 근로자 파견을 부정하는 요소로 판단하지 않았다. 실무상 협력업체가 근태관리를 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근로자 파견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난 이후 협력업체에 의한 근태관리를 함으로써 근로자 파견의 징표를 지우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참조할 만한 판단이라 생각된다.

4. 실효의 원칙 적용 배제

한편, 피고는 옛 파견법에 의해 고용의제 조항 적용 대상이 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업체 폐업으로 쌍용차와의 근로관계가 단절된 지 2년여가 경과한 이후에 소가 제기됐으므로 실효의 원칙에 따라 배척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① 권리가 실효됐다고 볼 만한 기간이 도과되지도 않았고, ② 피고가 위장도급의 형식을 빌어서 비정규 근로자들을 사용해 왔으면서 비정규 근로자들이 피고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을 구하지 않은 것이라는 정당한 신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며 이를 배척했다. 실효의 원칙은 해고가 된 이후 상당기간 경과해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사용자측에서 주장하는 사유다. 즉, 해고당한 이후 상당기간 동안 이를 다투지 않았다면 사용자가 이를 근거로 새로운 근로관계와 조직질서를 수립하므로 몇 년이 지난 후 이를 전면적으로 흔드는 해고무효 확인소송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취지다. 그러나 제조업 불법파견은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2007년 7월1일 시행 파견법상)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서 실효의 원칙 자체가 적용될 여지가 없을뿐더러, 업체 폐업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됐으나 이는 업체에 발생한 사유에 불과하며 원고들과 피고회사 간에 발생한 사유는 아니므로 근로자지위 인정에 아무 장애가 없다. 대상 판결은 원청업체가 인력관리 효율화를 위해 위장도급을 활용해 왔던 것이므로 해당 비정규 노동자들이 위장도급에 가려진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피고회사가 믿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신뢰가 아니라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5. 임금지급 청구

임금지급 청구 부분은 동종 또는 유사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에 적용되는 취업규칙·단체협약 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법리를 설시하면서 증거가 없음을 이유로 기각했다. 원고들의 자력과 과거 정규직 근로자 임금 현황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임금 부분은 항소심에서 주장하기로 했고, 다만, 시효 중단을 위해 일률적으로 일정액을 형식적으로 청구했던 것이어서 1심에서 이를 기각한 것이 어떤 문제 상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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